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난 한복판에서 살만 루슈디가 아들을 위해 쓴 소설
살만 루슈디는 1998년에『악마의 시』라는 소설을 출간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과 지독한 고난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출간 이듬해 이란의 정치 종교 지도자는 이 소설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모독했다고 여겨 이슬람교도들에게 루슈디의 처형을 명령했고, 그의 목숨에 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사, 번역가, 신문사에도 가해진 테러와 위협은 1998년에 이란 대통령이 루슈디를 향한 파트와(죽음의 선고)를 공식 철회할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루슈디는 이러한 불안한 도피 생활의 한복판에서도 삶의 무게에 굴복하지 않고 큰아들 하룬을 위한 작품 『하룬과 이야기 바다』를 쓰고, 이 작품으로 그는 현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증명해 보인다. 활발한 서사와 언변, 유머는 독자들을 책 속으로 강하게 이끈다. 잠자리에서 아들에게 들려줄 요량으로 지은 이 작품은, 자녀에게 이 거친 세상을 설명해야만 하는 아버지로서의 살만 루슈디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색다른 소설이다. 또한 무엇보다 전 세계의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폭죽처럼 곳곳에서 터지는 화려한 재미와 재치, 그리고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깊은 철학 또한 담고 있다.
오염된 이야기의 세계에서 이야기꾼 부자가 살아남는 법
알파벳 도시의 전설적인 이야기꾼 라시드 칼리파의 가정은 어느 날 큰 풍파에 휩싸인다. 라시드의 아내는 남편이 몽상가라며 이웃집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이에 아들 하룬이 “사실도 아닌 이야기가 무슨 쓸모가 있냐고요!”라며 라시드를 몰아세우자 라시드는 그만 이야기 짓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 와중에 정치인을 위한 연설 섭외를 받아 이웃 도시로 여행을 떠난 라시드와 하룬.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던 하룬은 그날 밤 마주친 ‘물의 정령’을 따라, 라시드의 능력을 되칮아주기 위해 라시드가 이야기물 수급자로 있다는 ‘수다시’로 들어간다. 라시드가 창조한 ‘이야기 세계’에 발을 디딘 하룬은 라시드가 말해 왔던 이야기 물, 수다족과 잠잠족 등 모든 것이 실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룬 부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수다족과, 이야기를 오염시키고 이야기를 말살하려는 잠잠족 독재자 사이의 거대한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하룬과 이야기 바다』는 끊임없이 주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색채의 상상력과 입체적인 캐릭터, 속도감 있는 서사가 돋보인다. 거기에 루슈디 특유의 화려한 언변과, 기발한 유머와 재치, 지적인 예리함은 기존의 루슈디의 팬들을 만족시키며, 어린 독자와 어른 독자 모두에게 여러 가지 형태의 감상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살만 루슈디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작품
『하룬과 이야기 바다』에서 위협받는 것이 이야기꾼의 이야기 능력이었다면,『루카와 생명의 불』에서는 이야기꾼의 존재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다. 활력이 점차 떨어져 가던 라시드는 아무도 깨울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고, 그의 아들 루카는 아버지의 생명이 시시각각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두 작품에선 모두 집필 당시의 작가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읽어낼 수 있다. 『하룬과 이야기 바다』에서 이야기 능력을 잃은 이야기꾼과 이야기를 없애려는 독재자와의 대결이라는 설정은, 흡사 언론과 창작의 자유에 대한 비유로 보이며 문학을 문학으로써 이해받지 못했던 루슈디의 고뇌가 반영된 듯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루슈디는 선과 악,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으로 세계를 나누지 않고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악당, 도무지 사랑하기 어려운 괴짜 영웅을 등장시키는 등 이 회색 세계에 대한 유머와 예리한 철학을 잃지 않는다. 이 활발하고 유쾌한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그가 심어 놓은 재미를 느끼도록 노련하게 언어를 조련하는 작가의 솜씨에, 우리는 이 작품을 ‘시공을 초월한 놀라운 소설이자 천재의 명작’이라 평한 스티븐 킹의 찬사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