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야마다후타로상 수상작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은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2010)로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구보 미스미의 두번째 소설이다. 데뷔작으로 야마모토슈고로상, 『책의 잡지』 소설 베스트 1위, 서점대상 2위의 영예를 안으며 “두려울 만큼 초대형의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저자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아픔이자 상처의 원천이기도 했던 ‘모성(어머니)’과 우울한 현대인을 따라다니는 ‘자살욕망’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나 따뜻한 울타리이지는 않은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불완전한 ‘모성’으로 인해 상처받은 세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우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려 한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었던 어느 밤에 그들은 우연히 마주치고, 무심결에 상대를 보듬어 안는다. 지금 죽지는 말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잠시 잊고 떠나보자고…… 그렇게 그들은 죽음을 보류한 채 서로에게 기대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길에 오른다. 바다에서 길을 잃고 떠밀려온 고래가 있는 저 먼 바닷가 작은 마을로.
절망의 끝에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세 남녀의 이야기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은 세상의 구석에서 소리 없이 삶을 이어가는 십대와 이십대와 사십대, 세 남녀의 고독한 삶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내세울 것 하나 없이 평범한 자들의 고독. 인간은 누구나 다 고독한 법이라고,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에 새삼 귀 기울일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우리 때문에 그들은 더욱 벼랑으로 내몰린다. 그에게는, 그녀에게는, 그 아이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우주의 전부를 안은 만큼 무겁고, 내가 바로 그 사람이 이 우주에서 만나는 마지막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걸린 시골 청년, 유토―“응, 나는 괴로웠던 거구나.”
어머니의 사랑도 형제의 우애도 느껴보지 못한 시골 아이 유토. 무엇을 해도 눈에 띄지 않는 너무도 평범한 유토는 아버지에게 떠밀리듯 도쿄로 올라와 단기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 작은 디자인회사에 취직한다. 또래의 도시 젊은이들과 전혀 어울릴 수 없었던 시골뜨기 유토의 삶에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매정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린다. 가까웠던 할머니의 죽음에 이어 우울증 진단, 회사의 부도 소식까지 들려오자 유토는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다. 좁은 자취방에 주저앉아 우울증 약(소라낙스와 루복스)으로 방바닥에 ‘죽음’이란 글자를 만들어보던 그는 술과 알약을 한꺼번에 삼킨 뒤 차가운 방바닥에 뺨을 대고 누워 이대로 ‘영원한 잠’에 들길 기다린다.
가난한 어부의 딸, 노노카―“내 몸에서 생선 냄새 나지 않아?”
궁핍한 집안 때문에 생선 통조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던 노노카. 남보다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졌지만 그녀의 부모에게는 딸의 재능을 꽃 피워줄 ‘돈’도 ‘의욕’도 없었다. 담임선생의 도움으로 가게 된 미술학원에서 난생처음 사랑에 눈뜨지만, 뜻하지 않던 임신과 떠밀리듯 급히 올린 결혼식과 동시에 이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짐짝처럼 한 남자에게 자신을 내맡기게 된 노노카는 육아 부담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집을 뛰쳐나오고 만다.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삼십 년을 시달리고, 죽도록 일만 하면서 자기 회사까지 일궈내지만 결국 회사는 부도를 맞고 만다. 연탄을 사들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무실에서 이제 그녀는 스스로를 놓아버리기로 결심한다.
리스트컷증후군 외톨이 소녀, 마사코―“엄마의 착한 아이가 될게요.”
큰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엄마는 다시 같은 일을 겪게 될까 두려워 작은딸 마사코의 삶에 병적으로 간섭하고 집착한다. 이런 엄마 때문에 늘 외톨이로 지내던 마사코에게 음악을 좋아하는 쌍둥이 오누이가 생애 첫 친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쌍둥이의 누이가 지병으로 숨지고 동생마저 도쿄로 떠나버리자 마사코는 다시 혼자가 된다. 딸의 슬픔을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절망한 마사코는 자기 방에서 웅크린 채 칼로 팔목을 그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밤, 발작하듯 뛰쳐나와 친구가 떠나버린 집 앞에서 소리 내어 운다.
특별한 희망도 욕심도 없고, 타인과 함께하는 일에도 서툴러 늘 주변에서만 맴돌듯 살아가던 세 사람에겐 사실 잃을 게 거의 없었다. 가진 게 없으니 지킬 것도 없었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니 남이 알아봐줄 리 없고, 그러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남이 사랑해줄 리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가족이란 울타리가 한 번도 따스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뒤에야 그나마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전작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에서 ‘불임’과 ‘생명탄생’이라는 대조적인 테마로 인간의 처연한 삶을 묘파했던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모성’이라는 테마로 가족과 상처의 문제에 주목한다. 모성(어머니)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조건 없는 사랑과 따뜻한 품, 희생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실의 모성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자살을 택할 정도로 절망한 세 주인공의 삶을 각각 거꾸로 읽어가다 보면, 그 근저에는 왜곡된 모성이 가져온 깊은 상처가 가로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처투성이 삶을 위무하는 그 말, “절대로 죽지 마. 내가 옆에 있을게.”
약을 먹고 죽으려 했던 유토와 연탄을 피워 죽으려 했던 노노카는 충동적으로 함께 여행길에 오르고, 한밤의 어두운 도로에서 팔목에 자해의 흔적이 가득한 열여섯 살 소녀 마사코를 만난다. 묵묵히 운전만 하는 무기력한 청년, 퀭한 눈으로 차창 밖만 응시하는 중년의 여자, 그들의 차에 타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깡마른 소녀. 셋은 오랫동안 그 길을 달려 고래가 표류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며칠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자살하기 위해 뭍으로 올라왔을 수도 있는 고래를 바라보며 어서 바다로 돌아가라고 응원하기 시작한다.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돌아가 결국 거기서 죽게 되더라도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바닷가 마을에서 그들은 어머니와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가짜 가족’이 되어본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구심점인 ‘어머니’에 대한 각자의 상처가 드러나고, 진짜 가족과 해보지 못했던 감정의 교류가 이뤄진다. 노노카는 아기를 버린 죄책감을 ‘가짜 엄마’ 노릇으로 만회해보려 하고, 유토는 ‘가짜 아들’ ‘가짜 오빠’ 노릇을 하면서 진심으로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되며, ‘가짜 딸’ 마사코는 무심한 듯하지만 따듯하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가짜 엄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여기에 여동생을 자살로 잃은 마을 청년 마사하루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끼어들면서 이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더욱 절대적이고 견고해진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도 달라지지 않는 삶, 그래도 살아간다
구보 미스미는 “절망을 탁월하게 그리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풀리지 않는 인생”을 섬세하고 정중하게 그려낸다. 절망과 고독과 슬픔을 만져질 듯이 보일 듯이 포착해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고 울컥하게 만든다. 그녀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커다란 일격이 아니다. 몇 가지 작은 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 갑자기 주저앉게 된다. 그 후의 회복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나아질 수는 있지만, 드라마 같은 반전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 세 주인공이 함께 고래를 보았다고, 잠시 정을 나누는 가족이 되었다고 그들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상처가 단번에 아무는 것도 아니고, 뾰족한 타개책도 없다. 유토의 떠나버린 애인이 쉽게 돌아올 리 없고, 노노카의 회사가 갑자기 잘될 리 없고, 마사코의 엄마가 단번에 바뀔 리도 없다. 그러나 고래가 바다로 돌아간 뒤, 그들도 다시 한 번 삶 속으로 돌아가기로 용기를 낸다. 그러면서 유토는 애인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실컷 한번 울고 떨쳐버리자고 생각하고, 마사코는 친구를 직접 찾아가 만나보기로 다짐하고, 노노카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다 끝난 뒤에도 이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현실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많은 소설은 결말에서 그들을 일으켜 세운다. 일으켜 세우지 않더라도 어쨌든 밝은 미래를 제시한다. 우리는 상처받은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기대감을 품는다. 결국 일어서겠지. 하지만 어떻게 치유될까? 어떻게 다시 살아갈까? 하지만 저자는 ‘도약’이라는 도구를 쓰지 않는다. ‘기적’도 일으키지 않는다. 안이한 ‘희망’을 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급격히 좋아질 리는 없지만, 그래도 추스르고 살아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설이 인간을 구할 수도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어지게 하는 소설이다.
“저는 소설을 읽을 때 행복한 이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졌거나 행복한 순간에는 소설을 읽게 되지 않거든요. 인생에서 ‘해냈다!’ 하며 기뻐하는 건 정말 물거품처럼 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풀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보 미스미
☆ 추천사
고래가 표류한 바닷가 마을에서 세 사람은 진짜 부모와 자식처럼 행복한 사흘을 보낸다. 등푸른생선을 손질하고, 조림을 만들어 먹는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_아사히신문
두 번째 작품이란 것이 믿기지 않는다. _요미우리신문
가족은 최강의 아군이요 가장 의지가 되는 요새다. 정말 그럴까? 사실은 가족을 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구보 미스미는 그 아픔, 그 잔인한 현실을 그리는 작가다. _스기에 마코이(평론가)
아프고, 두렵고, 따뜻하다. _오오야 히로코(평론가)
나는 고독을 이토록 공평하게 그린 작품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_고지마 게이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