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매혹적인 문학의 도래를 알리는
한국계 미국작가 생 박의 놀라운 데뷔작
『땅거미가 질 때까지 기다려』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생 박의 데뷔작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조지아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지아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오 년 정도 대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생 박은 처음으로 한국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비로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열정을 느끼는 글쓰기에 매진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는 그에게 글쓰기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받아들이고 통합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특히 자신이 자란 미국 남부의 이야기를 한국인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싶었고, 오 년간 창작에 매진한 끝에 나온 결실이 바로 데뷔작 『땅거미가 질 때까지 기다려』이다.
엄마를 잃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열여섯 살 소년이 기형적인 세쌍둥이 아기들과 그들의 폭력적인 형을 만난 후 스스로의 어두운 충동과 마주하며 갈등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아주 훌륭한 데뷔소설이자 뇌리에 남는 문제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2010년 타운센드 상 소설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기저의 어두운 충동,
우리 안에 존재하는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구원의 메시지…
일 년 전 엄마를 잃은 새뮤얼은 조지아 주에 위치한 가상의 작은 도시 서귀포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병을 앓던 엄마가 말을 못하게 되기 전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있었던 형 짐은 웨스트 조지언 대학에 진학한 후 거의 집을 찾지 않는다. 새뮤얼은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형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 채, 엄마의 마지막 말을 궁금해하며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학교 과제로 짧은 영상을 찍어야 하는 새뮤얼은 친구 데이비드에게서 도시 외곽에 있는 그리넌 부인의 집을 소개받고, 데이비드와 함께 어쩐지 으스스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드는 그 집을 찾아간다. 그 집에는 그리넌 부인이 원죄 없이 잉태했다고 주장하는 세쌍둥이 아기들이 살고 있는데, 아기들의 모습이 모두 기형적이다. ‘팔다리는 하나같이 길이가 다르’고 ‘눈도 모두 크기가 달라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크고, 작고 비틀린 코는 보이지도 않는’ 아기들의 모습에 새뮤얼은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처음으로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인 자아를 발견한다.
도망치듯 그리넌 부인의 집에서 나온 이후 새뮤얼의 머릿속은 온통 세쌍둥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 괴상한 아기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기들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병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새뮤얼은 결국 그리넌 부인의 집을 다시 찾아가고, 그곳에서 아기들을 학대하는 그들의 형 데릴과 마주친다. 데릴은 아기들을 학대하는 데 새뮤얼을 억지로 동참시키려 하고, 데릴의 위협과 폭력에 굴복한 새뮤얼은 어쩔 수 없이 아기들을 때리고 목 조른다.
그날 이후 새뮤얼은 자신 역시 데릴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 아기들을 죽였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괴로움과 데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온몸이 떨리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배 속에 어둠고 축축한 느낌이 가득 찬다. 결국 새뮤얼은 이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도망치듯 서귀포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데릴이라는 악과 싸워나갈 힘을 얻기 시작한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널 위해 불을 켜놓을게
세쌍둥이의 존재를 알게 되기 전 새뮤얼은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매일 학교에 가고, 주말이면 아빠의 철물점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가끔씩 일탈에 빠지기도 하지만 공부도 제법 잘하는 그런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다 기형적인 세쌍둥이를 만나고, 그들의 형 데릴에게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 새뮤얼의 삶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어둠은 단순히 데릴의 폭력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둠은 새뮤얼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처음 세쌍둥이를 보았을 때 혐오감을 느끼고, 또 ‘그것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비록 데릴의 협박에 굴한 것이었지만 자신이 세쌍둥이에게 행한 폭력에 대한 괴로움. 거기에 일 년 전 죽은 엄마에 대한 말 못할 죄책감까지 더해져 괴로움은 점점 심해지지만 새뮤얼은 가족들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차마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자신의 추악한 마음에 수치심이 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마음과 행동을 알게 되면 가까운 사람들도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가 진 뒤 어스레한 상태. 땅거미가 질 때 세상은 완전히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어둡지도 않다. 작품 속에서 새뮤얼은 땅거미가 지는 한가운데에 서 있다. ‘데릴’로 대변되는 어둠과, 날이 어두워지면 늘 불을 켜놓고 자신을 기다리던 엄마가 있는 빛의 사이에 서 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뮤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다. 혼돈과 질서,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 사이에 갇혀 있는 새뮤얼은 마음속 어둠을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데릴에게서 아기들을 구해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스스로에 대한 부정으로 겹겹이 쌓인 껍질에서 벗어나, 한층 성장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 추천사
아주 훌륭한 데뷔소설이자 뇌리에 남는 문제작. 이 작품으로 생 박은 자신이 섬세하고 자신감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작가다._북리스트
결코 잊히지 않는 흥미진진한 소설. 다소 충격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생 박은 어두운 영역을 진솔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그려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작가다. 앞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_제니퍼 맥마흔(『잃어버린 소녀들의 섬』작가)
자아를 발견하며 성장해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 고딕풍 미스터리와 소름끼치는 공포를 조화롭게 녹여냈다. 결말이 충격적이다. _블룸즈버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