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세상의 끝으로 도망친 그때 그 시절, 밭고랑 사이에 두고 온 내 청춘
어느 시인이 말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이 온다고. 한국에서 갓 대학을 졸업할 즈음의 강은경 작가가 그랬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었다. 단지 시인의 언어와 다른 점이라고는 그 시점이 서른이 아니라, 이제 갓 스물넷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 뜨겁게 끓어오르자, 그녀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것이 그 당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역만리 런던까지 와서도 어정쩡하고 애매모호한 마음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속수무책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던 그때, 우연히 놀러간 컥필드에서 투스의 농장이 그녀의 발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농장에서의 생활과 그 기록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나, 이곳으로 이사와 함께 살아도 돼요?
이렇게 묻는 그녀에게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혹여나 그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 농부 투스의 대답에도 주저함이라곤 없었다. 언제까지라고 기약하기 힘든 농장에서의 무기한 체류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시작된 농장생활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환쟁이의 본능으로 스케치북을 펼쳤다. 낮에는 땀 흘려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날들이 이어졌다.
짧지만 한평생 도시에서만 쭉 나고 자란 태생이 척박한 농장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디 호락호락했겠는가. 볼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빨개지고, 손은 씻어도 씻어도 손톱 밑이 까맣고, 연신 고개를 숙여야 하는 통에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다른 동료들에 비해 생산성은 확연히 떨어지고 밥만 축내는 자신의 비효율적 노동력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막연한 동경과 조금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하루하루는 낯설고 호되게 고생스러웠지만, 묘하게 즐거웠다. ‘참 이상하리만치 행복한 노동’이었다.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광활한 하늘에 점 하나 찍고 거기서 스스로를 묵묵히 울리며 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저마다 전혀 다른 기준과 방법으로 살다가 어느 접점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면 파장을 일으키며 반응하지만 애초에 같은 선 위에 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아름답게 스치고 부빌 뿐 서로를 소모하지 않는다.
_ 본문 [채소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우퍼] 중에서
그중에서도 그녀를 받아준 농장 주인 투스는 인생의 나침반이자 등대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농장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일을 강요 받거나 억지로 하는 일이 없었다. 필요한 정도의 일을 알려주고 할 수 있는 만큼 부탁 받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모두가 염치와 도리에 맞게 일한다. 이런 투스의 농장 경영지침과 삶의 원칙은 강은경 작가 마음에 커다란 파장이 되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농장에 처음 왔던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쯤이 될 때까지, 그녀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보람을 새삼 깨달았으며, 고통이 좋은 거라는 말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오렌지 맛 나는 토마토에서 진짜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화장을 애써 하지 않아도 몸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얼굴빛을 찾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협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재발견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숨이 막히도록 답답하던 서울에서의 삶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토록 찾던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었다.
나는 투스에게 종종, 농장의 생활이 암환자의 요양생활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사실은 진심이었다. 생사가 달린 심각한 진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정당화되는 대안적 삶의 형태 중 하나인 요양이란 것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머물며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이렇게 살게 되었으니 참 호사스럽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고자 이곳으로 찾아 들어온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자연주의자도, 채식주의자도, 대안적 삶을 갈구하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_ 본문 [농장의 밤은 도시의 낮보다 아름답다] 중에서
모나고 상처 난 것들도 버리지 않는 마음으로
농장에 웅크려 숨었던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몰라보게 회복되어 새살이 돋아 이제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고무장화를 벗어놓고 다시 구두를 신었다. 아직 조금은 어색하지만 분명 돌아가는 그 뒷모습은 농장으로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패션, 여행, 농사, 그림, 글, 요리…… 그녀는 가끔 그녀를 둘러싼 삶의 조각들이 벼룩시장에서 산 퍼즐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열심히 한참을 맞추다 보니 다른 판의 퍼즐 조각이 섞여 있다거나 혹은 꼭 한두 조각이 없어 결국 완성할 수 없는…… 퍼즐의 완성된 그림이 어떤 것인지 몰라 항상 불안하고 답이 없던 날들…….
하.지.만!
크고 아름다운 그림도 배경 없이는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하루하루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완성을 위한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는 평범하지만 자명한 이 진리를, 우리는 그녀의 담담하고 슴슴한 농장일기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다림과 믿음이었다. 작은 씨앗 하나도 밭에 뿌릴 때는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을 거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 농부처럼. 내가 큰 그림을 보게 된 건 참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 그림은 아름다울 것이며 완성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이 생긴 것은 더더욱.
_ 에필로그 [집으로 돌아오니 밖에서 찾던 것이 여기 있었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