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나와 당신, 나와 타인,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사이의 최소공배수라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동시대 소설의 숲 탐험가 양윤의의 첫 평론집
나는 소설의 본질에 대하여 그녀보다 더 근원적으로
질문하는 비평가를 본 적이 없다. _김인환(문학평론가)
『포즈와 프러포즈』가 있어 우리 비평이 한결
똑똑해졌다는 느낌이다. _황종연(문학평론가)
비평이란 몸짓(pose)에 자신을 던짐(pro)으로써,
삶과 문학에 구애(propose)하는 일 아닐까
문학평론가 양윤의는 「얼굴 없는 사제의 숭고한 문장들―김훈의 『칼의 노래』 『강산무진』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평론으로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언어와 문장 자체의 물질성에 주목하면서 서사구조의 특성과 그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는 태도가 매우 진지하며 논리적이다.” “서사적 담론의 분석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자기 주제에 대한 확신을 심화시키는 풍부한 논의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7년 전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기대에 보답하듯 활발하게 현장비평을 해온 양윤의가 그간 쓴 글들을 간추리고 묶어 문학동네에서 첫 평론집 『포즈와 프러포즈』를 펴냈다. 비평은 그녀에게 ‘포즈’이고 또 ‘프러포즈’인 까닭에 이 두 키워드를 첫 평론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비평은 부자연스럽고 무의미하고 미심쩍은 몸짓(pose)에 지나지 않지만 그 몸짓이야말로 비평이 자신을 삶과 문학에 기투하는 방식일 것이다. 몸짓에 자신을 던짐(pro)으로써, 삶과 문학에 구애(propose)하는 것. 포즈는 과장하거나 과시하는 태도와는 무관하다. 거기에는 ‘진술하다’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여 쩔쩔매게 하다’는 뜻도 있다. 어려운 문제가 바로 세계의 미스터리일 터. 비평은 그처럼 스스로 미스터리를 출제하고 그것을 풀지 못해 쩔쩔매는 난감한 학생을 닮았다. 그러나 그런 난감 속에서만 비평은 구애를 완성하는 게 아닐까.(4쪽)
‘포즈와 프러포즈’라는 말은 ‘몸짓과 구애’ ‘무심한 몸짓과 적극적인 몸짓’으로 번역될 수 있다. ‘몸짓의 비평’은 ‘구애의 비평’으로 나아가며 완성되는데, 그렇다면 양윤의는 ‘구애하는 평론가’인 셈이다. 비평은 스스로 미스터리를 출제해놓고 쩔쩔매는 학생의 운명을 닮아서, 비평의 손아귀로부터 언제나 도망쳐나가는 텍스트를 허망하게 움켜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평은 언제나 ‘실패는 내 운명!’ 하고 외치지만, 그 실패는 역설적으로 비평의 에너지원이 된다(“비평은 실패함으로써만 한 발짝 전진할 수 있다”, 「빠져나가는 것」, 36쪽). “사고의 고공비행을 피하는” 평론가답게 양윤의는 시종일관 이 같은 비평의 자세를 견지한 채 ‘지상에서’ 소설의 숲을 탐험한다.
소설의 숲속에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녀는 소상하게 안다
『포즈와 프러포즈』는 실린 글들은 성격에 따라 3부로 나뉜다. 총론 형식의 평론을 모은 1부에서 양윤의는 콘텍스트 안에서 텍스트 읽기, 즉 이 시대의(2000년대) 소설읽기를 주요 과제로 삼는다. 첫번째 글 제목(「광장(square)에 선 그녀들」)의 ‘광장’은 영어 단어 square의 두 가지 의미(넓은 빈터/정사각형)를 품은 까닭에 ‘넓은 정사각형의 공간’을 지칭한다. 양윤의는 정사각형의 각 꼭짓점을 물질·육체·정신·관념의 네 층위로 설정하고 각 꼭짓점에 동시대 여성작가 편혜영·천운영·김애란·정이현을 배치한 후 ‘2000년대 여성소설의 존재론적 지평’을 탐구하는 식으로 우리 시대의 ‘작품지도’ ‘작가지도’를 그려낸다. 이어지는 「느낌의 서사학」 「정념의 수용기, 공감의 문학」 「서울, 정념의 지도」 등의 글에서 저자는 ‘맥락과 함께 작품읽기’를 이어나간다.
1부에서 저자가 광각렌즈의 시각으로 소설을 살폈다면 2부에서는 현미경(또는 망원렌즈)의 시각으로 읽고 쓴, 주로 소설론에 해당하는 글들을 묶었다. 권여선의 『비자나무 숲』, 박범신의 『은교』 『나의 손을 말굽으로 변하고』,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조남주의 『귀를 기울이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명지현의 『교군의 맛』, 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등, 저자는 ‘구애의 렌즈’를 끼고 이 소설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3부는 5페이지 안팎의 비교적 짧은 비평들을 묶은 것으로, 세칭 ‘리뷰’로 분류될 만한 글 15편의 모음이다. 긴 호흡의 비평문에 미상의 거부감을 가진, 그러나 한국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이 책 3부에서 독서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근 발표된 장·단편을 ‘동시대 소설의 숲 탐험가’답게 발 빠르고 날렵하게 읽어낸 글들이니(“2000년대 이후 소설의 숲에 관해서라면 그녀만큼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생태를 자세히 관찰한 사람은 드물다”, 황종연), 재기발랄한 탐험가의 시선을 빌려 ‘그 숲’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