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과 기린이 뛰어노는 곳에서
아이들이 일 년만이라도 살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무한경쟁 속 사교육과 선행학습이라는 밀림, 그 반대편에서의 300일
그 소중한 시간의 기록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
초등학교 5학년에 진학하는 큰아이와 이제 7살이 된 둘째아이의 엄마 양희 작가에게,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숨이 턱 막혔습니다. 정해진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높은 성적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어떤 엄마보다 절실하게 말이죠. 모두가 바라보는 1등만을 위해 아이들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고, 마흔이 된 엄마의 인생에도 쉼표는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두 아이와 엄마는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프리카’로!
‘캐나다’가 아니라 ‘케냐’로!
★ 어느 날 얼룩말이 가슴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 일 년쯤을 뚝 잘라내 아프리카로 옮겨가면 어떨까.’
이 평범하지 않은 생각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교육’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글도 겨우 뗀 아이들이 영어유치원으로 내몰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공부’의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알아갈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무조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너보다는 내가 잘나야 하고, 앞서나가야 할 뿐입니다.
얼마 전 SBS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악동뮤지션’의 이찬혁, 이수현 남매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음악 실력과 타고난 천재성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배경에,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머나먼 타국 몽골에서 홈스쿨링을 하며 자신들이 스스로 무엇을 잘하는지 일찌감치 찾아 그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악동뮤지션’은 여타의 오디션 우승자가 프로그램 종료 후에 소속사를 찾고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뛰어드는, 일종의 공식화된 행보와는 완벽하게 다른, 다시 몽골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경쟁에 내몰린 채 쫓기듯 노래하고 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묻혀 양떼들 사이에 앉아 다시 편안하게 노래하고 싶다는 그 어린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은 많은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한번 키워보고 싶다’ 하면서요.
이미 아이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낸 엄마들의 ‘뒤늦은 후회’ 같은 거였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해진 틀과 계획 속에서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도 모두 행복하진 않다고 했다. 후회가 많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주지 못한 것, 아이들에게 충분히 놀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한 것, 아이들이 제 세상을 찾아가도록 놓아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등을 토닥여줬다. 다른 길이 있다면 한번 찾아가보라는 것이었다.
_ 본문 30쪽, [엄마들의 응원] 중에서
여기,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조금은 용감한 한 엄마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을 고민하다가 기린과 얼룩말이 뛰어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 년쯤 지내다 오자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떠난 아이들은 그곳에서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그저 해맑게, 말 그대로 폭풍성장합니다. 물론,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케냐의 문화도 배워야 하고 언어도 배워야 하므로, 그곳에서도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학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 세상에 없는 그런 꿈 속의 학교를 만나다
학교는 왜 항상 네모난 시멘트 건물일까. 그렇지 않은 학교는 없을까. 우리는 한 번쯤 넓은 잔디밭이 있고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친구들과 책도 읽고 하늘도 올려다볼 수 있는 그런 학교를 꿈꿉니다. 그런 학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프리카에서 뜻밖에도 그런 학교를 만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 학교에 잘 적응했던 것은 아닙니다. 낯선 환경과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하고 급기야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차 조금씩 귀가 트이고 말문이 뚫리고 친구들과 서먹함을 줄여가면서, 서울에서 손톱을 물어뜯고 불안 증세를 보이던 아이들이 점점 아프리카의 천진난만한 원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 엄마는 걱정을 한시름 덜어놓습니다.
손톱을 뜯는다는 한마디에 모든 선생님들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이야기할 때는 천천히 이야기하고 반 전체에 이야기할 때는 준이가 알아듣고 있는지 중간중간에 확인을 하고 혼자 있게 하지 않는다는 계획이었다.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아이를 바라보며 겁이 덜컥 났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돌아갈 수도 없고 학교를 보내지 않을 수도 없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땅에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짧아진 손톱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그래도 기다려야 했다. 스스로 서야 하는 이는 아이 자신이었으므로 안타깝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_ 본문 124쪽, [짧아진 손톱] 중에서
물론 대한민국 엄마들이 목숨을 거는 아이의 영어실력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국제학교의 특성상 아이들의 영어실력 또한 조금씩 늘어갑니다. 그리고 학교라면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숙명, 아프리카에도 엄연한 시험기간이 찾아왔지만, 학교는 엄마들에게 아이들을 그저 잘 재우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교육이념들을 통해 아이와 엄마는 자연스레 교과서 너머에 있는 더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요
사실, 아프리카 하면 왠지 덥고 무섭고 위험한 곳이라는 선입견이 어쩔 수 없이 들곤 합니다. 조금은 겁 없는 엄마였지만, 이 책의 저자도 그런 걱정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요. 정글 속에 내던져진 채로 두 아이들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암사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도 케냐의 나이로비는 꽤 오래전부터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지사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구호단체들도 상주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이로비의 안정성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지대라서 연평균 기온도 15~20도로 서늘한 편이라는 대목도 조금은 놀랍습니다.
작가는 그런 아프리카의 붉은 땅 위에서, 지구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을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더불어 아프리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아이들 학교며 여러 가지를 꼼꼼하게 알아보고 드디어 출국 준비를 하게 되는 소소한 과정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나도 한번쯤은 아프리카에서……’라고 생각했을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_ 출국 한 달 전, 보건소나 소아과에 가서 추가 접종할 것이 있는지 확인해서 모든 접종을 마치고 가세요.
2_ 적어도 출국 열흘 전, 황열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해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몸살감기 같은 후유증이 있으니 꼭 미리 맞고 안정을 취한 후 떠나세요.
3_ 증명사진도 미리 찍어서 준비하세요. 학교에 입학하면 사진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현지에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마땅한 곳을 찾기도 어렵거든요.
_ 본문 39쪽, [출국 전 꼭 해야 할 일] 중에서
그 밖에도 살 집을 구하는 것, 가구를 맞추는 것, 한국인 입맛에 맞는 먹을거리를 구해다 해 먹는 것, 중고차를 구입하고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 아이들의 공부 도우미를 찾는 것 등……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생존’을 넘어 ‘생활’하는 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이들의 여행이 단순히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이유는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엄마는 책을 읽거나 산책하는 일상의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크는 시간
한국에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면 아프리카에는 ‘폴레 폴레pole pole’ 문화가 있습니다. 어감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인 두 단어는 각국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서두르는 데 반해, 케냐 사람들은 무엇이든 천천히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데다가 ‘약속 시간’이라는 개념도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나 홀로 ‘빨리빨리’를 외친다고 해서 원래 느린 케냐의 시간이 빨리 흘러가지는 않는 법. 정반대의 속도를 가진 사람과 나라가 만나 서서히 아프리카식 농담과 아프리카의 속도에 스며드는 묘사를 통해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이런 엄마와는 달리, 누구도 빨리 숙제하라고 하지도 않고, 밥을 빨리 먹으라고도 하지 않는 케냐가 아이들에겐 이보다 좋을 순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방송작가 일에 바빠 함께 어울려 놀아주지 못하던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평온한 모습에 작가는 비로소 그동안 그들을 등 떠밀어오던 속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느긋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대륙에서 자연을 만나고 새로운 교육을 접하며 조금씩 성장해나갑니다. 소설가 칼릴 지브란은 ‘교육은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씨앗들이 자라나게 하는 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책상 앞에서 많은 지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은 두 아들의 성장에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엄마 역시, 영아원에서 만난 딸 같은 에스더, 살림을 도와주었던 마거릿, 친구처럼 지냈던 조엘 등 여러 인연들과 키베라 영화학교와 커피 농장 등의 경험을 통해 곧게 뻗어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유연해지며 삶의 여유를 찾습니다.
아이들에게 꼭 해줄 일들
1_ 아이가 지루해한다면, 골목길을 걸으며 처음 본 꽃을 찾아내기.
2_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면, 케냐에서 가장 높은 마운틴 케냐에 오르기.
3_ 아이와 오래 대화를 하고 싶다면, 15시간짜리 몸바사행 기차 타기.
4_ 아이를 환호하게 하고 싶다면, 새벽 호수에 나가 플라밍고의 춤을 바라보기.
5_ 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 이른 아침 얼룩말과 함께 자전거 타기.
엄마가 꼭 해볼 일들
1_ 노을을 바라보며 터스커 맥주 마시기.
2_ 카렌 블릭센의 카페에 앉아 오전 내내 책 읽기.
3_ 자신을 위해 장미 100송이 사기. 우리나라 돈으로 1만 원이면 충분하다.
4_ 케냐의 음악축제에서 신나게 흔들기.
5_ 중고시장인 토이 마켓에 가서 단돈 5,000원으로 옷 한 벌 사기.
_ 본문 218쪽, [아프리카니까 해보는 거야!] 중에서
아프리카에 입국한 지 6개월, 비자 연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접 국가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핑계로 이집트를 여행하고, 방학이면 우간다 열차를 타고 인도양을 다녀오거나 라무, 피시 빌리지, 몸바사 해변, 엘도레트,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 카카메가 열대우림 등 아프리카의 곳곳을 다니며 그동안 그 어디서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경험합니다.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잤다. 나이바샤 호수 옆에서 캠핑할 때도, 마운틴 케냐의 허름한 산장에서도, 작은 오두막 같은 반다에서도, 기차 안 침대에서도. 아이들은 잠자리가 바뀔 때마다 내게 말했다.
“이곳은 별이 크게 보여 좋아요.”
“이곳은 하늘이 가까워서 좋은걸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기차를 타며 잘 수 없잖아요.”
그뿐 아니었다. 어떤 곳은 하마 소리가 들려서 좋다고 했고, 어떤 곳은 마운틴 킬리만자로의 봉우리가 보여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 불평 없이 케냐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녔다.
_ 본문 190쪽,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해변:몸바사] 중에서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이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나도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고. 얼룩말과 뛰어놀고 기린을 만나보고 싶다고. 그들에게 작가는 시종일관 권합니다. “그렇다면 가보세요. 못 갈 이유가 뭐 있나요.”
그렇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면 가야 할 이유만이 남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디론가 떠날 때 가고 싶은 곳보다 갈 수 있는 곳을 고르고 가야 할 이유보다 갈 수 없는 이유를 더 많이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우리를 겹겹이 가두고 있는 외벽을 깨고 나면 눈앞에 거대한 자연이 펼쳐질 것입니다. 바로, 상상 속에만 있던 얼룩말이 뛰어놀고 창밖에 기린이 산책하는 아프리카 대자연의 풍경 말이지요.
물론, 이 책은 당신에게 반드시 아프리카로 가야만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이 아프리카 여행기는 한 엄마가 두 아이와 함께 빡빡한 일상의 급류를 벗어나 걸어간 성장의 기록이자, 세상엔 정답이 하나가 아님을 제시하는 어떤 상징으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아이에게도 중요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육 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턱으로 들어가는 아이. 인생의 한 장을 이제 막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떠나올 때는 나를 위한 이유가 더 많았지만 돌아갈 때가 되니 아이에게 좋았던 일이 더 많았다. 아니, 아이가 배운 게 더 많다.
떠날 때가 되어서 나는 다시 깨닫는다.
“잘 왔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오길 참 잘했다.”
_ 본문 328쪽, [잘 왔다, 아프리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