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 스케치북
아티스트 44인의 아이디어 인큐베이터를 훔쳐보다
스케치북은 아티스트들에게 무엇일까? 이 책에 소개된 아티스트들 중 어떤 이들은 “일이자 재미”라고 말했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저장해두는 “백업용 하드드라이브”라고 말하기도 하며,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기쁨을 주는 것”, “누구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실험하는 장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스케치북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하얗게 펼쳐진 백지를 앞에 두고 아티스트들은 명작이 될지도 모를 아이디어의 씨앗을 틔우고,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를 책을 위한 그림을 스케치한다. 어느 날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끼적인 낙서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던 작업의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이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스케치북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자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다. 누구나 아티스트의 스케치북을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고 싶어하지만 아티스트는 쉽게 남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아티스트 44인의 그런 비밀스런 스케치북 속을 기꺼이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우리는 아티스트들의 모든 작업 과정, 스타일, 개성이 변화하는 흔적을 스케치북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스케치는 최초로 떠오르는 번뜩이는 생각의 표현이며 첫 느낌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기 때문에 신선함과 생동감을 뿜어낸다. 거친 아이디어와 작은 스케치 들은 좀 더 큰 프로젝트들의 씨앗이 된다. 스케치북은 시각적인 일기이며 궁극적으로는 아티스트들의 삶의 기록이 된다.” _「책머리에」에서
이 책의 지은이이자 스스로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줄리아 로스먼은 아름다운 예술 서적들을 소개하는 인기 블로그 ‘북 바이 잇츠 커버(Book by Its Cover)’를 운영하다가 완성작으로서 책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첫 아이디어가 생생히 살아 있는 스케치북을 소개하는 코너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블로그 구독자들의 반응은 열렬했고 이 섹션은 곧 그녀의 블로그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하지만 블로그의 특성상 새로운 스케치북이 소개될 때마다 과거의 것은 뒤로 밀려나게 되자 지은이는 이 아름다운 스케치북 작업들이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행본으로 묶어내기로 했다. 원래 블로그에서는 작가들의 스케치북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단행본에서는 작가들의 프로필을 소개하고 스케치북이 각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스케치북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스케치북을 채우는지 등의 질문과 답을 덧붙였다.
순수 예술가, 만화가,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다양한 만큼 이 책을 채우고 있는 스케치북들도 다채롭기 그지없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44명 작가가 자유롭게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개성 또한 빛을 발한다. 어떤 스케치북에서 아티스트들은 사고 과정을 드러내고, 또 어떤 스케치북에서는 드로잉 스타일, 작가들이 사용하는 재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색채를 쓰는 방법 등을 볼 수 있다. 짧게 말해 스케치북을 통해 그 아티스트가 어떤 특성과 성격의 작가인지가 드러나는 셈이다. 이 스케치북들 속에는 아티스트들의 브레인스토밍, 낙서, 작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 사색의 흔적이 모두 들어 있고 일상의 기록, 좀 더 큰 작업을 위한 최초의 아이디어, 기술을 연마한 흔적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다듬지 않은 최초의 생각을 담고 있기에 신선하고 생생한 각각의 스케치북 페이지들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