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한민국 언론, 표현, 학문, 예술의 자유는 안녕한가?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 가슴 시린 현대사의 앙금
과거의 필화 사건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는 그때보다 좀더 성숙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고, 검열의 굴레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예술계와 미디어 환경을 구태스럽게 옥죈다. 또한 여전히 정치 풍자는 쉬이 법적 처벌대상이 되고, 어떤 책들은 여전히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힌다. 과거의 불합리와 비이성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한 시대의 한계다. 게다가 필화 사건은 권력이 비대해질 때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저자는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한 법체계를 개선해나갈 것을 주문하면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더욱 교묘해지는 자유에 대한 억압과 21세기형 필화에 대해 우려한다.
종래에 비하여 미디어의 발달과 다양화에 뒤따른 여러 특별법에서 새로운 형태의 감시, 통제, 금지, 처벌 등 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면서 권력에 의한 규제 악용의 여지도 커지게 되었다. 반드시 법정이나 감옥에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당한 법규와 간섭의 여지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되고 정신적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필화 못지않은 환난이며 넓은 의미에서 필화라 볼 수 있다. _본문 13쪽
필화는 있어서 불행한 것도, 없어서 다행인 것도 아니다
불의 앞에서 국민은 스스로 떨쳐나설 수 있어야 한다
문인과 지식인이 억울하게 연루된 필화 사건을 변호하는 데 평생을 바쳐온 한승헌 변호사는 ‘필화’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사건임을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필화 사건은 있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다행인 것도 아니다. 전자가 의당 해야 할 비판과 저항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 있고, 후자는 억압 앞에 항복한 침묵과 굴종의 반사적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_본문 13쪽
더불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체제를 규탄하고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법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한편, 불의 앞에서 국민도 스스로 떨쳐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 땅의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앞장서줄 것을 요구하며, 문인과 지식인에게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글을 써주기를 당부한다.
■추천사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건을 많이 겪어본 사람은 금방 그 의미를 안다. 언제 어디서든 사건은 벌어진다. 쉬지 않고, 그것도 동시다발로, 먼지처럼 생긴다. 수많은 사건은 평면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에 따라 배열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건은 유성처럼 소멸하거나 봄날의 장밋빛 눈처럼 스러진다. 그 무리 속에서 살아남은 사건 하나가 역사의 기억이나 우리 가슴에 새겨지는 일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그에 대한 판단을 이 시대의 독자에게 묻는 글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경쾌한 문장으로 엮은 한승헌의 도저한 기록과 날카로운 감상은 우리 현대사의 병상일지다. 그 말미에 마치 이런 진단 메모가 적혀 있는 듯하다. “각자의 건강은 스스로 알아서 챙겨라, 다만 그것이 모여 우리 사회의 정신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한승헌의 법조 55년은 고통의 과거, 인내의 현재 그리고 담담한 미래다. _차병직 변호사
시 쓰는 변호사 한승헌, 그는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문인과 지식인이 억울하게 연루된 필화 사건과 시국 사건에 자신의 변호사 인생을 송두리째 바쳤다. 그가 변호를 맡았던 필화 사건을 모으고 정리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 시린 한국 현대사의 앙금을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 이 시대의 면면이 떠올랐다. “국민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국민 스스로도 불의 앞에서 떨쳐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한승헌 변호사의 말씀은 스러지고 무기력해진 우리들에게 다시금 절실하게 다가온다. _안도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