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브랜드별 도서 Book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저자
정민
출판사
문학동네
발행일
2011-12-07
사양
592쪽/ 140×224/ 신국판 변형 / 무선
ISBN
978-89-546-1675-1 03900
분야
역사
정가
27,000원
신간안내문
다운받기
어떤 만남은 운명이다!
조선시대 전방위 지식인 다산 정약용, 그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을 산 단 한 사람, 황상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학생은 있지만 제자는 없다"는 탄식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존경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드문 요즈음이다. 정민 교수에 의해 200년 전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그의 제자 황상(黃裳, 1788~1870)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신실한 사제 간의 정리(情理)가 울림이 커다란 의미로 되살아난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제자와 후학을 거느린 조선 최고의 석학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제자가 있었다. 신유박해 와중에 멀리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와 변변히 머물 곳도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던 정약용은 당시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1802년 그곳에서 열다섯 소년 황상을 만난다. 시골 아전의 아들이던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1818년 스승이 해배되어 서울로 돌아간 뒤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던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백적동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초서와 시 짓기 등의 공부를 놓지 않았으며, 늘그막에는 "일속산방(一粟山房, 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모두가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숨어사는 사람)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려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자네들 다시는 그런 말 말게." -13쪽

스승의 말씀을 명심누골(銘心鏤骨), 마음에 새기고 뼈에 아로새기다
18년의 강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다산이 서울로 올라오자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기웃거렸다. 다산의 힘을 얻어 출세를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다산의 강진 시절 수많은 책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이청(이학래)은 과거 시험에 도움을 주지 않는 다산에게 실망하여 추사 김정희의 문하로 들어가버렸고, 스승을 곁에서 모시며 아끼던 제자들까지도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자 뒤돌아서 스승을 흠잡고 서울에 올라와도 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모두가 이러할 때, 홀로 묵묵히 스승의 뜻을 지킨 한 사람의 제자가 황상이다. 출세를 위한 공부는 실패로 귀결한다는 진리를 따르며 18년 동안 상경하지 않고 은자의 삶을 실천하다, 1836년 다산의 회혼례를 맞아 상경한 길에 스승과 눈물로 영결한 그는 다산의 사후에도 늘 스승의 말씀을 간직하고 허투루 살지 않았다. 이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 정학유 형제와 아름답고 돈독한 우의로 이어졌고, 이후 두 집안은 집안끼리 관계를 이어가자는 의미로 "정황계(丁黃契)"를 맺기도 했다.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묘를 찾아 멀리 강진에서 경기도 남양주까지 한겨울에 발을 싸매고 천릿길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는 황상의 이 우직한 마음은 그의 글에도 오롯이 묻어났다. 엄하고 깐깐했던 다산의 교육을 견뎌내고 그 솜씨를 인정받은 황상은, 다산의 큰아들 정학연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형제, 이재 권돈인 등 당시 장안의 명류들과 교유하며 글 솜씨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추사 김정희는 그의 시를 흠모하여 제주에서 귀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강진에 들러 일속산방을 찾기도 했다. 신분의 구별이 엄격하던 시절, 시골 아전의 아들이 영의정을 지낸 이재 권돈인을 찾아가 대면하는 감동은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주도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시 한 수를 보여주는데, 묻지 않고도 다산의 고제(高弟)인 줄을 알 수 있겠더군요. 이름을 물었더니 황 아무개라고 하였습니다. … 들으니 황모는 시문이 한당(漢唐)에 가까울 뿐 아니라 그 사람됨도 당세의 고사(高士)라 할 만하여 비록 옛날 은일의 인사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다고 합디다. 그래서 육지로 나서는 대로 그를 찾아갔더니 서울에 올라갔다고 하여 구슬피 바라보며 돌아왔습니다. 이제 내가 서울로 오니 그는 이미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는군요. 제비와 기러기의 어긋남과 같아서 혀를 차며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424쪽
탁자 위에는 수선화 구근이 수반 위에서 막 싹을 틔워 올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자명종이었다. 온통 신기한 물건들뿐이었다. 황상은 주눅이 들어서 쩔쩔맸다. 영의정을 지낸 나라의 큰 어른이 먼 시골의 아전의 자식을 직접 초대해서 따뜻한 말씀을 건네고 있지 않는가? 믿기지가 않았다. 정학연도 추사를 대할 때와는 달리 한결 공경하는 태도로 물음에 응대했다. 이들의 대화는 수선화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라 걱정을 지나, 시에 대한 대화로 마무리되었다. 황상이 권돈인의 분부에 따라 「무량수각에 나아가 절 올리고進拜無量壽閣」란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 -481쪽

한 번의 만남으로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다
저자는 황상이 다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180도 달랐을 것이라고 한다. 운명을 바꾼 만남이란 무엇일까. 스승 다산은 일관된 가르침을 주었고, 제자 황상은 한결같은 자세로 받아들였다. 다산도 위대하지만 제자도 위대한 대목이다. 황상이 있으므로 다산도 더욱 빛이 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황상과 다산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황상이 남긴 글들이 가슴을 쳤다고 말한다. 깐깐하고 엄한 스승이었던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던 황상을 가리켜 "눈물이 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시작은 다산의 「삼근계」라는 작은 글을 우연히 본 것에서 비롯했지만, 그 글에서 받은 감동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로 이어져, 우리에게 잊힌 사람이었던 황상과 그가 스승과 나눈 아름다운 인연을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문장들로 복원해내었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과 자칫 어렵다고 느낄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는 듯한 묘사와 서술, 명징한 해석은 독자들에게 깊은 학문적 즐거움과 감동의 세계를 선사하며, 황상과 다산, 저자 정민 세 사람의 "맛난 만남"을 음미하게 한다.

황상과 관련이 있는 필첩의 소장자를 물어물어 찾아가 그 생생한 묵흔과 마주했을 때는 감격을 가누지 못했다. 다산과 정학연, 그리고 추사 형제가 황상에게 준 여러 권의 친필첩을 보았다. 필치가 황홀했고, 내용이 눈물겨웠다. 자료가 나올 때마다 문집 내용과 맞춰보니 알 수 없던 여백이 하나둘씩 채워졌다. 다산과 황상의 아름다운 만남의 시작과 끝을 정리하는 일은 내 몫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어찌하겠는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와버린 것을. … 이 책에서 살핀 황상의 삶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지금의 눈으로가 아닌 당시의 시선에서 볼 때도 그랬다. 이름 없는 시골 아전의 아들이 멋진 스승과 만나 빚어낸 조화의 선율은 그때도 많은 사람을 열광케 했다. 더벅머리 소년이 스승이 내린 짧은 글 한 편에 고무되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글을 열며" 중에서


스승 정약용, 인간 정약용의 얼굴
문장과 경학(經學)에 두루 뛰어난 학자였던 정약용은 유형원과 이익 등의 실학을 계승하고 집대성한 18세기 선구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신유박해 와중에 혈족이 죽거나 유배되는 갖은 고초를 겪었고 강진에 유배 와서도 식구들과 헤어져 마음 둘 곳도, 몸 머물 곳도 없이 외롭고 고단한 나날을 견뎠다. 학질에 시달리고 중풍과 마비가 오락가락했다. 해배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다산초당에 거처를 정할 때까지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재 머무는 공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다산의 오랜 버릇이었다. 그는 얼마나 더 머물지도 모를 이학래의 사랑채 바깥 채마밭에 대나무를 옮겨 심었다. 사시장철 푸른 대나무의 소쇄(瀟灑)한 기상을 울타리 삼아 둘러두고 싶었다. 이웃은 그까짓 대나무는 산골짜기에 가면 쌔고 버렸는데, 뭐하러 아깝게 채마밭에 옮겨 심느냐고 혀를 찬다.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몇 그루 대나무라도 둘러두고, 이쯤에서 타협하고 싶은 내 마음을, 자꾸 허물어지고 물러지는 정신을 다잡고 싶었던 것인 줄을 말이다.
목록보기

전화번호 안내

문학동네
031-955-8888
문학동네 어린이
02-3144-0870
교유서가
031-955-3583
글항아리
031-941-5157
나무의마음
031-955-2643
난다
031-955-2656
031-8071-8688
싱긋
031-955-3583
아트북스
031-955-7977
앨리스
031-955-2642
에쎄
031-941-5159
엘릭시르
031-955-1901
이봄
031-955-2698
이콘
031-8071-8677
포레
031-955-1904
테이스트북스
031-955-2693
이야기 장수
031-955-2651
호호당북스
02-704-0430
구독문의
031-955-2681
팩스
031-955-8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