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 아프리카에 초록 희망을 심은
나무들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
흙투성이 옷을 걸치고, 두 손에 곡괭이를 들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무를 심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바로 숲을 다시 살리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는 환경 운동가 왕가리 마타이입니다.『왕가리 마타이』는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왕가리 마타이가 그린벨트 운동을 이끌며 아프리카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 2004년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의 삶을 다룬 그림책입니다. 과학자이자 그린벨트 운동을 창시한 환경 운동가, 여성 인권 운동가로서 열정을 불태운 왕가리의 인생을 아프리카의 자연을 닮은 아름답고 선명한 색채의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부록에는 왕가리 마타이의 일생과 오늘날의 케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수록했습니다.
케냐 작은 마을의 소녀 왕가리, 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배우다
왕가리 마타이는 아프리카 케냐의 작은 마을 이히테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광활한 숲에서 어린 왕가리는 풍요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모든 생명 하나하나가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가리의 어머니는 커다란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그루 나무가 숲보다 귀하단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왕가리는 이 말을 평생 동안 마음속 깊이 간직했습니다.
케냐는 1920년부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케냐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는 케냐의 원주민들을 내쫓거나 자기들 밑에서 일하는 소작농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케냐의 수많은 나무를 베어 내고 그 땅에 차, 커피, 담배처럼 수출하기 좋은 환금 작물을 재배했습니다. 영국인들이 큰돈을 모으는 동안 케냐의 광활했던 숲은 점차 황폐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어린 왕가리가 이해하기에 세상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누구도 왕가리에게 조국 케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황폐해진 케냐의 숲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어서다
왕가리는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점차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여자아이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왕가리는 남달랐던 어머니 덕분에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한 왕가리는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습니다. 케냐 정부가 영국 관료들의 자리를 대체할 인재를 키우기 위해 600명의 학생을 선발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기로 했던 것입니다. 대학에서의 5년의 시간 동안 왕가리는 모든 일을 분석적이며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키웠습니다. 왕가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을 알게 되었고, 자유로운 독립 국가 미국에서도 백인과 흑인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63년, 케냐 사람들의 오랜 투쟁 운동 끝에 케냐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동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왕가리는 연구를 위해 케냐의 숲을 돌아보다 황폐해진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무의 소중함을 모르는 새로운 지도자들은 영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마구 베어 팔고, 숲을 없앤 땅에 차나 커피를 심어 부유한 나라에 팔아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야생 동물은 사라지고, 자식들을 먹일 작물을 심을 수 없던 사람들은 굶주림과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왕가리는 사라진 케냐의 숲을 다시 살리고 나무의 진정한 가치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왕가리 마타이, 그린벨트 운동으로 독재 권력에 맞서다
왕가리 마타이는 1977년, 나무를 다시 심기 위한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국제기구에 도움을 요청해 후원금을 모으고, 사람들이 나무 한 그루를 키워 낼 때마다 보상금을 주고 격려했습니다. 왕가리는 단순히 환경을 지킨다는 차원을 넘어 케냐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왕가리는 여성이 가정과 마을, 온아프리카 대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1990년, 케냐 정부는 나이로비에 있는 우후루 공원에 대규모 고층 빌딩과 대통령의 조각상을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왕가리는 이 계획이 시민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해 불도저에 온몸으로 맞서며 반대 운동을 펼쳐 공원을 지켜 냈습니다. 이 사건은 케냐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일어난 시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독재자 대니얼 아랍 모이 대통령에게 왕가리는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왕가리는 몇 차례나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위협받아 다른 나라로 몸을 숨겨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위한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나무를 심어 케냐에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다
케냐는 43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독재자는 부족들 사이를 갈라놓은 다음 그들을 통치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왕가리는 이런 독재자의 음모에 맞서 이웃 부족들에게 우애의 상징으로 묘목을 나누어 주고, 공동의 묘목장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분쟁 관계에 있던 부족들은 묘목장을 돌보고 함께 나무를 키우며 화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가리는 독재자에게 맞설 힘을 갖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수차례 출마했고, 분열되어 있던 반대 정당들의 힘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아프리카의 희망 왕가리 마타이, 나무와 평화를 지켜 내다
왕가리가 심은 수많은 평화의 나무가 드디어 열매를 맺었습니다. 2002년, 마침내 독재자 대니얼 아랍 모이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왕가리는 환경부 차관에 임명됐습니다. 정의로운 케냐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왕가리는 그녀와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아프리카 전역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2004년, 왕가리는 여성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후에도 그린벨트 운동을 이끌며 환경 문제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왕가리 마타이는 2011년 9월 25일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왕가리 마타이가 세상에 알린 나무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왕가리가 심은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된 그린벨트 운동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 우림인 콩고 강 유역의 숲을 보호하는 일로 확대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