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의 문학은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만큼 매 작품에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의 역사와 정서를 깊이 있게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유럽의 변방,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오랜 역사 동안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왔고, 20세기 초 비로소 독립하여 왕정을 수립했으나 곧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시스트 군대의 침략을 받았다. 전쟁 후에는 엔베르 호자의 혹독한 독재 체제 아래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굴곡진 역사 속에서 형성된 알바니아 특유의 민족 정서와 관습, 여러 외부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 그리고 비극적인 현대사의 면면은 카다레 문학 세계의 근간이 되었고, 카다레는 이를 작품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조국 알바니아를 알려왔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된 작품이 바로 1963년에 발표된 그의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이다.
이 작품에서 카다레는 특별한 방식으로 알바니아의 면면을 드러낸다. 알바니아인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의 적국이었던 나라의 장군과 사제, 즉 외국인의 눈에 비친 알바니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험한 지세와 음울한 날씨, 무뚝뚝하면서도 조용한 분노에 휩싸인 알바니아인들, 외국인 사제가 들려주는 그 나라 사람들의 뿌리깊은 정신 구조 등, 알바니아인 스스로는 잘 깨닫지 못할뿐더러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설득력과 보편성을 부여한다. 작가 자신이 알바니아인이면서도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묘사로 알바니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카다레가 다른 여러 대표작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소재와 형식의 조짐을 엿볼 수 있다. 호메로스, 그리스인과 트로이인들에 대한 언급은 『H서류』의 소재를 예고하고, 외국인 사제의 입을 빌려 『부서진 사월』의 중심 소재인 복수의 관습 ‘카눈’을 설명하며, 『돌에 새긴 연대기』(문학동네 출간 예정)에 등장하는 간판 없는 도시는 갈봇집 이야기를 회상하는 장(7장)에 나오는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즉, 이 놀라운 첫 장편소설에 이후 발표될 대표작들의 탄생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후 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런 걸작의 태동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99년 프랑스 르몽드 지가 뽑은 ‘20세기 100대 소설’에 선정되었고, 1983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서 알바니아의 적국으로 묘사되는 이탈리아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가 왔다, 이국의 진창 아래 눈비를 맞으며 누워 있는 죽은 군대를 찾으러…
『죽은 군대의 장군』은 이스마일 카다레가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만난 어느 이탈리아 군종신부와의 만남에서 모티프를 얻어 집필한 작품이다. 이 군종신부는 작품 안에서 군인인 장군과 종교인인 사제의 모습으로 나뉘어 등장한다.
소설은 한 나라(작품 안에서 국명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작품의 맥락을 살펴볼 때 이탈리아로 추측된다)의 장군이 사제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지였던 알바니아로 와 20년 전 그곳에서 죽은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국땅에 묻힌 군인들의 유골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신성하고 숭고한 임무를 부여받은 장군은 자부심을 가지고 알바니아에 도착한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비와 안개에 잠긴 가파른 산과 황량한 평야를 보며 자신의 임무에 내재되어 있는 비극성을 예감한다.
장군은 자국에서 작성된 정확한 명단과 지도를 바탕으로, 정신적 특사로 함께 온 과묵한 신부, 알바니아인 토목공들과 함께 유해 발굴 작업을 해나간다. 작업이 생각만큼 빠르게 진척되지 않는 가운데, 험한 지세와 끈질지게 이어지는 악천후, 거칠고 무뚝뚝한 알바니아인들의 원한 어린 눈길을 마주 대해야 하는 장군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깊은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자랑스럽게 여겼던 병사들이 전쟁 중 탈영하여 알바니아 농가에서 머슴으로 일했고, 자국 군대에 의해 어느 유서 깊은 도시에 갈봇집이 세워졌으며, 자신의 조국뿐 아니라 알바니아 역시 전쟁으로 크나큰 상처를 입었음을 확인하면서 장군은 전쟁의 진실에 눈을 떠간다.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마친 후 불청객처럼 참석한 알바니아 전통 결혼식에서 그는 국민 모두의 존경을 받던 대령이 실제로는 전쟁 당시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장본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에 대해 품고 있던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난다. 또한 같은 작업을 하며 만난 다른 외국인 사령관이 제안해온 유해 매매를 단호히 거절하는 듯하다가, 자신도 결국 유해 분실을 무마하기 위해 다른 유해를 헤아리는 등 정신적 실추를 겪게 된다. 숭고하게 여겼던 임무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정신세계까지 무너져버린 장군은 헛된 경험만을 안고 알바니아에 도착할 때와 똑같이 눈과 비, 바람을 맞으며 떠나간다.
『죽은 군대의 장군』에서 나는 버려지고 잊힌 자들을 통해
전쟁의 공허함을 전달하고자 했다. _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작업실로의 초대』에서
이스마일 카다레는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 지로카스트라가 나치 군대와 파시스트 군대에 차례로 점령당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자신의 첫 장편소설에 투영하며, 전쟁이라는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을 경험한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또한 전쟁 후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 역시 또 하나의 소리 없는 전쟁임을 드러내 보인다. 장군이 유해를 거두어들이는 작업은 단순히 ‘사람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묻혀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만이 아니라, 패배를 쓴맛을 안겨준 이국땅에 자국 군인들을 묻어두지 않겠다는 패자의 자존심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신장과 치아 상태만으로 죽은 자들의 신상을 명확히 구별해낸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 그리고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유해들을 결국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대목을 통해 작가는 이런 작업 자체가 무의미하고 부조리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카다레는 『죽은 군대의 장군』에서 전쟁이란 승자와 패자, 누구에게도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추악한 비극임을 고발한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이스마일 카다레의 첫 소설은 알바니아의 살아 있는 기억을 서방 세계에 보여주었다. _ 옵서버
황량한 웃음과 궁극의 절망이 뒤섞인, 매우 가치 있는 작품. _ 타임스
카다레는 고골과 카프카, 조지 오웰에 비견되어왔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목소리와 세계관은 그가 나고 자란 토양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_ 인디펜던트
카다레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_ 르피가로
이스마일 카다레는 역사, 민담, 정치 등 문화의 전체 지도를 그려내며, 호메로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텔링의 전통 속에 서 있는 보편적인 작가이다. _ 존 캐리(맨부커 국제상 의장)
본문 발췌
수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의 유해를 기다렸다. 이 유해를 봉환해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이 성스러운 과업을 의연하게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동족 중 단 한 명도 잊히거나 이 이국땅에 버려져서는 안 되었다. 아! 이 얼마나 숭고한 임무인가! “당당하고 고독한 한 마리 새처럼 비극적인 침묵의 산 위를 날아 그 목구멍과 발톱에서 우리의 가엾은 청년들을 구해내어 오세요.”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어느 지체 높은 귀부인이 그에게 해준 이 말을 그는 혼자 되뇌곤 했다. _ 본문 13쪽
“이 사람들이 노래로 말하려는 게 무언지는 악마만이 알 테지요. 땅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지만 이들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건 어림없는 일입니다!” _ 본문 111쪽
뜻밖의 악운이 닥치기 전에 여기서 떠나게 해주십시오, 장군은 이따금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자신은 일단의 군대가 오롯이 빠져 있는 깊은 잠을 흔들어놓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지도와 명단을 손에 든 그는 이들을 덮고 있는 흙에 쇠붙이 연장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런 방해를 정작 그들이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_ 본문 224쪽
“1미터 82라고요? 그 신장의 유골 하나를 저한테 사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안 될 게 뭡니까? 그 키라면 우리한테 쌓여 있어요. 헐값에 하나 드리겠습니다. 단돈 100달러에.”
“싫습니다!”
“같은 신장의 유골이 제겐 수없이 많은데도요! 원하신다면 1미터 92도 있어요. 2미터도 있고. 심지어 2미터 15도 있습니다! 우리 군인들이 그쪽 군인들보다 더 컸으니까요. 몇 구 드릴까요?” _ 본문 312쪽
◈ 담 당: 해외문학 2팀 이은현(singing36@munhak.com, 031-955-7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