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얌전히 앉아 있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 복도를 돌아다니는 성용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무시하는 성용이가 못마땅한 태정이.
우산 하나에 자신만의 상상으로 왕국을 세우는 영아.
엄마를 기다리다 만난 키 큰 나무 그림자와 신 나게 논 수혜.
한 교실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가슴 깊이 숨겨 둔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위로하며
아이들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깊은 공감의 옴니버스 동화가 시작된다.
1. 다른 반으로 이사 갈 거야 : 성용이 이야기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너무도 힘든 성용이. 참고 앉아 있자면 송충이가 등이며 엉덩이를 기어다니는 것만 같다. 간신히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교실 밖으로 나간 성용이는 어느 반에서나 아이들이 똑같이 나무토막처럼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교실 안의 아이들을 모두 운동장으로 불러 모으는 아이디어를 낸다. 제 몸을 큰북 삼아 둥둥 둥둥~ 북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2. 대로 장군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 태정이와 남수 이야기
학교에서는 교실 규칙을, 집에서는 엄마가 만든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고 그대로 따르는 태정이. 뭐든지 규칙대로 해야 해서 별명도 ‘대로 장군’이다. 시골에서 전학 온 남수는 모범생 태정이를 따라하며 도시 학교에서 모범생이 되고 싶다. 하지만 대로 장군 태정이도 규칙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는데…….
3. 누가 뭐래도 공주님 : 영아 이야기
친구들이 살던 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높은 아파트와 넓은 길이 들어섰다. 동네 친구들은 새로 난 길을 따라 떠나버렸고, 영아는 혼자서 하교한다. 영아가 학교 가는 길은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시간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영아는 우산 하나만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다. 그 왕국에서 영아는 누가 뭐래도 공주님이다.
4. 넌 누구 그림자야? : 수혜 이야기
생일날 저녁 수혜는 아파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키 큰 나무 그림자가 나타나 말을 건다. 그림자는 수혜에게 청룡열차도 태워주고 공중그네도 태워준다. 그리고 지친 수혜를 아빠처럼 등에 업어서 재워준다. 수혜는 그 그림자가 누구의 그림자인지 짐작하지만, 결코 아는 척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아빠한테 아직은 심통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 어느 아이도 예외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네 편은 신도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지만, 이야기마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내면은 매우 다르다. 새로 생긴 아파트에 사는 아이, 학교 앞 큰 도로 건너 산자락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집에 사는 아이, 시골에서 신도시로 이사 온 아이, 학교 수업 시간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반대로 학교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는 아이. 30여명의 아이들이 같은 반에서 똑같은 책상에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지만, 하나하나의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다.
작가는 서로 다른 아이들을 한데 뒤섞어 단순화시키고 일반화시키며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실을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아이들은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작가는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는 아이들을 각각의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어떤 아이도 넘겨짚거나 생략하지 않고 아이들이 가슴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려낸 아이들의 내면과 간절한 바람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어른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그 현실은 군더더기 없이 선명하고 예리하다. ´대로 장군´ 태정이 뒤에는 더 무서운 ´대로 마마´ 태정이 엄마가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채고, 친구들 집을 밀어 버리고 새로 만든 큰 길은 우리나라 어디든 통한다고 하지만 그 길을 통해 가장 먼저 친구들이 떠난다는 것도 아이들은 정확히 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힘으로 그 현실을 밀어내기도 하고 보듬어 안기도 하며 씩씩하게 자란다.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고 강하게 붙잡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의 힘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현실과 간절한 바람 사이의 틈에서 돋아나는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간혹 통쾌한 한판 일탈을 벌이기도 한다. 뾰족 우산 아래에서 예쁜 드레스 입은 공주님이 될 수 있었던 영아처럼, 실내화를 신고는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선생님 앞에서 실내화에 사인펜으로 줄 세 개를 그어 보인 후 당당하게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는 성용이처럼,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를 생일날 저녁 다시 만나 여한없이 실컷 놀 수 있었던 수혜처럼.
작가는 현실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이들의 내면과 바람을 환상요소로 그려내며 한 행 한 행 행간마다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다.
담백하게, 군더더기 없이, 사려 깊게 행간마다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네 편의 이야기는 교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다. 작가는 어느 아이도 예외로 만들지 않는다. 학교에서 만나 겪게 되는 소소한 일들은, 그러나 학교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아이들에게는 전력을 다해 뚫고 나가야 하는 생애 최대의 그리고 최초의 사건들이다. 작가는 그 ´인생의 맨 처음 이야기들´을 과장 없이 담백하게, 무엇보다 사려 깊게 그려낸다. 네 명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작가는 아이들 곁에 공기처럼 머물며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오래 보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작가의 눈과 손을 거쳐 글과 그림으로 그려진 이 아이들은 진정 사랑스럽다. 따뜻한 배려, 섬세하고도 깊은 관심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