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직했던 69편의 시!
질풍노도의 시기, 아픈 청춘에게는 이 현실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혁명이다.
풍운아 체 게바라의 혁명에 자양분을 주었던 주옥같은 시들.
이제 그 언어들이 메말라가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줄 것이다.
청춘이여, 체 게바라의 애송시로 네 삶의 혁명을 격려하라.
_김난도 (서울대 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
혁명가의 유품, 녹색 노트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된 지 하루 만에 총살당한다. 체포 당시 체가 메고 있던 낡은 배낭에는 열두 통의 필름과 여기저기 색연필로 표시된 지도, 고장 난 무전기, 두 권의 비망록, 그리고 녹색 표지의 스프링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배낭 속 물건들은 곧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스로 옮겨졌고 비망록 두 권과 녹색 노트는 다시 볼리비아군 정보기관으로 옮겨져 비밀금고에 보관되었다.
이후 두 권의 비망록은 1968년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면서 그 내용을 궁금해하던 이들의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었지만, 녹색 노트는 여러 편의 시가 적혀 있다는 소문만 남긴 채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2007년 베일에 싸여 있던 녹색 노트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트에는 그간의 소문대로 총 69편의 시가 필사되어 있었는데 필체의 주인공은 체였고 필사된 시는 그가 평소 좋아했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페의 것이었다.
체의 혁명 동지들에 의하면 이 시들은 체가 아프리카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펴던 시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총알이 빗발치는 또 다른 혁명 전장에 뛰어든 체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녹색 노트에 옮겨 적어 배낭 속에 항상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이렇게 체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했던 시 69편이 『체의 녹색 노트』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체의 녹색 노트』를 엮고 옮겼으며 중남미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구광렬은 2009년 출간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실천문학사)을 통해 녹색 노트 속의 시 일부를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체의 녹색 노트』는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시들을 실어 독자들이 체가 필사한 시 전편을 온전히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체의 마지막을 함께한 시인들
1928년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체는 혁명가인 동시에 문학을 사랑한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면 총을 들 이유도 알지 못한다’며 전장에서도 대원들에게 책 읽기의 중요성을 피력하곤 했다. 독서에 대한 체의 열정은 유별나서 쿠바혁명을 위해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지인에게 선물할 책을 구입하고 게릴라 활동을 벌이던 산속까지 책을 실어 나르기 위한 특별수송작전을 폈을 정도였다.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 특히 시를 좋아했던 체는 10대 후반에 이미 파블로 네루다, 보들레르, 베를렌, 안토니오 마차도 등 유명 시인들의 작품들을 독파했다.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옛 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에게 네루다의 시 「이별」을 인용한 쪽지를 남기는데, 쿠바혁명을 위해 함께 목숨 걸었던 친구를 떠나오는 자신의 심정을 시를 통해 표현한 것이었다. 또한 첫번째 부인과 연애할 당시에는 그녀가 좋아한 바예호의 시집을 선물하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자식들에게도 시를 읊어주는 등 시는 체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했다.
체는 『체의 녹색 노트』에 등장하는 네 명의 저항시인들의 시를 애송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렸을 때 사망한 바예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시인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네루다는 자신의 시집에 대한 체의 칭송에 그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시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답례했고, 체와 각별한 사이였던 기옌은 쿠바혁명이 성공한 직후 새로 구축된 부대에 가장 먼저 초대받아 체에게 바치는 시를 부대원들 앞에서 낭송하기도 했다. 펠리페는 멕시코 망명 중 어느 카페에서 체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만남은 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체는 펠리페의 시를 연설 도중 인용하거나 쪽지에 적어 부대원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이렇듯 체는 네 명의 시인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하며 그들의 시를 혁명 정신의 근간으로 삼았다.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는 체가 자서전에서 ‘매일같이 읽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로 좋아한 시인이었다. 네루다의 서정시는 살벌한 전장에서도 체가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고, 그의 저항시는 혁명가 체의 투지에 힘을 실어주었다. 체가 즐겨 읊었던 네루다의 시 가운데 특히 여덟 살 때부터 암송했던 「스무번째 사랑의 시」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문학을 사랑한 청년이었던 체의 감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오늘밤 난 씁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예를 들면 이렇게 씁니다: “하늘엔 별이 가득하고,
별은 멀리서 파르르 떨고 있다”고.
밤바람은 하늘에서 빙글 돌며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밤 난 씁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난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가끔 날 사랑했습니다.
오늘 같은 밤 난 그녀를 포옹했습니다.
가없는 하늘 아래 한없는 입맞춤을 했습니다.
(중략)
이제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진 않지만, 무척 사랑했습니다.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귓전을 두드리기 위해 바람을 찾곤 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의 사랑이 되겠지요. 내 키스 전의 그녀처럼.
그녀의 목소리, 순백의 육체, 그윽한 눈동자들.
이제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어쩜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그렇게 짧다면, 망각은 또 그렇게 기니까요.
오늘 같은 밤이면 나, 품안에 그녀를 가득 안았기에,
그녀를 잃은 내 영혼은 사뭇 슬퍼합니다.
비록 이것이 그녀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 아픔이라 할지라도,
비록 이것이 그녀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가 될지라도.
「스무번째 사랑의 시」 부분 (37쪽)
세사르 바예호
페루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던 인디오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인디헤니스모 운동에 참여했던 바예호는 기질적으로는 네루다와 다른 시인이었지만 체에게는 네루다와 마찬가지로 혁명의 뿌리 같은 존재였다.
바예호가 사망했을 당시 체는 겨우 아홉 살이었고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바예호는 체의 첫번째 부인이자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해준 일다 가데아와의 연애 시절 함께 즐겨 읽었던 시인이며 녹색 노트에 가장 많이 필사된 시인이기도 하다. 바예호의 시 「비참한 저녁식사」는 사회의 불합리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체의 연민을 보여준다.
언제까지 우린 멍에를 써야만 할까.
불쌍한 무릎을 뻗을 수 있을 모퉁이는 어디에 있을까.
언제까지 우리에게 양식을 주는 십자가는
노를 멈추지 않을까.
언제까지 병든 우린 의문부호를
달아야 할까……
우린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배가 고파 밤을 새는 소년의 고통스런 얼굴로.
(중략)
주정뱅이 하나, 가까이 다가와 우리에게 욕을 하더니
멀어져간다,
인간의 쓰디쓴 본연, 그 무덤 속 숟가락처럼……
어둠 속의 그 존재, 알 길 없다
이 만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비참한 저녁식사」 부분 (35쪽)
니콜라스 기옌
기옌은 미국 제국주의에 의해 핍박받았던 흑인 노예들과 과거 스페인의 침략 과정에서 탄생한 물라토 노예들의 애환을 즐겨 노래했다. 체는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후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아프리카로 향했고, 이곳에서 필사된 기옌의 시들은 검은 피부의 대원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체가 가졌을 목표의식을 잘 보여준다. 기옌의 시 「도착」을 살펴보면 처음 아프리카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체가 느꼈을 소감과 다짐을 짐작할 수 있다.
자, 이제 도착했어!
숲으로부터 습한 언어가 새어나오고,
힘찬 태양은 우리 혈관에서 떠오르네.
그리고 우리 강한 주먹엔
노가 쥐여 있다네.
(중략)
우린 아침에 연기를,
밤에는 불을,
야만의 가죽에 제격인
달 조각 같은 칼을 지니고 왔으며;
진흙에 뒹굴 악어들을,
우리의 열망을 쏠 화살들을,
열대 정글용 혁대와 깨끗한 영혼을.
그리고 무엇보다
아메리카의 얼굴에
개성 있는 프로필을 가져왔다네.
(중략)
어이, 친구들 우리 여기 왔다네!
태양 아래
땀을 흘리는 우리의 발은 피정복자들의 땀에 젖은 얼굴을 드러낼 것이고,
별들이 우리 불꽃의 끝자락을 태울 땐
우리네 웃음은 강 위에서, 새의 날개 위에서 꼬박 밤을 샐 것이네.
「도착」 부분 (26쪽)
레온 펠리페
체는 세 명의 시인들을 번갈아가며 필사하던 이전까지와 달리 볼리비아에서는 펠리페의 시만 필사했다. 그 이유는 오직 체만 알 수 있을 테지만, 확실한 것은 녹색 노트에 필사된 펠리페의 시들을 통해 당시 체가 처한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쓰인 체의 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일기에서 영양실조와 병에 걸려 전의마저 상실한 부대원들을 걱정하며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펠리페의 시 「항아리」는 이런 체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죽음 말고는 다른 출구가 보이질 않았다……
파괴…… 꿈…… 다시 한 번 위대한 꿈……
점토와 바람 간의 결정적인 이혼
항아리, 저 항아리, 저 거만한 항아리는 잘 만들어지지 않았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구멍이 나 있어,
사랑과 꿈의 연기들이 새어나가지
그리고 똥으로 가득 찬 뱃살
이제 그 항아리 깨졌어……
천둥의 원자에 의해 쏘아진 광원자가 온 거야
이제…… 대사제님,
도자기공에게 또다른 기회를 줘야 할 겁니다
마치 예전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양,
창세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겁니다
얼마나 많이 만들고 깨부수고 만들고 깨부숴야 합니까
저 거만한 항아리
인내, 희망…… 대사제님, 공……!
공을 울려요…… 공……!
다시 한 번 서문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신이시여, 다시 한 번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점토를 반죽하시어,
다시 둥글게 구球를 만들어요
다시 한 번 바람에게…… 콧김을, 입김을…… 호흡의 기적적인 증기를
후후후후……! 후후후후……! 후후후후……!
자 이제, 대사제님
이 세기적 경험 덕에 도자기공은 참 운이 좋네요
「항아리」 전문 (269쪽)
여기서 ‘똥으로 가득 찬’ 항아리는 깨지고 도자기공은 처음부터 다시 도자기를 빚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혁명을 통해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빚고 싶어했던 체에게는 끝내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시대 청춘들에게 남긴 혁명가의 메시지
체는 쿠바혁명 이후 자신에게 주어진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게릴라의 삶으로 돌아갔다. 더 나은 미래를 증명하려 했던 그였지만 죽기 전 아프리카와 볼리비아에서 보낸 2년은 실패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체는 그곳에서 지리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수많은 시련과 난관에 부딪쳐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도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비싼 대학등록금, 청년실업, 워킹푸어 같은 수많은 장벽 앞에서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하는 그들에겐 현실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크나큰 도전이 되고 있다. 이렇듯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 또 다른 혁명을 꿈꿔야 하는 청춘들에게, 체가 사랑했던 주옥같은 언어들이 공감과 위안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