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가 아니다, 나는 투명한 사회를 원한다
‘투명성(transparency)’과 ‘개방성(openness)’, 이 두 단어는 어산지가 이 자서전에서 거듭 강조한 단어다. 어산지는 종종 음모론자로 묘사되곤 하지만, 사실 그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자료가 보여주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fact)다. 위키리크스의 힘은 사실이 증거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에서 나왔다. 어산지가 설립한 위키리크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 이라크 전쟁 기록, 미국 외교 전문 등 역사상 가장 방대한 규모의 기밀 정보를 세 차례나 공개했다. 유례없는 대규모 자료 공개는 엄청난 파급력을 미쳤고, 위키리크스는 2011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어산지는 음모와 술수를 배격하고 이 세상을 좀더 투명한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가 몰두했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음모의 힘을 줄일 수 있을까?”다. 어산지는 해커로 활동하던 시절, 국가나 거대 기업의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보통 사람은 모르는 곳에 얼마나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이득을 위해 조작되고 있는 음모를 파헤치고 밝혀내기 위해 위키리크스를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천명한다. “인터넷은 어떤 자유도 거저 주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에 자유를 원한다면 스스로 싸워야만 한다.” 각종 첨단 기기와 SNS의 등장으로 새로운 세상이 갑자기 도래한 것 같지만, 사실 환경의 변화나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저절로 바꿔놓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시대에,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을 그는 요청한다.
권력형 비리를 고발한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한다, 진실을 퍼뜨린다
어산지가 주목한 것은 고발의 힘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 고발자의 용기 있는 고발이 필수적이다. 위대한 저널리즘의 성취 중에는,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의 증언에 힘입은 것이 많다. 지금까지는 언론에서 공적으로 ‘말할 권리’를 행사해왔다면, 이를 확장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할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 위키리크스의 창립 철학이다. 이는 곧 모두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 길로 연결될 터였다.
흔히 어산지를 무차별적인 ‘폭로 전문가’로 오해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어산지는 국가의 만행은 널리 알리되, 약자인 내부 고발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발이 활성화되려면 제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확실한 플랫폼이 필요했고, 그는 내부 고발자 보호를 제1 원칙으로 위키리크스를 만들었다. 위키리크스에서 제보자의 존재는, 설립자인 어산지조차도 파악할 수 없도록 암호화되어 있다. 예컨대, 위키리크스에 아프간·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과 미국의 외교 전문 등 기밀문서를 대량으로 유출한 것으로 미 당국이 추측하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일병의 사례도 그렇다. 매닝과 관련해, 어산지는 이렇게 말한다. “제보자를 철저히 숨기는 시스템 덕분에, 매닝이 우리에게 자료를 넘겼는지 넘기지 않았는지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우리 서버는 아예 그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단 하나, 누구나 안심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한 사람 시민의 입에서 시작된 고발이 인터넷 집단지성의 힘으로 완성되어 진실을 드러내며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이것이 바로 어산지가 꿈꾸는 인터넷 시대의 유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