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른이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때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되니까요.”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1934년 「공중그네를 탄 용감한 젊은이」로 문학적 성공을 거둔 이래 오십 편이 넘는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며 20세기 미국의 주요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그는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캘리포니아 주 프레즈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작품에 많이 녹여냈는데, 1943년 발표한 『휴먼 코미디』역시 마찬가지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전보 배달을 하는 주인공 호머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던 사로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공간적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이타카는 사로얀이 태어나고 자란 프레즈노를 모델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아르메나아계 이민자가 등장해 이민자로서의 애환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낸 이야기이기에 『휴먼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울림과 감동은 더욱 생명력을 얻으며 이후 영화와 뮤지컬로도 제작되는 등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휴먼 코미디』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소박하고 성실한 이타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보 배달원 소년 호머를 중심으로 엮어낸,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이다.
소박하고 따뜻한 이타카 사람들의 수채화처럼 담백한 삶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목격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의 가슴 저릿한 이야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형 마커스는 전쟁터에 나간 후 열네 살 호머는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다. 어머니가 포장 회사에서 일하긴 하지만 그것도 여름뿐, 주립 대학에 다니는 누나 베스와 아직 어린 남동생 율리시스까지 네 식구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호머는 방과 후 자전거를 타고 이타카를 돌아다니며 전보를 배달하기 시작한다. 전신국장 스팽글러는 열여섯 살 미만은 고용해서는 안 된다는 전신국 규정까지 어겨가며 호머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은퇴할 나이를 이미 넘겼지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전신 기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야간 전신 기사 그로건은 많은 나이차에도 호머와 금세 친구가 된다.
호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또 가보지 못한 곳에도 두루 가볼 수 있다는 이유로 전보 배달 일을 좋아하지만, 이내 잔인한 현실에 맞닥뜨린다. 전쟁터에 나간 가족을 기다리는 이타카 사람들에게 육군성에서 온 전사통지서를 배달해야 하는 것이다.
“전보를 보낸 사람이 누구지? 내 아들 후안 도밍고니?”
“아니에요, 부인. 육군성에서 온 전보입니다.”
“육군성?” 멕시코 여인이 되물었다.
호머는 서둘러 말했다. “샌도벌 부인, 아드님이 죽었대요. 물론 착오일 수도 있어요. 아드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요. 전보에는 분명히 후안 도밍고라고 적혀 있지만, 전보가 잘못되었을지도 몰라요.” 본문31쪽
호머는 전보를 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착한 이타카 사람들에게 이렇게 터무니없고 부당한 일이 닥치는 것을 한탄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인내와 죽음으로 점철된 세상 모든 것에 깊은 연민을 느끼면서 꿈에서도 전쟁으로부터 이타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탄다.
한편, 전쟁이라는 참담한 비극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이타카의 사람들은 담담하고 묵묵하게 매일의 삶을 살아간다. 세상 모든 것이 신비하고 놀라운 네 살 율리시스, 인류가 날마다 저지르는 실수를 기쁜 소식이라도 되는 양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헤드라인을 외치며 신문을 파는 소년 오거스트, 멀리 아르메니아에서 이민 와 아들을 키우며 식품점을 운영하는 아라, 골목대장과 함께 이타카를 누비며 살구 서리를 하는 아이들…… 이들 모두는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가치를 지닌 매일을 살아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들은 하나둘 이타카로 돌아오지만 호머의 가족에게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맑은 웃음과 먹먹한 슬픔 속에 밀려오는 아련한 감동
『지리산』 『산하』 등을 집필한 작가 이병주는 『휴먼 코미디』를 읽고 “착한 악인, 악한 선인, 착한 선인들이 갖가지로 등장하여 인간으로서의 희극 또는 희극으로서의 인간을 엮어나가는 때론 경묘한 듯도 하고 때론 주먹으로 가슴을 맞은 충격 같기도 한 기분”을 느꼈다고 쓴 적 있다. 사실 이 책 『휴먼 코미디』에는 뚜렷한 기승전결도, 극적인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일상이 모자이크처럼 엮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소박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읽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가슴을 맞은 충격 같기도 한 기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전보를 배달하며 삶을 배우고 성장해나간 주인공 호머처럼 독자 역시 “휴먼 코미디”라는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삶의 진실을 책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 추천사
보통 사람은 결코 창조해낼 수 없는, 멋지고 풍요로우며 생생한 작품. _뉴요커
강렬하면서도 놀랄 만큼 단순한, 모든 것이 인상적인 책. _뉴욕 타임스
자연스러운 매력이라는 측면에서 사로얀은 독보적인 작가다. _라이브러리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