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어깨, 까만 머리의 푸른 내 청춘 앞에 앉아 있는 코흘리개들을 보며,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다짐했었다.
그런 삶도, 그런 한평생도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김용택의 교단일기』는 2004년 8월 2학기 개학식 날부터 2005년 5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아이들과 지낸 날들을 기록한 일기를 모은 책이다. 이 일기는 작가가 선생 노릇을 그만두려 하다가 다시 교단에 서며 쓴 글들이다.
“나는 감동 없는 일상을 못 견뎌한다. 어린이들에게 나는 늘 새로워야 했고, 어린이들 앞에 서서 나는 늘 살아 있는 생명 자체로 싱그러워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들 앞에 선 내 자세는 구태의연했고, 내 생각은 타성에 젖어 고루했으며, 사랑은 열정이 식어 시들해졌고, 일상은 무기력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이 일기들은 내가 나에게 채찍질을 한 부끄러운 글들이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교단에 서면서 작가는 한평생 행복한 선생으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했다. 싱싱한 어깨, 까만 머리의 푸른 청춘 앞에 앉아 있는 코흘리개들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시작했으니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변해 아이들 곁을 떠나고 싶어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기 모아놓은 일기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들은 끝없이 반성을 다짐하는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을 시작한 지 8년쯤 지나서야 나는 아이들을 보았고, 교육을 알았고, 삶을 알았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서서 사는 일을 내 평생의 일로 삼았다. 아름다우리라 생각했다. 살아보니, 그랬다. 때론 헛된 욕심과 사심을 갖기도 했으나 나는 끝내 아이들 앞으로 돌아왔고, 또 떠나지 않았다. 그해 그 겨울, 내가 처음 아이들 앞에 있음을 깊이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이 환하게 개는 것 같던 환희와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삶의 그늘을 걷어냈는지도 모른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아침인사를 한다. 그때 나는 아이들이 하나하나 독립된 사람으로 보였다. 그전에는 이 세상 아이들 모두 하나였다. 달빛 받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들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