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능력과 자유’ ‘자유와 욕망’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일상의 자유를 촉발하는 대범한 사유의 모험
이 책은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능력과 자유’ ‘자유와 욕망’이라는 네 가지 영역에서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반문한다. 삶의 고통과 기쁨, 타인과 맺는 관계, 우리가 견고한 토대라 믿는 자아의 편향과 반성 없는 아상(我相), 내 것이면서도 때로는 내 것이 아닌 욕망 등 자유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매 국면마다 거기 항상 있으면서도 또 없다. 왜? 수많은 요구와 억압, 그리고 자아의 한계가 우리의 꿈과 욕망,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제한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은 대학에(또는 직장에) 가고 싶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라고 생각하지만 어디 정녕 그것이 나 자신의 온전한 바람으로 형성된 욕망이던가? 누구나 ‘내가’ 이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나의 자아조차 자유롭지만은 않다. 개인의 경험과 감각, 지성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시야 밖의 것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순간순간 어렴풋이 인지하는 부자유의 항목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부자유의 통속성을 끝까지 파헤치며 “도대체 왜 우리는 부자유의 사슬에 묶이게 되었는가?”를 묻고 또 묻는다. 독자는 마치 문답법을 통해 스스로 깨쳐가는 것처럼 책에 쓰인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면서 자신을 제약하고 있던 ‘생각의 감옥’을 훌쩍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사유의 모험을 충동질하여 독자들을 시원하고 푸른 자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정말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인가?” ‘나’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형성한 외부의 요인은 무엇인지, 이를 처음부터 근원적으로 다시 사유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나의 삶을 되찾아올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자기 앞의 생
자유란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지 말 일이다. 이 책에서 글쓴이가 서두부터 줄곧 강조하는 것은 자유가 꼭 피를 흘려 투쟁하듯 얻어내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들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억압의 상태가 아닌 상태, 부정적인 것을 걷어낸 상태가 곧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용기면 충분하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친구와 나누는 우정을, 내가 새로운 감각에 눈과 귀를 열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느끼는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고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자유는, 외부적인 요인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자유는 나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저는 여기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근면함이 아니라 그것과 대면하는 약간의 용기를, 그것을 통해 문턱을 넘는 방법을 터득하려는 작은 용기를 촉발하려고 합니다. 자유란 단지 가능한 선택지의 수가 아니라 넘을 수 있는 문턱의 높이에 의해, 문턱을 넘는 능력에 의해 규정된다는 생각입니다. 힘들고 비루해지기 쉬우며, 자칫하면 찌그러지고 찌질해지기 쉬운 일상적인 삶이야말로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한 곳이고, 그곳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자처하는 철학이 달려들어야 할 세계라고 저는 믿습니다. _머리말에서
억압이나 구속의 부재, 이런저런 선택의 가능성, 이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 자체로 자유로운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유란 이런저런 조건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발행되는 자판기 티켓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든 나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세공품이다.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선택지의 유혹 앞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런저런 제약과 구속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상태에서도 우리는 그 자체로 자유롭다고 할 수 없지만, 역으로 어떤 상태에서도 자유를 향해 걷기 시작할 수 있다. 자유를 위해선 자신의 ‘자유의지’만이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 몸뚱어리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유롭기 위한 훈련이. _본문에서
거창한 용기는 우리를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로 인도하지,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인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대로 ‘인도되어야’ 할 것은 이 매일매일의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적 삶 아닐까?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진행되는 삶 자체를, 매번 내딛는 발걸음을 자유로운 삶으로 스스로 밀고 가는 법, 그것이 철학을 통해 배워야 할 삶의 지혜다. 그러한 자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철학적 사유가 삶에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삶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필로-비오스(philo-bios)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단지 한 줌의 용기다. 옳다고 주어지는 것이 정말 옳은지 다시 생각하고, 자신이 정말 긍정할 수 있는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은 이 한 줌의 용기로 시작한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