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제자백가의 위대한 종합
- 저자
- 여불위
- 역자
- 김근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2-03-19
- 사양
- 816쪽 | 신국판 변형 | 양장
- ISBN
- 978-89-93905-88-5
- 분야
- 고전
- 정가
- 32,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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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반고班固가 『여씨춘추』를 잡가 류의 작품으로 분류한 이래로 여불위는 잡가의 사상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으므로 그의 사상은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여씨춘추』는 『황제사경黃帝四經』 및 후대의 『회남자淮南子』 등과 더불어 황로黃老학파에 속한다. 이 책이 비록 여러 사상가의 학설을 널리 채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베낀 잡탕은 결코 아니고 어디까지나 초기 도가의 사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각 사상의 장점들을 널리 흡수하여 새로운 학설을 형성한 것이다. 『여씨춘추』는 노자老子를 대표로 하는 초기 도가의 사상을 계승함에 있어서도 역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래서 여불위를 비롯한 황로학파를 신도가新道家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에 궁정 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권력 투쟁, 다시 말해서 진왕 영정과 여불위 사이의 투쟁도 역사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은 여불위를 대표로 하는 신도가 세력과 영정을 대표로 하는 법가 세력 사이의 모순 및 충돌로 귀착된다. 당시에는 진나라의 천하 통일이 필연적인 추세에 있었으므로 통일 후에 어떠한 정치적 전략으로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이 통치자 앞에 대두된 현실 문제였다. 이 때문에 진나라 통치 집단 내부에 커다란 두 개의 분파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영정을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법가의 군주 전제론을 견지했고, 다른 하나가 여불위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자연에 순응하고 백성들과 삶을 같이해야 한다는 신도가의 원리를 내세웠다. 여불위가 신도가를 선택한 이유는 진왕과 권력을 나누어 누리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래 진 제국의 원대한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불위가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여 방대한 저술을 기획한 것은 단지 그의 황로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애호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고, 이와 같은 원대한 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진 제국의 장기적인 안정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여불위는 당시 전횡을 일삼고 날로 사치스러워지는 진왕을 규제하고 권면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가 『여씨춘추』를 편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이 점은 『여씨춘추』 「서의序意」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서의」에 보면 황제가 전욱?頊을 가르치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여씨춘추』에 제기된 사상을 규범으로 하여 진왕을 훈계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백성들의 부모가 되게爲民父母"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 투쟁이 끝내 진왕의 승리와 여불위의 패배로 끝남으로써 신도가는 영락하고 법가의 군주 전제 사상이 일방적으로 정치계에 팽배해져서 진나라 통일 후 통치자들의 정치 강령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진 왕조의 운명을 단축시킨 계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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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국戰國말기의 대상인이자 정치가. 원래는 위衛나라 복양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한韓나라에서 장사하여 대부호가 되었다. 조趙나라에 인질로 잡혀온 진秦나라 공자 자초子楚를 도와 장양왕莊襄王으로 즉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상국相國에 임명되었고 장양왕의 아들 영정?政(나중에 진시황이 됨)이 왕위를 계승하고부터는 영정의 중부仲父로 높임을 받았다. 당시 태후(진시황의 모후이자 여불위의 첩)와 밀통관계를 유지한 여불위는 이 관계가 들통날까 두려워 노애라는 사내를 태후에게 보내어 정을 통하게 했다. 태자 정이 성장하여 이 관계를 눈치 채자 노애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극형을 당했다. 여불위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촉 땅으로 쫓겨났고 점점 압박해오는 진시황의 중압감을 못 이겨 마침내 자살했다.
여불위는 적극적으로 통일 사업을 추진하고 봉건 중앙집권제를 건설하기 위해 그 이론적인 근거를 찾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전국 말기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이런 배경 속에서 여불위가 3000여 빈객의 학식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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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초판 서문
해제: 여불위와 『여씨춘추』
여씨춘추 서序
제1부 십이기十二紀
맹춘기孟春紀
봄의 시작-맹춘기孟春紀
본성과 생명에 순응함-본생本生
꼬리와 고삐 사이의 순리-중기重己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귀공貴公
사사로움을 떠나다-거사去私
중춘기仲春紀
봄이 한창일 때-중춘기仲春紀
오로지 삶을 위해서라면-귀생貴生
정욕을 절제하는 법-정욕情欲
물감을 잘 보고 물들여야 한다-당염當染
가까운 곳을 기쁘게 하라-공명功名
계춘기季春紀
늦봄에 해야 하는 일들-계춘기季春紀
수명을 다 누리다-진수盡數
먼저 자신의 몸을 다스려라-선기先己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논인論人
동그라미와 모서리의 조화-환도?道
맹하기孟夏紀
여름의 시작-맹하기孟夏紀
배움을 권면하다-권학勸學
스승을 모시는 법-존사尊師
제자를 속이는 스승-무도誣徒
여러 사람의 장점을 모아서 부족함을 메우다-용중用衆
중하기仲夏紀
여름이 한창일 때-중하기仲夏紀
도에 합당한 음악-대악大樂
음악이 현란하면 쇠망한다-치악侈樂
적절한 음악이란-적음適音
각 시대의 악무 개관-고악古樂
계하기季夏紀
늦여름이 오면-계하기季夏紀
율려律呂의 정치-음률音律
동서남북에서 음악이 처음 생길 때-음초音初
진정한 즐거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제락制樂
어지러운 나라의 괴이한 현상들-명리明理
맹추기孟秋紀
가을의 시작-맹추기孟秋紀
군대는 필요악이다-탕병蕩兵
난세를 구하려면-진란振亂
반전론의 허구와 모순-금색禁塞
백성은 의로운 군대를 그리워한다-회총懷寵
중추기仲秋紀
가을이 한창일 때-중추기仲秋紀
위세, 필승의 전략-논위論威
싸움은 정예로 한다-간선簡選
승리를 결정짓는 것들-결승決勝
병사를 내 몸처럼 아끼다-애사愛士
계추기季秋紀
가을이 깊어지는 때-계추기季秋紀
전쟁을 하려면 민심을 얻어라-순민順民
선비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의 것-지사知士
이기고 지는 것의 원인을 파악하라-심기審己
싸우지 않고 투항케 하는 방법-정통精通
맹동기孟冬紀
겨울의 시작-맹동기孟冬紀
상례를 검소하게 하라-절상節喪
죽은 이를 위한 검소한 장례-안사安死
보배로 여기는 대상이 다르다-이보異寶
무엇이든 쓰기 나름이다-이용異用
중동기仲冬紀
겨울이 한창일 때-중동기仲冬紀
목숨을 바쳐 이룩하는 충절-지충至忠
충절의 진면목-충렴忠廉
궤변과 부조리의 고사들-당무當務
멀리 내다보는 지혜-장견長見
계동기季冬紀
늦은 겨울의 일들-계동기季冬紀
죽음으로 보답하는 선비의 절개-사절士節
한번 세운 의리는-개립介立
붉은 돌의 붉음은 빼앗을 수 없다-성렴誠廉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불침不侵
사사로움의 해악-서의序意
제2부 팔람八覽
유시람有始覽
천지의 시작-유시有始
동류의 사물들은 서로 감응한다-응동應同
마음의 혹을 제거하다-거우去尤
남의 말을 잘 들으려면-청언聽言
듣는 일도 중요하지만-근청謹聽
근본적인 일에 힘쓰다-무본務本
큰 것을 지향해야 하는 까닭-유대諭大
효행람孝行覽
효는 천하 다스림의 근본이다-효행孝行
산해진미의 모든 것-본미本味
큰일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수시首時
상을 잘 베푼 지도자들-의상義賞
정리에 어긋나더라도 멀리 내다본다면-장공長攻
천명 안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신인愼人
만남의 의미-우합遇合
반드시 사필귀정은 아니다-필기必己
신대람愼大覽
잘나갈 때 조심하라-신대愼大
논공행상의 요체-권훈權勳
자신을 낮추어야 현자를 얻는다-하현下賢
현자는 반드시 보은한다-보경報更
이치에 의해서-순설順說
지혜로 할 수 있는 일-불광不廣
대세를 중시하라-귀인貴因
왜 변법을 해야 하는가-찰금察今
선식람先識覽
미래를 미리 알려면-선식先識
삼왕과 오패는 왜 더 이상 없는가-관세觀世
변화의 조짐을 감각하는 지혜-지접知接
지혜가 모자라면 나중에야 뉘우친다-회과悔過
더불어 즐길 수는 있다-낙성樂成
노나라의 정변도 사소한 닭싸움에서 시작되었다-찰미察微
선입견을 버려라-거유去宥
올바른 명분의 근거-정명正名
심분람審分覽
신하들의 직분과 명분을 명확히 정해주다-심분審分
군주가 지켜 행할 일-군수君守
리더십의 요체-임수任數
친히 나서지 말라-물궁勿躬
명철한 군주가 되는 기술-지도知度
세를 거스르지 말라-신세愼勢
나라를 다스리는 법과 사상은 하나여야 한다-불이不二
군주는 하나만 잡고 있으면 된다-집일執一
심응람審應覽
군주의 대화법-심응審應
지도자는 말을 신중히 하라-중언重言
말해주지 않아도 깨닫는 지혜-정유精諭
본뜻을 저버린 말-이위離謂
고대 중국의 궤변들-음사淫辭
이치를 만나도 굽히지 않는다-불굴不屈
응수의 달인들-응언應言
먼저 조건을 갖추어라-구비具備
이속람離俗覽
속물성을 버린 사람들-이속離俗
세속이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고의高義
덕은 의리를 세우고, 의리는 죽음을 이긴다-상덕上德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용민用民
잘나가는 위세라도 적절히 부려라-적위適威
행위와 의욕-위욕爲欲
원수와 도적에게도 신의를 지킨 환공-귀신貴信
사람을 들어 쓰기가 어렵다-거난擧難
시군람恃君覽
임금을 세워야 하는 이유-시군恃君
더 큰 이로움을 위하여-장리長利
삶과 죽음의 한계를 알다-지분知分
유유상종의 이치-소류召類
막힌 것을 소통하게 하려면-달울達鬱
때와 세를 따져서 결행하다-행론行論
교만한 군주가 되지 않으려면-교자驕恣
겉모습을 살펴보면 미래가 보인다-관표觀表
제3부 육론六論
개춘론開春論
설득은 계절이 바뀌듯이-개춘開春
대청마루 위에서의 정치-찰현察賢
단간목을 기다린 위 문후-기현期賢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라-심위審爲
진정 아껴야 할 것-애류愛類
힘과 지혜는 순발력에서 나온다-귀졸貴卒
신행론愼行論
의롭지 않은 행위의 결말-신행愼行
의리 없는 자의 최후-무의無義
간신은 충신처럼 보인다-의사疑似
대의에 충실해야 상호 예측 가능하다-일행壹行
현자를 찾아야 성왕이 된다-구인求人
진나라 군대가 돼지 세 마리로 황하를 건너다-찰전察傳
귀직론貴直論
죽음을 무릅쓰고 직간한 사람들-귀직貴直
초 문왕에게 회초리를 댄 태보 신-직간直諫
훗날의 형세를 미리 알다-지화知化
도리를 벗어난 것들-과리過理
꽉 막힌 군주들-옹색壅塞
난리는 난리를 부른다-원란原亂
불구론不苟論
이치와 의로움은 구차하지 않다-불구不苟
명마를 구하기보다는 백락을 찾아라-찬능贊能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자지自知
상벌의 원칙-당상當賞
정신을 집중하면 귀신이 일러준다-박지博志
이치를 중시하고 그에 순응하라-귀당貴當
사순론似順論
존재는 겉보기와 다르다-사순似順
사물은 실질에 맞게 분별해야 한다-별류別類
절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유도有度
신하의 공적은 군주의 것으로 기억된다-분직分職
맡은 바의 자기 구석을 모나게 지키다-처방處方
신뢰는 작은 약속의 실천으로부터-신소愼小
사용론士容論
선비의 자태-사용士容
삼만 근을 들어올리는 장사가 한 근을 못 들랴-무대務大
농자, 천하지대본야-상농上農
농작물을 땅에 맡기는 법-임지任地1
농사는 흙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변토辯土
제때 가꾼 곡물은 이렇게 다르다-심시審時
『여씨춘추』 완역에 부쳐_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부록 1 『여씨춘추』의 판본들
부록 2 『여씨춘추』의 고증 자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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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지난 1995년 국내 최초로 『여씨춘추 역주(전3권)』(민음사)를 소개한 바 있는 김근 서강대 교수가 17년만인 2012년 3월 개정판 『여씨춘추』를 펴냈다.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제5권으로 출간된 이번 개정판에서는 예전 역주본의 소소한 오류들을 바로잡고, 번역 문체도 현대 한국어에 맞게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한문원문과 낱말 유래·풀이 등을 생략함으로써 교양 고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체제를 갖췄다. 물론 『여씨춘추』 원전 전체를 완역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독서계에 고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여씨춘추』 또한 중요한 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책에 실린 해제를 중심으로 아래에 『여씨춘추』가 어떤 책인지, 그 출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짚어보았다.
반고班固가 『여씨춘추』를 잡가 류의 작품으로 분류한 이래로 여불위는 잡가의 사상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으므로 그의 사상은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여씨춘추』는 『황제사경黃帝四經』 및 후대의 『회남자淮南子』 등과 더불어 황로黃老학파에 속한다. 이 책이 비록 여러 사상가의 학설을 널리 채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베낀 잡탕은 결코 아니고 어디까지나 초기 도가의 사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각 사상의 장점들을 널리 흡수하여 새로운 학설을 형성한 것이다. 『여씨춘추』는 노자老子를 대표로 하는 초기 도가의 사상을 계승함에 있어서도 역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래서 여불위를 비롯한 황로학파를 신도가新道家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에 궁정 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권력 투쟁, 다시 말해서 진왕 영정과 여불위 사이의 투쟁도 역사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은 여불위를 대표로 하는 신도가 세력과 영정을 대표로 하는 법가 세력 사이의 모순 및 충돌로 귀착된다. 당시에는 진나라의 천하 통일이 필연적인 추세에 있었으므로 통일 후에 어떠한 정치적 전략으로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이 통치자 앞에 대두된 현실 문제였다. 이 때문에 진나라 통치 집단 내부에 커다란 두 개의 분파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영정을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법가의 군주 전제론을 견지했고, 다른 하나가 여불위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자연에 순응하고 백성들과 삶을 같이해야 한다는 신도가의 원리를 내세웠다. 여불위가 신도가를 선택한 이유는 진왕과 권력을 나누어 누리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래 진 제국의 원대한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불위가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여 방대한 저술을 기획한 것은 단지 그의 황로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애호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고, 이와 같은 원대한 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진 제국의 장기적인 안정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여불위는 당시 전횡을 일삼고 날로 사치스러워지는 진왕을 규제하고 권면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가 『여씨춘추』를 편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이 점은 『여씨춘추』 「서의序意」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서의」에 보면 황제가 전욱?頊을 가르치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여씨춘추』에 제기된 사상을 규범으로 하여 진왕을 훈계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백성들의 부모가 되게爲民父母"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 투쟁이 끝내 진왕의 승리와 여불위의 패배로 끝남으로써 신도가는 영락하고 법가의 군주 전제 사상이 일방적으로 정치계에 팽배해져서 진나라 통일 후 통치자들의 정치 강령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진 왕조의 운명을 단축시킨 계기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