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황동규의 방황과 절망의 고통스런 행보
『悲歌』는 1965년에 출간된(창우사 刊) 황동규의 두번째 시집이다. 황동규의 詩歷을 살펴볼 때 그의 초기 시세계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시집인『비가』는 젊은날 황동규 시인의 어둡고 어두운 우수(憂愁) 속에서의 고통스러운 행보이며 젊은 영혼의 방황과 절망의 기록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청춘의 戀歌이자, 혼돈의 현실 너머에 자리잡고 있을 미답의 세계에 대한 황홀하고 달콤한 기다림을 노래한 첫시집『어떤 개인 날』(1961)과는 달리 두번째 시집『비가』는 죽음의 이미지를 통한 절망의 음울한 기다림의 세계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주 깜깜하고 어둡다. 하늘, 꽃, 바람소리, 황혼 등 주위의 모든 것들을 시인은 어둡고 음산하게 투사한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와 음울한 음조는 시인의 절대적 절망감에서 연유하는 바 그것은 비극적 세계인식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시인은 왜 그토록 절망적이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문학평론가 하응백은 시집 해설에서 그 이유를 4·19 학생혁명의 실패라는 시대적 상처와 知友 김정강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시인이 1977년판 自序에서 밝히고 있듯이 직접 헌사(獻詞)를 붙인「십사행(十四行)」과「비가 제7가」,「제10가」는 고(故) 김정강에 대한 그리움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비가」전편의 배후에 암울하게 깃들어 있으며, 이후 시인의 필생의 화두가 되는 죽음과 직면하는 계기가 된다. 어두운 절망의 시대, 지우의 죽음, 이런 비극적 상태에서『비가』는 탄생하였던 것이다.『비가』는 시대와 개인적 운명에 절망하는 한 젊은 영혼의 생생한 울부짖음이다. 神이 부재한 상황 아래에서의 절대적 절망과 고뇌가『비가』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황동규 시인은 후기「비가」에 이르러서는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절망을 삶의 구체성과 성실성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생한 삶의 구체성과 긴장을 획득하면서 일련의 여행시편을 통해 개인적 절망의 세계를 마감하고, 생의 생생한 현장을 목도하거나 구체적 삶을 조건짓는 당대의 현실을 깊숙이 끌어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비가 제11가」「여행의 유혹」「네 개의 황혼」등의 시편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 된다.
시집『풍장』을 낳게 한 뿌리이자 원천
김우창 교수는 『비가』의 세계를 "삭막한 이미지의 풍경으로 제시되는 내면화된 슬픔을 통해 텅 비어 있는 인간의 세계" 즉 생각과 현실, 움직임과 행동을 차단하는 그림자의 세계이며, 그것이 모든 외적 대상물이 순수의식에로, 다시 말하여 시적 영감의 원천에로 환원되는 세계라고 파악한 바 있다. 죽음에서 삶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절망에서 삶의 의지로 진화한 황동규 시적 편력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는『비가』의 절망적 시세계는, 그러므로 죽음과의 맞대결을 통해 삶의 생명성과 가치를 발견하는 최근 시집『풍장』을 낳게 한 뿌리이자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비가』는 황동규 시인의 젊은날의 방황과 고뇌, 세계에 대한 비극적 전망을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문 강렬한 이미지와 장중한 어조로 펼쳐 보인, 황동규의 시세계 전체를 열어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