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여름에는 내가 흘린 땀 때문에 발이 질퍽거렸고, 겨울에는 내 체온으로 건반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건반은 마모되어 뒤틀렸고 피아노 페달에는 급기야 구멍이 났다. 조율사가 피아노를 열어보고는 현을 때리는 해머가 닳아 양털가루가 바닥에 몇 센티미터씩 쌓여 있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어느 날 옥상 계단 틈에 자려고 누워 맑은 하늘의 반짝이는 은하수를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열심히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구나……’
「열리지 않는 하늘」 중에서
어느 날 우연히 들은 피아노 연주곡 <고향집>. 그 선율이 벼락처럼 몸에 들어온 후 어린 임동창은 피아노 소리는 물론 냄새에 매료되어 피아노 주변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자유롭게 연주를 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 두드리고 또 두드려댔다. 유명한 연주자가 되어 관객의 환호를 받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아니었다. 오직 어떻게 해야 잘 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을까가 당시 그의 숙제였다. 그렇게 한없이 피아노를 두드려대던 어느 날, 한 아이로 인해 가슴속에 별이 가득차올랐다. 그 별은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첫사랑의 에너지가 음악이 되어 거침없이 흘러나온 것이다.
레슨이 끝나고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밤이면 꼭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런 밤마다 내 가슴속에는 반짝이는 별이 하나둘 박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별들이 내 가슴속에 가득찼다. 마침내 이 별들이 내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작곡을 하게 된 것이다.
‘아! 이것이 작곡이구나. 이것이 진짜 음악을 하는 거구나.’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바흐도 베토벤도 쇼팽도 브람스도 모두 자기 음악을 만들었다. 내가 죽어라 연습하고 있는 그 모든 음악이 지금 내가 이렇게 느끼듯이 그들이 어느 순간 절실히 느꼈을 별들의 흔적일 것이다.
「작곡의 길로」 중에서
내가 나를 모르는구나
하지만 손가락 끝으로 흘러나온 음악은 ‘내 음악’이 아니었다. 그저 베토벤과 쇼팽, 그리고 브람스의 흉내내기였다. 내 음악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하지만 임동창은 음악을 만드는 나, 즉 오롯한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내 음악을 쓸 수 있는가. 그것이 그가 출가한 이유였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잘 만큼 잤으면 일어나서 활동하는 나…… 그 모든 것이 나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허깨비였다. 내 속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보이지 않는 진짜 내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찾을 수 없었다. 자동차가 굴러가는데 운전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느낌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있으나 다만 찾을 수 없다. 결국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내 음악을 쓸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모르는구나」 중에서
출가 후 ‘이 뭐꼬.’라는 화두를 붙들고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입대영장이 나온다. 그리고 군악대에서 처음으로 대중음악을 만난다. 이후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로 들어선 임동창은 최동선 선생님을 찾아가 뒤늦은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주제 선율들이다. 이 주제 선율을 이어가고 발전시키고 마무리하는 것이 기법, 기술이다. (...)
날마다 밤을 새기 일쑤였다. 다음에는 어떤 음으로 이어가야 하나, 어떤 길이로, 어떤 표정으로 이어가야 하나…… 하나의 독적인 선율이 완성되기까지 두꺼운 습관의 구들장을 하나하나 걷어내면서 내 안에 박혀 있는 선율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뻤다.
「영감이 흘러다니는 길」 중에서
살아 꿈틀대는 음악을 위하여
이 책 『노는 사람, 임동창』에서 임동창은 전통음악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한다.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뉜 우리 음악의 특징과 5음음계, 얼과 말, 시김새와 흥 그리고 신명까지, 국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익숙한 민요와 장단을 바탕으로 풀어놓았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전통음악의 장단과 얼을 따라가다보면 우리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논어에 보면 “시삼백詩三百에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니 왈曰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이 나온다. 시경에 들어 있는 삼백여 편의 시는 모두 한마디로 말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이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은 곧 솔직함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전통음악을 경전이라고 본다. 가사는 시경이고 음악은 악경이다.
「우리 가락」 중에서
피아니스트인 임동창은 악기로써 피아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매끈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악기와 협연할 때마다 피아노 소리는 우리 악기와 온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피아노 현은 쇠줄인데 현을 두드리는 해머를 양털로 하다보니 건강한 쇠줄이 아닌 인위적인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임동창은 자신만의 피아노인 ‘피앗고’를 만들었다. 우리 음악의 생동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피아노의 음색을 찾고 싶어서다.
음악을 넘어 삶을 가르치다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을까
오롯한 내 음악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숙제를 모두 끝낸 지금 내 살아온 삶의 결정체를 ‘풍류風流’라고 이름 붙였다. 풍류는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신명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다.
「풍류」 중에서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평생의 화두를 푼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외부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배움이 고팠던 자신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스승들처럼, 지금의 학생들을 만났다. 임동창은 그것을 ‘화두를 풀고 나니 마치 운명처럼 아이들이 내게로 왔다’고 이야기한다.
삶과 기술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삶의 자발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임동창이 준비중인 ‘풍류학교’는 기술과 삶이 따로’가 아닌 ‘삶과 기술이 자연스레 하나가 된 삶’,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오롯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배우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삶을 대하는 진정성을 회복하고 자발성을 갖게 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곳은 자기를 찾고 삶의 기술을 익히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 기량을 기르는 일은 배우는 자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고, 선생의 역할은 배우는 이의 정신을 일깨우고 점검하는 일이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이든 그림이든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같이 흘러간다. 본디 에너지란 하나인데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
나는 교육을 전공한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가 죽어라 공부해서 내면을 갈아엎고 무언가 터득이 되었으면 안 가르칠 수가 없다. 내가 공부한 결과가 교육이고, 내가 가진 것을 진정으로 나누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술 따로 삶 따로인 것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삶의 기술을 익히는 공부」 중에서
『노는 사람, 임동창』은 ‘나만의 것’을 찾아 평생동안 치열하게 공부했던 한 음악가의 삶 외에도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고민했던 한 음악가의 철학을 담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 음악가가 평생에 걸쳐 치열하게 자신을 찾아간 이야기는 먼저 걸어간 스승의 자기고백이자 인생철학으로 읽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