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절의 심장 박동이 살아 있는 쿨한 성장 소설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는 청소년 독자들이 즐길 만한 ‘읽는 재미’로 꿈틀대는 소설이다. 유영진 평론가의 말처럼 ‘그동안 청소년 독자를 계몽하거나 위무하는 작가는 많았으나 이야기를 통해 그들과 함께 즐기는 작가는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하다. 거대한 비밀이 숨겨진 미지의 사건을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관점으로 추적한다는 설정은 긴장감과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킨다. 다양한 사건을 직조해 내고 에피소드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이야기를 이끄는 재능은 이 신인 작가의 귀추를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진가는 주인공 ‘조’가 실수와 오해, 직면과 도전을 거듭하며 한 땀 한 땀 어렵게 성장을 완성해 나가는 진정성에 있다. 부모와의 갈등, 자아의 팽창과 수축에서 오는 통증, 관계의 비틀림과 화해 등 십 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고민을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양으로 재미 안에 새겨 넣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겐 그 자리를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프게 통과해 나온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는 격의 없는 조언을 제공한다. 또한 이야기 속 조와 함께 울고 웃는 동안, 결국 독자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의 뜨겁고 아팠던 십 대 시절, 그 한복판으로 되돌아가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내가 망쳐 버린 시합의 기록이다
게임도 잘하고 사교적인 ‘수다쟁이 조’는 주인공의 온라인상 별명이다. 하지만 현실의 조는 얼마 전 일어난 사고로 인해 실어증과 기억상실증에 걸린 열일곱 소년이다. 조는 어느 날 할머니의 부음을 받고 부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기억 한편에 묻혀 있던 괴짜 친할아버지를 만난다. 조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다. 그리고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소원하다. 조는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의식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끈질긴 도덕적 평가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야구를 반대한 아버지의 완고함에 마음이 다쳐 있다. 서먹한 삼 대를 한 자리에 모으며 시작한 이 작품은, 곧이어 또 다른 극적인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네가 다치기 얼마 전에 너희 반 여자 아이 하나가 죽었어. 윤여울이라고. 그건 알지.”―본문 중에서
개학을 맞아 학교에 가지만 모두들 조를 피한다. 조의 사고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 음악실에서 일어난 특수반 여학생 의문사와 조가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다. 미신에 가까운 이 소문은 점점 커져 조를 취재하려는 황색지 기자까지 따라붙는다. 조는 기억을 잃고 ‘리셋’된 상태로 머물고 싶은 마음과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지만 할아버지의 격려에 힘입어 자신을 믿어 보기로 한다. 그래서 기억 복원을 위한 최면 요법을 받기로 하고, 여울이라는 특수반 여학생의 죽음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다.
고등학교 입학부터는 먹지였다. 매직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깜깜했다. 그 장들에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을지 몰랐다. 나는 차라리 그 페이지들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본문 중에서
그런데 기자는 사실을 자극적으로 가공하여 세상에 터뜨려 버린다.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세상에 노출되어 버린 조는 자신을 몰아세우는 아버지를 못 견뎌 가출을 하고, 위기 속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 윈스턴의 집에서 숨어 지내며 반쪽짜리 기억을 안은 채 악몽과도 같은 나날을 보낸다. 이 와중에 조가 인터넷에서 친하게 지내던 ´엘´은 조에게 만남을 제안한다. 오프라인이었기에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엘의 조언과, 언제나 조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리는 할아버지의 두툼한 손, 조 마음속의 낯선 목소리는 어둠과 빛 가운데서 서성이는 조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더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한다.
“마음의 상처란 것은 저절로 아물어지는 것이 아니야.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매듭을 지어야만 해. 일단 네가 할 일은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야.”―본문 중에서
조는 과연 이 혼란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과연 여울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적의는 공보다 빠르고 트럭보다 크다. 나는 수없이 바닥을 뒹굴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피하지 못해 맞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떠나야 한다.―본문 중에서
인생의 마운드에 올라 역전을 꿈꾸는 청춘을 위로하는 작품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시선’이다. 시선은 곧 관계이다.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조의 시선, 아버지를 숨어 애틋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 조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선, 여울이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일방적인 시선, 세상을 떠난 사람을 바라보는 남은 이의 시선. 그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상처와 온기를 주고받는 동안, 조는 어떤 눈으로 나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것이냐에 대한 답을 찾아 간다. 그리고 새로이 정립된 그 시선 안에서 한땐 상처였고 슬픔이기도 했던 상황들조차 ‘조’라는 한 명의 인물을 성장시키기 위한 밑거름으로 해석되고 수렴된다. 이 작품에 숨은 가장 중요한 시선을 어떤 모양의 인생이라도 그것을 감싸 안고 긍정하려는 작가의 시선인 셈이다.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는 과거와 미래와 관계된 두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라는 과거에 대한 질문은 여울이의 죽음과 주인공의 실어증과 관계되어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라는 미래에 대한 질문은 단절된 부자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서로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던 두 질문에 대한 응답은 결말에서 만나 불꽃을 일으키며 10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를 뜨겁게 보여준다.―유영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주인공 조가 주니어 야구 선수 출신인 만큼 작품 속엔 야구와 관련된 다양하고 재미난 비유들이 등장한다. 조의 심정은 흡사 위기의 상황에서 손에 쥔 야구공으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하는 투수의 고뇌와 비슷하다. 조는 사실 여울이를 좋아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만을 안겼고, 세상은 모두 조를 비난하며, 자신이 의지해야 할 존재인 아버지와는 관계가 끊어진 상태다. 하지만 조는 인생이라는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시선을 미래에 두기로 한다. 묻지 못한 질문이 많기에, 아직 떨어야 할 수다가 남아 있기에 자신을 아웃시킨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하며 성큼 발을 내딛는다.
여러 콤플렉스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두 눈을 뜨고 용기를 내는 조라는 캐릭터는 무척 인상적이다. 그리고 작품 곳곳에서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엘, 윈스턴 등 사랑스러운 조연들은 저마다 반짝이는 빛을 내며 세계의 어두운 곳을 밝힌다. 우리가 청소년소설, 성장소설을 읽는 이유는 아마 ‘십 대의 것’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마치 전력질주밖에 모르는 듯한 어떤 뜨겁고 반짝이는 것들을 내 안에서 호명하기 위함일 지도 모른다.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는 그런 소망에 부응하는 소설이다. 인생이라는 미트에 ‘나’라는 공을 제대로 감아 넣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 모든 ‘청춘의 마음’들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