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버지와의 금단의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내 남자』로 제138회 나오키 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사쿠라바 가즈키가 수상 직후 발표한 색다른 연애소설. ‘황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사춘기 소녀가 겪는 사랑과 우정, 이별과 성장 이야기를 순정만화를 연상시키는 세심한 터치로 그려냈다. 기존의 작가 이미지와 사뭇 다른 분위기의 순수하고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가 일본 전통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도시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가마쿠라의 언덕 위, 지은 지 백 년도 더 되어 지붕에서 비가 새는 오래된 저택에서 잘나가는 연애소설가 아빠와 힘께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녀 야마노우치 고야. 야성미 넘치는 이름과 달리 접촉기피증을 지닌 소심한 성격의 그녀는 중학교 입학 날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같은 반 남학생 간나즈키 유야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얼마 후 뜻밖에도 학교가 아닌 집에서 그와 조우한다. 바로 유야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재혼을 하게 된 것. 정들었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 대신 하루아침에 새엄마와 동갑내기 형제와 함께 살게 된 고야는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몰래 싹트는 첫사랑의 기척을 느끼며 망설임과 두근거림 속에서 새로운 가족과 학교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미 여자 티를 물씬 풍기는 성숙한 단짝친구 에리카, 바람둥이 아빠 주위를 맴도는 화려한 여자들, 자상하고 가정적이지만 아직 소녀다운 분위기가 남아 있는 새엄마 등을 통해 어른의 세계를 곁눈질하며 지금껏 몰랐던 가지각색의 인생을 알아가는 고야.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변화하며 소녀에서 여자가 되어가는 나날의 기록들이 이어진다.
사랑은 여자를 아이로, 남자를 지하 집단으로 만든다
소녀를 위한, 소녀에 의한 특별한 연애소설!
『고야』는 원래 청소년 대상의 라이트노벨 ‘패미통 문고’ 시리즈에서 ‘고야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삼부작으로 계획되었던 작품이다. 완간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던 이 작품을 사쿠라바 가즈키는 2008년 성인 독자들을 고려해 내용을 손보고 새로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완성했다. 이후 만화가 다카하시 마코와의 합작으로 코믹스본이 제작되어 총 세 가지 버전의 『고야』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출간 배경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고야』는 작가의 출발점이기도 한 라이트노벨의 특성과 문체를 상당 부분 지니고 있다. 극적인 내용 전개보다 캐릭터 표현에 중점을 두고,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조금씩 독자의 상상 속 세계에 스며들게 만드는 것이다. 『아카쿠치바 전설』 『청년을 위한 독서 클럽』 등의 전작에서도 성장기 소녀들을 묘사하는 것에 큰 애착과 관심을 보여온 사쿠라바 가즈키는 지금까지의 터프하고 정열적인 소녀상 대신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한, 그러면서 굳은 자아를 지니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에 솔직하게 대처하는 사랑스러운 주인공 ‘고야’를 만들어냈다.
미래의 일 따위, 어떤 직업을 얻고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뿐만 아니라 어떤 남자가 될지 어떤 여자가 될지조차 아직 전혀 몰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고야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른의 연애소설에 적힌 이런 저주스러운 일들이 미래에 고야에게도 닥쳐올까. 요코라는 소녀를 가차 없이 바꿔버렸듯. (...) 지금의 연장선상에 미래가 있다면 자신이 어른 여자가 된다 해도 분명 저렇게는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유야와 나누는 사랑도 훨씬 투명하고, 좋아한다는 감정은 비밀의 보물을 잔뜩 깔아놓은 듯 어여쁜걸. 사랑의 반짝임은 상상하는 미래의 시간까지 완만한 비탈길처럼 그저 곱기만 한 모습으로 이어져 있다.
_본문에서
일명 ‘헝그리 아트’에 종사하는 아빠의 특이한 여성편력과 갑작스러운 재혼,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생활환경. 보통 아이라면 반발심을 느끼고 고민에 빠졌을 사건들이지만 고야는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페이스를 지킨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무관심에서 나온 반응이 아니라 변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와 동화시켜나가기 위한 행동이다. 낯선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고야뿐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어른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의도적으로 가벼운 리듬을 실은 문장 곳곳에서는 특유의 감각적인 묘사가 빛을 발한다. 데뷔 초부터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사쿠라바 가즈키의 또다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 아마존 독자평
사쿠라바 가즈키가 그리는 소녀는 그 어떤 소설의 등장인물보다 리얼하고 사랑스럽고 애절하고 위험하다. 레몬 향히 풍기는 듯한 문장의 분위기에, 예전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어른의 입구에서 망설이는 아이들. 누구나 거쳐왔을 아련한 계절. 역시 사춘기 소녀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리는 데 천재적인 작가다.
순정만화 같은 도입부만 보면 아이들을 위한 소설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때 아이였던 이들’을 위한 이야기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