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진 시대, 얼어붙은 회색 세상에서 전해온
4380일간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기록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월스트리트 저널, 퍼블리셔스 위클리, 커커스,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북리스트 ‘올해의 책’★
★미국 & 영국 아마존 ‘올해의 책’★
★골든 카이트 상 수상★
리투아니아계 미국 작가 루타 서페티스의 첫 장편소설 『회색 세상에서』는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자 오랜 세월 드러나지 않았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그린 작품이다.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그 잔학행위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만큼이나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사망자만 2천만 명이 넘었고, 발트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경우 소비에트의 인종청소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잃었다. 하지만 1990년 소련이 붕괴하고 세 나라가 독립국가로 지도상에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이러한 역사는 침묵에 싸여 있었다.
실화를 접하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자료 조사차 리투아니아를 찾은 서페티스는 살아남은 친척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은 물론 여전히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입을 열기를 주저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고, 2011년 『회색 세상에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열다섯 살 소녀의 눈을 통해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낸 이 책은 전 세계 40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미국 어린이책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협회가 수여하는 ‘골든 카이트 상’을 수상했다. 또한 퍼블리셔스 위클리, 월스트리트 저널, 커커스 등 각종 매체와 미국과 영국 아마존에서 그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사람 목숨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날 아침, 내 동생은 회중시계 하나 값이었다
1941년 리투아니아. 리나는 뭉크의 그림을 좋아하고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열다섯 살 소녀다. 일 년 전 소비에트 군대가 국경을 넘어 진격해와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에 합병되었다. 어느 날 리나는 엄마, 남동생과 함께 영문도 모르고 소비에트 비밀경찰에게 끌려간다. ‘도둑들과 매춘들’이라고 쓰인 열차에 강제로 태워진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고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사망자가 속출하는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그들이 당도한 곳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 굴라크였다.
사람들은 NKVD(KBG의 전신)의 감시와 학대, 강제노동, 굶주림이 만연한 수용소 생활에 내던져졌지만 그곳엔 다른 것도 있었다. 바로 기차 여행에서부터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연대였다. 비록 하루아침에 인간 이하의 ‘쓰레기 인생’으로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유머와 즐거움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한편 따로 끌려간 아버지가 크라스노야르스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한 리나는 손수건이나 나뭇조각에 마치 장식인 양 암호를 써넣어 소식을 전하려 한다. 무작정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다보면 언젠가는 아버지에게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서.
장차 화가가 되길 꿈꾸었던 리나는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그림으로 남겨 진실을 알리고 억울한 사람들의 명예를 지키기로 맹세한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에 분노가 치밀어오를수록 그림을 그리는 리나의 손은 분주해진다. 비슷한 또래인 안드리우스와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싹터가던 무렵 봄이 찾아오고 일부 사람들이 선별되어 또다시 열차에 태워진다. 첫 여정 때보다 한층 쇠약해진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북극이었다. 추위와 바람을 막아줄 집도 없이 동토의 땅에서 그들은 생존을 강요받는다. 그렇게 가장 무자비한 자연환경에 내던져진 사람들은 서서히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불굴의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_알베르 카뮈, 「여름」
1939년 소련은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다. 그리고 반 소비에트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다. 첫번째 강제 추방이 일어난 것은 1941년 6월 14일이었다. 『회색 세상에서』는 바로 그날로부터 시작된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듯이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와 나치 독일 사이에 끼어 꼼짝 못하고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서페티스의 친척들은 리나처럼 추방되거나 교도소에 보내져 십 년에서 십오 년의 긴 세월을 시베리아에서 견뎌야 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고국에 돌아와도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소비에트에게 집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름까지 빼앗긴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죄인 취급을 받으며 KGB의 감시 속에 정해진 지역에서만 거주해야 했고,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입 밖에 꺼낸다는 건 곧바로 감옥에 가거나 다시 시베리아로 추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그들이 감내했던 공포는 세상에서 묻힌 채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끔찍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내면화된 공포는 소련이 해체된 지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회색 세상에서』에서 그려내는 것은 화염과 살상으로 얼룩진 전쟁이 아니라 가장 무자비한 자연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이 품었던 ‘믿음’이다. 이 책의 감동적인 결말은 그것이 땅도 하늘도 얼어붙은 ‘회색 세상에서’ 한 줄기 햇살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는 믿음, 기나긴 북극의 밤이 끝나고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웃을 그날을 기다리는 믿음임을 전해준다. 서페티스가 인용한 알베르 카뮈의 문장처럼 겨울의 한복판에서 하루하루 리나와 가족을 이끌어주는 것은 불굴의 강인함과 사랑, 희망이라는 것을.
▶ 본문 중에서
바닥에서 양탄자를 들어올리고 거대한 소비에트 빗자루가 그 밑으로 우리를 쓸어넣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_40쪽
사람 목숨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날 아침, 내 동생은 회중시계 하나 값이었다. _45쪽
익숙해지다니, 무엇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아니면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아 더러운 양동이의 여물로 다시 채워야 하는 깊디깊은 슬픔에. _105쪽
나는 마치 흔들리는 추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내가 절망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추는 좋은 것을 조금 가지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_113쪽
내가 온갖 희망 속으로 빠져들고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소망을 꺼내는 순간은 바로 총구 앞에서였다. 코모로프는 자기가 우리를 고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의 고요 속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힘을 얻었다. _228쪽
죽기가 더 힘들까, 아니면 끝까지 살아남기가 더 힘들까. 내 나이 열여섯 살, 시베리아에 고아로 남겨졌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결코 의심하지 않았던 한 가지였다. 나는 살고 싶었다. _442쪽
나는 땔감을 구하려고 유르타를 나왔다. 숲 가장자리까지 5킬로미터의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그것을 본 것은. 지평선을 뒤덮은 여러 회색 색조들 사이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조그만 것이 나타났다. 나는 호박색 띠 같은 그 햇빛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태양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안드리우스가 가까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널 찾을 거야.” 그가 말했다. _467쪽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스탈린은 수백만 명을 추방하고 학살했지만 그들이 남긴 기억과 연민, 예술의 씨앗까지 파괴하진 못했다. 루타 서페티스는 그 씨앗들을 가지고 앞으로 몇 세대에 걸쳐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줄 사랑과 생존의 이야기를 빚어냈다. _로리 할츠 앤더슨(소설가, 『열병의 계절』 『말해봐』)
절제되고 힘 있는 문체. 주인공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대상인 자연만큼이나 꾸밈이 없다. 아름답게 쓰인 책은 드물고, 정적이 중요한 책은 더욱 드물다. 『회색 세상에서』는 둘 다에 해당된다. _워싱턴 포스트
묵직한 감정의 펀치. 최고의 데뷔소설. _뉴욕 타임스
리투아니아의 어두운 역사에서 인간 정신이 보여준 불굴의 용기를 그린 가슴 아픈 이야기. _AP
읽기 고통스럽지만 멈추기는 더 힘들다. _가디언
▶ 옮긴이 오숙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실에서 일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유럽 문화사』 『고전의 유혹』 『궁극의 리스트』 『추의 역사』 『브루클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