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의 왕실문화 기획총서 제3권으로 <창덕궁 깊이 읽기>가 출간되었다. 김동욱, 유홍준, 박정혜, 황정연, 박상진, 최종희, 권선정, 김영운, 양정석, 박수희, 서영희 등 각계의 11명 전문가가 2011년 국립고공박물관의 ‘왕실문화 심층탐구’ 교양강좌를 바탕으로 전면 재집필한 이번 책은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인 창덕궁을 그야말로 심층적으로 들여다본 본격 궁궐연구서이다. 파란만장한 창덕궁의 역사부터 시작하여, 아름답고 신비로운 건축과 조경, 어마어마한 회화와 공예, 그리고 조선 최고의 음악과 춤, 마지막으로 궁궐의 전통 풍수와 나무들의 식생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창덕궁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5대 궁궐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독특한 공간 구성을 지닌 아름다운 궁궐이다. 또한 가장 오랫동안 왕의 사랑을 받았던 궁궐이자 조선왕조 최고의 문화가 집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임금이 사는 도성을 수선首善이라고 했듯이 왕조 시대에 임금은 모든 사람의 으뜸이면서 본보기로 여겨졌다. 최고 수준의 학자들이 궁궐에 모이고 가장 모범적인 사람들이 관리가 되어 궁궐에서 일하고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갖춘 장인들이 궁궐을 위해 봉사했다. 궁궐은 당대 모든 제도와 사상과 문화의 최고봉을 장식하는 곳이었던 셈이다. 조선 전기까지 궁궐을 대표하는 곳은 정궁으로 지은 경복궁이었고 창덕궁은 이궁에 지나지 않았지만 17세기에 들어오면서 그 위상은 달라졌다.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궐들이 소실된 뒤 경복궁은 복구되지 못하고 260여 년을 비워진 채로 지냈다. 대신 임금이 거처하는 법궁法宮의 자리를 이어받은 곳이 창덕궁이었다. 최고 수준의 건축과 조경이 여기에 담기고 최고의 회화작품이 이곳을 그려냈으며 가장 세련된 음식과 복식,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이곳에서 발현되었다. 장엄함의 절정에 도달한 음악이 연주되고 화려함의 극치를 다한 춤이 이곳에서 피로되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가장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된 곳이 궁궐이었다. 장대한 전각들이 철거당한 것은 물론이고 화려함을 자랑하던 모든 궁궐의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식민지 시대에 궁궐은 문화유적의 보존 대상에서도 철저히 외면되었다. 조선총독부는 1934년부터 중요 유물들이 보물이나 고적 등으로 지정하기 시작해 1943년까지 보물 419점, 고적 145점, 천연기념물 133점, 고적 및 명승 4점이 지정·고시되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궁궐은 단 한 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60년에 와서 비로소 경복궁이 사적으로 지정된 일을 꼽을 수 있으며 1962년에 와서 창덕궁과 창경궁, 덕수궁이 사적에 포함되었다.
궁궐이 이처럼 홀대되었으니 학자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사이에 소중한 유물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다행스럽게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라에서도 궁궐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에 따라 연구자들의 관심도 모아지기 시작했다. 궁궐의 각종 행사를 기록한 의궤의 중요성이 연구자들에게 인식되어 연구 성과가 서서히 나왔다. 음악이나 공연 분야가 이 일에 앞장을 섰다. 또 음식과 복식이 그 뒤를 이었다. 과천에 서울대공원이 개장되어 창경원의 동물들이 과천으로 이사하면서 창경궁이 본래의 모습을 조금 되찾았다. 이어서 창덕궁에 대한 정비도 이루어졌다. 궁궐 복구와 정비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청사를 철거하고 경복궁에 대한 전면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궁궐을 연구하는 이들도 늘어났으며 분야도 크게 다양해졌다. 회화에서부터 공예, 음식, 공연은 물론 궁궐 역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논저가 나오고 건축이나 조경에 대한 연구 성과도 쌓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창덕궁의 건축과 조경, 회화, 공예, 음악과 춤, 풍수, 그리고 근대기에 있었던 소중한 기억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