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프랑스 현대문학 실험의 결산이자 페렉 문학의 정수
『인생사용법』은 조르주 페렉의 모든 문학적 실험과 작가적 소명의식이 녹아 있는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이다. 죽기 약 4년 전인 1978년, 마흔둘의 나이에 이 작품을 완성해 그해 메디치 상을 수상한다. 문학계 평단에서는 정교한 구조와 다양한 규칙 속에서 이룩한 이 수학적 퍼즐과도 같은 놀라운 소설에 눈부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르노도 상을 받은 첫 소설 『사물들』(1965)이 있기 전까지, 갈리마르 등 유명 출판사로부터 몇 번이고 원고 출간을 거절당했던 습작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 희생자였던 부모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세계, 고아이자 유대인으로 살아야 했던 현실 세계의 잔혹함과 이데올로기의 허상으로부터 그의 결핍과 생존을 떠안아줄 집념의 세계는 오직 문학적 유희뿐이었다. 1967년 실험문학그룹 울리포Oulippo에 가입하면서 그의 문학은 더욱 활력을 띤다. 양식화된 글쓰기에서 탈피해 온갖 언어적 유희, 형식적 실험을 실천하여 그 재능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글재주를 넘어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작가, 인간을 품을 수 있는 대작가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이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는 이 방대한 분량의 작품에서 비로소 인간을 포용하는 따듯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과 마주할 수 있었고, 그만의 개성적인 문체미학을 구축할 수 있었다. 페렉은 일상적인 사물들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독자가 눈치 챌 수 없게 기존 작품들의 구절을 곳곳에 배치하는 ‘인용의 글쓰기’라는 수법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상황의 폭넓은 성찰로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런 방법으로 페렉 자신이 말한 ‘일상의 사회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퍼즐이 지니는 외적인 특정들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혼자 하는 놀이가 아니다. 퍼즐을 맞추는 이가 수행하는 각각의 행위는 퍼즐을 제작한 이가 이미 행한 행위다. 그가 몇 번이고 손에 쥐어보면서 검토하고 어루만지는 각각의 조각, 그가 시험하고 또 시험하는 각각의 조합, 각각의 모색, 각각의 직관, 각각의 희망, 각각의 절망은 타인에 의해 이미 결정되고 계산되고 연구되었던 것들이다.
―「머리말」 부분(본문 22쪽).
시몽크뤼벨리에 거리의 한 아파트가 세계의 축소판이 되다
『인생사용법』의 무대는 가상공간으로, 파리 17구 시몽크뤼벨리에 거리의 한 아파트다. 지하 2층, 지상 8층의 이 건물에서 펼쳐지는 시간은 소설의 맨 마지막에서 1975년 6월 23일 저녁 8시경의 찰나로 모두 수렴된다. 즉 이 소설의 은유적 배경 이야기의 주인공인 부유한 영국인 바틀부스의 사망 시각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이 건물에 사는 수채화가 발렌으로부터 10년간 그림을 배워 20년 동안 세계 곳곳을 떠돌며 500개의 항구를 수채화로 그린다. 이 그림을 퍼즐제작자 윙클레에게 건네 그림 퍼즐을 만들게 하여 20년간 방에 틀어박혀 ´퍼즐 맞추기´에 골몰하다 끝내 숨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들´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이 건물 안 각각의 인물과 사물이 시공간을 달리하며 빚어내는 깨알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 인생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이 이야기들이야말로, 페렉의 문학적 허구가 선사하는 가장 찬란한 요소이다. 그래서 99개의 장별 제목은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물이거나 그 인물이 사는 공간이다. 이 건물 거주자들 각각이 끌어들이는 100년 전 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사연들과 국가와 대륙을 달리하는 수없는 장소들이 서로 조합되면서, 이 건물 자체가 개개인의 인생과 세계의 거대한 사건을 보여주는 일종의 축소 모형이 된다. 페렉은 이러한 축소 모형속에 사는 사람들을 순차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독특한 규칙(체스의 행마법)에 따라 서술해감으로써 정형화된 장르적 양식을 탈피해 이 소설의 배경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퍼즐이 되는 묘를 발휘한다.
페렉이 전해주는 각각의 사연을 담은 이야기들은 책 말미의 부록에 실려 있다. 다시 말해, 총99개의 장에 107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이다. ´공중그네에서 내려오기를 거부했던 곡예사 이야기´ ´단어들을 말소했던 남자 이야기´ ´마구상과 그의 여동생, 그리고 매제의 이야기´ ´83번이나 악마를 나타나게 했던 여인 이야기´ ´좋아하는 놀이를 빼앗긴 햄스터 이야기´ ´히틀러의 생존 가능성에 관한 증거를 모았던 창고 계장 이야기´ 등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사연들과 사람들. 이 낱낱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아닌 온전한 유기체적 구조로 되살아나면서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생 그 자체가 된다. 즉 개별 이야기들은 독립된 이야기로 존재하는 동시에 이 아파트 내의 공동 영역에서 얽히고설킨 관계적 지리를 드러내면서, 공동의 삶과 개인의 삶 사이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하는 관계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부분의 총합이 전체를 구성하는 퍼즐 자체의 속성을 벗어나 인생이 던지는 신비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결국 바틀부스는 그토록 매달렸던 퍼즐을 완성하지 못한 채 수수께끼와도 같은 결과의 퍼즐판을 남긴 채 이미 자신이 예비해놓은 함정과 더불어 죽음의 미명 속으로, 인생의 신비 속으로 사라진다.
30명의 작가, 인용과 다시쓰기, 생존과 위반의 이야기 구조
페렉은 우리 시선의 사각지대에 있는 무생물화된 삶을 구조해내는 것을 작가적 소명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한 개의 장면, 한 개의 사물에 낱낱이 개성화된 인격과 특수성을 부여하고, 명징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묘사해간다. 이 아파트의 방 하나하나, 그 안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는 결코 똑같은 게 없다. 이를 위해 페렉은 10×10 체스판과 이 아파트를 병행해놓고, 체스의 행마법을 도입해 각 방을 우연적 질서에 따라 기술한다. 또 라틴제곱사각형이라는 수학방정식을 끌고와 방 내부를 구성하는 갖가지 변이들을 만들어내어 그 어느 것 하나도 겹치지 않게, 유일무이한 삶의 일회성과 우연성을 작품의 구조로 승화시킨다. 즉 여기에 있는 의자, 침대, 커튼, 벽지의 색, 배경 시대, 인용할 작가의 문장들 등 전체를 조직하는 작업일람표를 작성해 아주 치밀하고도 수학적인 창조주의 마인드로 시적인 구성을 선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인용´과 ´다시쓰기´ 즉 반복과 차이를 통한 의미 생산이라는 글쓰기 형식을 기반으로 위반에 위반을 거듭한다. 다시 말해 그 인용구들은 페렉의 작품 속 일부로 구성되는 동시에 그 본래의 독자성을 온전히 간직한 채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말미 부록에서 밝힌바, 페렉은 30명의 작가―프랑수아 라블레, 로렌스 스턴, 쥘 베른, 귀스타브 플로베르, 레몽 크노, 프루스트, 카프카, 뷔토르, 나보코프, 보르헤스, 조이스 등―에 페렉 자신의 작품까지 포함해 인용하는 이중의 위반도 서슴지 않는다. 작품의 선두에서 밝히고 있듯, 이 모든 차용과 변용의 집필 방식에서 직간접으로 영향받은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페렉과 함께 호흡했던 당대의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자들의 세계관 속에서 각각의 개별성보다는 전체의 관계 구조나 조합에 따른 의미 생산, 각각의 구조가 지닌 상대성, 즉 결여와 일탈을 통한 페렉식의 문학적 유희, 수학적 문학의 치환인 셈이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콜라주―호명하기, 찾아보기, 기억하기
페렉의 이 소설은 텍스트 중간중간 다양한 이미지―광고용 선전 문구, 명함, 팻말, 식당 메뉴판, 카탈로그 등―가 콜라주된 작품이다. 20세기를 살아간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빙긋이 웃음 지을 만한, 그때 당시의 풍속이나 세태가 고스란히 담긴 하찮고 사소한 이 일회용 사물을 페렉은 작품 속 한 인물의 일생으로, 그 인물이 사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으로 재편시킨다. 마치 방금 그가 본 것을 한국 독자에게도 눈앞에 바로 가져온 듯하다. 게다가 흔히 소설에서는 찾기 힘든 ????찾아보기????까지 있다. 이를 통해 독자가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법한 이름들을 다시 호명한다. 이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자 기억을 통한 삶의 지속에 대해 반추하고 또 성찰하려는 페렉의 문학적 전략인 것이다. 이 목록에서 작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뿐 아니라 그 등장인물이 키운 고양이 이름, 햄스터 이름까지 현실에서는 너무나 미미해서 눈물이 날 만큼 절절한 이름들조차도 잊지 않고 불러낸다. 작품 속에서 히틀러의 조종을 받았다고 묘사된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이름 ????이승만????도 있다. 그의 호명 행위와 그 호명당한 것들의 목록은 이 소설에서 어쩌면 가장 경이로운 페렉식 생존 신호의 표시이자 메멘토 모리로서, 일상 속에서 일상에 의해 눈멀어가는 우리의 맹목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다. 페렉은 말한다. "일상의 친숙한 오브제들을 묘사하려 애쓰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들을 추억하기 위해서이며, 그것들을 더 오래 머물러 있게 하고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외 언론 리뷰】
페렉은 전세계적으로 독특한 문학인 중 한 사람이자, 그 누구도 닮지 않은 작가다. 이 작품은 소설의 역사에서 마지막 중대 사건이다. ―이탈로 칼비노
상상으로 조각조각 기운 눈부신 기념비적 조각보. 페렉은 기이한 지식과 엉뚱한 박식의 저장고이다. 그의 손에 걸리면 벌레가 갉은 탁자마저도 흥미의 대상이 된다. 『인생사용법』이 마침내 나왔으니, 이제 현대 프랑스 문학을 예전 시각으로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폴 오스터
이 건물에 들어간 당신은 거울놀이를 하고 층층의 테이블을 돌며 세계 일주를 하게 될 것이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이 책은 작가의 창작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벌레스크 문학에 맞닿아 있는 바로크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소설. ―르 몽드
경이로운 골동서적이자 잡동사니 책이자 산책자의 책. ―르 푸앵
놀랍고도 감동적이면서 사랑스러운 소설. ―뉴 스테이츠먼
셰에라자드만큼이나 묘한 매력으로 무궁무진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이 작품은 현대 소설의 고전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상상의 공동 주거지에서 펼쳐지는 생물과 무생물이 총망라된 페렉의 백과사전적 소설. ―라이브러리 저널
본문 보기
퍼즐의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퍼즐 그림의 주제도, 화가의 화법도 아니며, 바로 절단의 정교함이다. 한 번의 우연한 절단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우연한 어려움을 만들어낼 것인데, 퍼즐의 가장자리나 세부, 빛의 얼룩, 윤곽이 뚜렷한 물체, 선, 색조 변화가 있는 부분에서는 조립이 용이하고 그 나머지 겨우―구름 없는 하늘, 모래, 초원, 경작지, 응달 등―에서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어려우므로, 어려움의 정도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20쪽)
지금 이 작은 거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 남는 것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파리들, 혹은 학생들이 건물 모든 집의 현관문 밑으로 밀어 넣고 간, 새로 나온 치약을 선전하거나 또는 세제 세 상자를 사면 25상팀을 할인해준다고 알리는 광고지들. 혹은 윙클레가 일생 동안 구독했던 잡지로, 그가 죽은 뒤에도 몇 달 동안 계속 배달되었던 『주에 프랑세(프랑스의 장난감)』의 지난 호들. 또는 마루나 벽장 구석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물건들로, 어떻게 그곳에 들어와 있으며 왜 그대로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것들. 시든 들꽃 세 송이, 끝부분이 검게 탄 듯한 섬조纖條가 힘없이 늘어져 있는 연약한 나무줄기들, 빈 코카콜라 병 하나, 가짜 라피아 섬유로 만든 끈이 아직도 매달린 채 반쯤 열려 있는 종이 케이크 상자 하나. 상자 위에는 ‘루이 15세의 낙원으로, 제과점, 1742년 개점’이라는 글자가 화환 장식에 둘러싸여 예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곁에는 볼이 통통한 네 명의 어린 연인의 모습이 있다.(54-55쪽)
그에게 있어 계단은, 각 층마다 얽혀 있는 하나의 추억을, 하나의 감동을, 이제는 낡고 감지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그러나 그의 기억의 희미한 빛 속 어디에선가 고동치고 있는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즉 어떤 몸짓, 어떤 향기, 어떤 소리, 어떤 번쩍임,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오페라 곡을 노래하던 어떤 젊은 여인, 서투른 솜씨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 크레졸의 고약한 냄새, 웅성거림, 고함 소리, 시끌벅적한 소리, 실크나 모피가 스치는 소리, 문 뒤에서 나던 고양이의 애처로운 울음소리, 칸막이벽을 두드리는 소리, 슈슈 소리를 내는 축음기 위에서 되풀이되는 탱고 음악, 혹은 7층 오른쪽 아파트에서 가스파르 윙클레의 크랭크톱이 내던 지겨운 윙윙 소리, 그 소리에 답하는 듯한 세 층 아래 4층 왼쪽 아파트의 늘 한결같던 참을 수 없는 침묵을.(99-100쪽)
시노크는 천천히 읽으며 희귀한 단어들을 기록해갔고, 그의 계획은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갔다. 그는 잊혀진 단어들의 대사전을 편찬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중앙아프리카의 흑인 난쟁이 부족인 아카스인들에 대한 기억이나 역사화가 장 지구, 연가 작곡가 앙리 로마녜지 (1781-1851)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세람비신느 종, 하늘소 과에 속하는 네 마디 초시류인 스콜레코브로트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아직도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는 단순한 단어들을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10년 동안 그는 8,000개가 넘는 단어를 모았고, 이렇게 모인 단어들을 통해 오늘날 간신히 전할 만한 하나의 이야기가 구성될 수 있었다.(393쪽)
대단한 부자이면서 동시에 그 부富가 일반적으로 가져다주기 마련인 것들에 대해 무관심한 남자, 그리고 세상 전부를 포착하고 묘사하고 철저히 규명하려는 것—발설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지기 쉬운 계획—이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한 조각을 포착하고 묘사하고 철저히 규명하려는 대단히 오만한 욕망을 품고 있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에 맞설 때는, 아마도 제한적이겠지만 동시에 그만큼 전체적이고 온전하고 환원될 수도 없는 어떤 계획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관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날 바틀부스는 그의 삶 전체를, 오직 자의적인 필연성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독특한 계획에 따라 구성해나가기로 결심했다.(169-170쪽)
“난 당신을 아내로 원했어. 그리고 당신과 아이를 모두 갖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내도 아이도 없고, 이러한 상태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어왔어. 그래서 난, 그동안 우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이 위선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었던 힘, 우리가 여전히 괴로워하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놀라운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를 자문하는 것을 이제 그만두려 해.” (594쪽)
4층 층계참에 놓여 있었던 일곱 개의 대리석 무늬 사탕. 그 중 네 개는 검은색이고 세 개는 흰색인데, 바둑에서 보통 ‘고’ 혹은 ‘영원’이라고 불리는 형상으로 놓여 있었다.(619쪽)
그 이후로 그의 커다란 아틀리에는 거의 항상 비어 있다. 그러나 위팅은 맹목적인 애착 때문인지 그곳에 아직도 많은 재료들을 남겨두었다.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네 대의 조명기가 빛을 밝히고 있는 강철 이젤 위에는 ‘에우리디케’라는 제목이 붙은 커다란 캔버스가 놓여 있는데, 그는 이 캔버스가 미완성인 채 그냥 그대로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즐겨 말한다.
캔버스에는 가구가 거의 없고 회색 페인트가 칠해진 텅 빈 방 하나가 그려져 있다. 방 한가운데 있는 회색 철제 책상 위에는 핸드백, 우유병, 비망록, 라신과 셰익스피어의 초상화가 실린 페이지가 펼쳐진 책l)이 놓여 있다. 구석 벽에는 노을 지는 풍경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다. 그 곁에 문이 반쯤 열려 있는데, 아마도 그 문을 통해 방금 에우리디케가 영원히 사라졌으리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640쪽)
바틀부스는 자신의 퍼즐 앞에 앉아 있다. 그는 머리가 벗어지고 앙상하고 밀납 같은 낯빛에 생기가 사라진 눈을 가진 노인으로, 퇴색한 푸른 양모 실내복을 걸치고 회색 끈으로 허리를 맸다. 두 발은 염소 가죽으로 만든 굽 높은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채, 가장자리가 해져서 너덜거리는 실크 양탄자 위에 놓여 있다. 머리가 약간 뒤로 젖혀지고 입이 반쯤 벌어진 채 그는 오른손으로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다. 반면, 탁자 위에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거의 뒤틀리기 직전의 상태로 놓인 왼손의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는 최후의 퍼즐 조각이 끼어 있다.(654쪽)
지금은 1975년 6월 23일이고, 이제 저녁 8시가 되려고 한다. 자신의 퍼즐 앞에 앉은 채 바틀부스는 막 숨을 거두었다. 테이블보 위에는 439번째 퍼즐이 놓여 있다. 이 퍼즐의 황혼녘 하늘에 해당하는 한 부분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단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인한 검은 구멍이 거의 완벽한 X자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바틀부스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조각은, 오래 전부터 그의 아이러니한 삶을 통해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W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6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