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세계로부터 귀환한 나사로의 후예들,
이 세상과 저세상의 비밀을 눈치채버린 자의 위험한 침묵의 언어.
존재의 새 지평을 여는 생생한 목소리!
시인이자 평론가,『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지대 문창과 교수 남진우의 평론집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이후 12년 만에 펴내는 평론집이라 그 반가움이 더하다. 책으로 묶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시와 소설로 나뉜 적잖은 두께의 두 권의 책이 증명하듯 남진우는 그동안 누구보다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왔다. 또한 그의 비평의 시선은 단순히 동시대 작가에게만 머물지 않고 윤동주에서 김근의 시까지, 이청준에서 최제훈의 소설까지, 그리고 중국의 쑤퉁,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커스 주삭, 일본의 하루키를 아우르며 전 방위적으로 뻗어간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2000년대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의 한국문학의 흐름과 또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짚어봐야 할 주요 작가와 작품 들의 지형적 위치를, 날카로운 지적 언어와 섬세한 감성 언어를 결합시키며 분석과 감동의 차원을 빚어내는 남진우 특유의 비평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시대 주요 시인들을 다루었던 이전 평론집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의 추천사에서 문학평론가 최동호는 “남진우의 비평에는 불가해한 매력과 신비가 있다. 시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불사의 생명을 갈망하는 시적 근원을 투시하여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밝힌 바 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간의 흐름에도 아랑곳없이, 남진우의 비평이, 시를 대하는 그의 자세가 가진 힘이다.
시에 대한 남진우의 비평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평론 이전에 시로 등단하고,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자한 시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진우는 “문학과 종교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믿는, 오늘날 극히 드문 유형의 시인”으로, “시가 운명이 되어버린 자”처럼 한 대상만을 필생의 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제나 샤먼으로 불리기도 했거니와(신형철), 시인이 아닌 평론가의 자리에서 시와 시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평론집 안으로 들어가는 열쇠는 ‘나사로’이다. 나사로는 예수가 행한 기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을 입은 자로,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지난 다음 다시 살아 돌아온 자이다. 예수보다 앞서, 예수의 뜻에 따라, 죽음을 경유하여 다시 삶의 세계로 넘어온 희귀한 존재. 남진우는 그러나 이후 성서에서 사라진 나사로의 침묵에 주목한다. 부활의 주인공임에도 그 일화 이후 성서에서 그 존재가 사라져버린 나사로. 죽음의 세계를 목격하고 귀환한 그가 하지 못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사로의 침묵은 “엄청난 말들로 들끓고 있는 침묵, 이 세상과 저세상의 비밀을 눈치채버린 자의 위험한 침묵”이며, 우리 시대의 시인이 바로, 이 침묵의 지점에서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나사로의 후예들이라고 남진우는 말한다.
성서는 나사로를 죽음으로부터 불러낸 후 더이상 그를 호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나사로가 입을 열어 말하는 유일한 영역이 시라고 남진우는 믿는다. 그리고 죽어버린 의미, 죽은 텍스트의 회칠한 무덤에서 새어나오는 빛과 새로운 언어의 율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한국문학은 한동안 ‘죽음의 시’를 통해 ‘시의 죽음’을 견디고 유예하고 지연시키는 시적 전략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시는 죽지 않았으며 다시 살아나 지상을 배회하고 있다. 시는 다시 미래를 이야기하고 시대의 정언명령을 수행하는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들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의 무리로 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새로운 소명을 부여받고 지금 이곳으로 귀환한 나사로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언어가 천상의 신에게 가닿고 지하의 괴물을 흔들어 깨우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역시 전면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_「책머리에」에서
<제1부 낙원의 저편>에서는 황동규, 오규원, 신대철, 김혜순의 시세계를 짚어본다. <제2부 감각의 우주>에서는 박형준, 최정례,유홍준, 조용미, 김근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적 감각 살펴보고, <제3부 투쟁과 관조>에서는 김남주, 김용택, 나희덕의 시가 품은 상상력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제4부 알레고리와 상징>에서는 윤동주, 박목월, 김수영·김종삼, 전봉건의 시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드러난 나사로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는 것이 남진우의 비평이다. 그는 비평의 자리에서 또 한 번 사제의 모습으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