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도와 이념은 궁궐에 어떻게 구현되었나
건축의 관점과 건축 바깥의 관점으로 궁궐을 읽다
얼마 전 궁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종영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조한 허구의 서사와 볼거리가 풍부한 사극은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며 화제를 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사극 열풍 속에 궁궐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면서 궁궐 인문학 강좌나 창덕궁 후원 달빛 기행, 국립고궁박물관의 <조선왕실의 어보전> 등 궁궐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도 다양해졌다. 또한 엄격함과 위대함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궁궐이 삶의 현장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정치 투쟁의 공간으로서보다 개인들의 삶을 중심으로 궁궐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경향이다. 궁궐 관련 책들도 눈에 띄는데 답사를 돕는 개론서, 문양의 상징을 이야기한 대중적 교양서에서 궁궐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둔 역사 전공자들의 인문서, 건물의 형태에 초점을 맞춘 건축 전공자들의 학술서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출간된 『궁궐, 조선을 말하다』는 경북대 건축학부 조재모 교수가 ‘체제’의 관점에서 궁궐을 탐독한 책으로 궁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체제’란 건축 행위에 전제된 계획 같은 ‘건축적 요소’와 궁궐의 실제 운영 방식.역사적 변화 같은 ‘건축 외적인 요소’ 모두를 일컫는다. 지은이는 ‘어떻게 사용하려고 만들었는가’와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조선의 제도와 이념이 궁궐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핀다. (조재모 교수는 그간 ‘공간과 행위의 관계’를 통해 궁궐을 읽는 작업을 지속해온 젊은 학자로서, 이 책에서 궁궐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기존의 관점과 연장선상에 있다.) 공간 구성이나 배치 등의 건축적 요소가 궁궐의 하드웨어라면, 운영 방식 등의 건축 외적인 요소는 궁궐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
1부 <궁궐, 그 복잡한 얼개>에서는 건축을 읽기에 앞서 궁궐 운영을 둘러싼 여러 키워드를 다루었다. 궁궐의 계획 개념과 운영법이라 할 의례 문제, 의례 속에서 살아간 왕실 사람들의 존재를 살폈다. 2부 <규범과 관습의 타협, 궁궐 건축>에서는 궁궐 배치.공간 구성 등 물리적 실체로서 건축 공간을 이야기했다. 1부에서 언급한 의례라는 운영체제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하드웨어가 최적화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례와 궁궐 건축이 주고받는 관계가 2부의 주제이다. 3부 <궁궐을 뒤흔든 욕망>에서는 궁궐 운영의 규범에 균열을 낸 욕망과 그로 인한 건축적 변모를 조망했다. 절대 권력의 취향.근대화.외세의 영향력 등이 궁궐을 변모시킨 요소들이다. 결국 궁궐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규범 바깥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축 공간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가인 지은이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답사하며 축적한 풍부한 문헌자료의 해석을 통해 이미 소멸한 건축 유형인 궁궐의 속살을 세세히 살핀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지은이 특유의 안목의 깊이와 새로운 관점을 만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공간 사용에 대한 몇 가지 가설과 질문
궁궐을 넘어 그 시대의 도시와 건축을 둘러싼 제 문제에 대한 접근으로
이 책은 단순히 궁궐 건축뿐 아니라 그 건축 뒤에 자리한 정치적 의미를 살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세종의 경복궁 정비를 예치의 차원에서 진단하는 것이나, 성종 대의 대비전 영건을 ‘대비의 수렴청정에 대한 임금의 도덕적 리액션’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읽는 점 등이 그렇다. 또 책 곳곳에서 지은이는 문헌이 증언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가설을 제시해 흥미롭다. 제사용 건물이나 빈전이나 혼전으로 오랜 기간 사용된 편전 전각에 복도각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복도각이 제사의 형태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 등은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해 새로운 학문적 해석의 가능성을 남긴다. 무엇보다 북경의 자금성이나 교토 어소 자신전의 기타비사시, 베트남의 후에 궁궐 등 동시대 동아시아 궁궐의 고찰을 통해 조선 궁궐의 특징을 규명하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궁궐은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당대 건축 기술과 운영 이념이 집약된 매력적인 공간이다. 문화재청이 ‘문화가 펼쳐지는 궁궐, 역사가 숨 쉬는 궁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3년간 312억 원을 투자해 선보이는 대규모 사업 또한 궁궐을 중심으로 역사를 읽으려는 맥락일 테다. 하지만 궁궐에 대한 무수한 자료 속에서 단지 궁궐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시선은 그 시대의 도시와 건축을 둘러싼 제 문제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물리적으로 사라진 건축이 가진 의미를 살피려면 건물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궁궐을 둘러싼, 또 궁궐을 넘어선 다각적 접근의 한 예를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