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잡이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작은 아씨들』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올컷을 가정소설과 아동소설의 작가로, 선과 행복을 소망하는 신실한 인물을 내세워 교훈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저자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컷은 궁핍한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가정소설과 아동소설뿐 아니라 선정소설과 펄프픽션, 사실주의 소설, 풍자적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집필한 전업작가이자 상업작가인 한편, 여성운동과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중 1863년부터 1870년까지 발표한 고딕풍의 스릴러들과 선정소설들은 흥미 본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여성주의사상 및 노예해방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들이다. 『가면 뒤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올컷의 선정주의 소설 중 형식적 완성도나 내용적 깊이가 유다른 소설 네 편을 선별하여 번역한 소설집이다. 이들 작품은 올컷이 가면을 쓰기도 하고 본심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켜켜이 쌓아올린 작가적 삶의 단면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올컷의 면모는 양손잡이 작가라는 수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올컷은 비유적인 의미에서나 축자적인 의미에서나 양손잡이 작가였다. 가정소설과 아동소설 작가로 사랑을 받았지만, 높은 인기를 누린 선정소설과 펄프픽션 작가이기도 했다. 오른손잡이였지만,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끝없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오른손에 관절통이 오면 왼손으로 원고를 완성하곤 했다. 문학성에 대한 동경과 야심도 있었지만, 상업적인 장르에서 진정한 재능을 드러냈다.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적 결혼제도를 회의하고 비판했지만, 그 제도 밖에서 쉽게 잡히지 않았던 인정과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망으로 평생 허기를 느끼기도 했다. 이러한 양면성을 아우르는 양손잡이라는 비유는, 올컷의 양손이 써내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의 동시성, 팽팽한 긴장과 타협, 타협의 성공과 실패 등에 새로이 주목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팽팽한 긴장을 이끌어가는 여성인물들
— 집 안의 천사를 연기하는 악녀,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
남자보다 ‘완벽한’ 남장여자, 해시시를 삼키고 물에 뛰어든 여자
『가면 뒤에서』에는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처음 실린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은 『제인 에어』의 패러디 또는 스핀오프 작품이다. 코번트리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온 진 뮤어라는 인물은 완벽한 집 안의 천사를 자청하는 온순하고 상냥한 여성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그녀는 이 역할이 요구하는 막대한 육체노동 및 감정노동으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진, 생기 없고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제목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천사 역할을 순순히 받아들인 그녀의 얼굴은 가면에 불과하며, 그녀의 진짜 얼굴은 아름다운 희생을 온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렬히 비웃는다. 그녀는 음모를 짜고, 기지를 발휘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활용해 부당한 관계를 미화하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또한 낭만적 사랑이 이 관계를 미화하는 핵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그 신화에 발목을 잡혀 주춤거리는 바보짓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시작은 『제인 에어』와 같지만 결말은 『제인 에어』와 다른, 여느 기대를 조롱하는 결말로 향해간다. 이러한 서사는 여성이 희생적인 역할에 얽매여 있다면 오히려 그 역할을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연기함으로써 속박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두번째 작품 「어둠 속의 속삭임」은 『제인 에어』, 「누런 벽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등으로 이어지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계보에 속하는 작품으로, 자신의 돈을 노린 삼촌과의 결혼을 거부한 주인공 시빌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되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을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올컷은 결혼을 감옥 및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가부장제 결혼을 여성의 구속과 명백하게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 구속의 결과로서 히스테리와 광기를 보여준다. 이 소설 또한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다락방에 갇힌 여성인물 ‘버사’를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로 올컷은 샬럿 브론테의 전기를 읽으며, 브론테의 삶과 자신의 삶이 많이 닮아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세번째 작품 「수수께끼」는 성차에 대한 올컷의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올컷은 어린 시절부터 교유했던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여성주의자 마거릿 풀러의 주장, 즉 성차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학습되고 결정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필경사이자 스파이인 화자 클라이드는 모습이 묘해 보이는 젊은 작가의 저택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데, 그가 목목이 밝혀냈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진짜 모습’은 번번이 오인으로 드러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정황에 따라 변하는 작가의 모습은 화자의 눈에는 언제까지나 수수께끼로만 보인다. 이 작품은 문화적으로 연출되고 수행되는 섹슈얼리티의 특정한 모습을 묘사한, 지금 보아도 급진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마지막 소설 「위험한 놀이」는 여성주의적 관점보다는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아에 대해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소품이다. 해시시를 먹고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해프닝을 다룬 이 이야기는, 약에 취한 두 연인의 ‘위험한 놀이’가 행복한 결말을 이끈다는, 어찌 보면 다소 ‘위험한’ 생각이 녹아 있다. 실제로 올컷은 해시시, 아편, 모르핀 등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며 신체적 고통을 해소하고자 했다. 물론 그녀는 부작용 때문에 약물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약물이 일으키는 트랜스 상태와 자아의 해방상태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위험한 놀이」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자기통제력의 해제상태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욕망이 발현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작은 아씨들’과 ‘가면 뒤에서’ 사이
선정소설은 19세기 중반 인기를 누렸던 대중문학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사기, 살인, 스릴러, 정신분열, 유괴, 간통, 중혼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다.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끝없이 글을 써야 했던 올컷은 바로 이 상업적인 장르에서 빛나는 문학적 재능과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들을 드러냈다. 『천로역정』의 가르침을 따르는 착실한 작은 아씨를 그려내고 중산계급적인 도덕성을 중요시했던 올컷이, 왼손으로는 유혹적인 악녀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급진적인 사유가 반영된 글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때로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맞부딪치며 모순적인 정체성과 세계관을 드러냈고, 작가의 풍성한 내면과 다각적 면모를 일궈냈다. 그런 맥락에서 『가면 뒤에서』는 『작은 아씨들』을 쓴 작가의 색다른 작품으로서 더 복잡다단하며 재미있는 독해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소설집을 올컷의 또다른 면모를 드러낸 비유로 덧씌워 읽어내기 전에, 생생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읽어나가기만 해도 충분히 유쾌할 것이다.
● 해외 리뷰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은 올컷의 선정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 스티븐 킹, 『더 뉴욕 타임스 북 리뷰』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은 올컷의 짜릿한 모습이 가장 명료하게 새겨진 작품이다. — 『더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올컷의 스릴러들은 솜씨 좋게 빚어낸 작품들로, 생생하고 힘찬 기운으로 가득차 있다. — 『뉴스 위크』
‘작은 아씨들’의 엄마가 보았다면 충격을 받았을 법한, 뻔뻔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올컷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야말로 강렬하고 대단히 매력적이면서도 외설적인 여자들이다. — 『더 뉴요커』
거트루드 스타인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까지, 나는 올컷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낸 수많은 여성 작가와 지식인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 — 일레인 쇼월터 (페미니스트 문학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