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천착해온 ‘소내’ 개념의 철학적 모험을 갈무리한 본격 학술서
―루소, 칸트, 헤겔, 마르크스, 프롬, 프로이트, 푸코 등을 중심으로
이 책은 초월과 ‘포월(匍越),’ ‘기우뚱한 균형,’ ‘소외’와 ‘소내(疎內),’ ‘더러운 철학,’ ‘우충좌돌,’ ‘엉삐우심’ 등 독창적 언어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해온 철학자 김진석이 그간의 사유와 소내 개념의 모험을 철학적 차원에서 정리해낸 본격 학술서이다. 이미 그는 ‘소내’ 개념을 문학비평에 적용한 『소외에서 소내로』(2004), 이후 회화․사진․건축․영화 등 미학에 적용한 『포월과 소내의 미학』(2006) 등을 통해 이 개념의 쓰임과 활용을 개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남용되는 ‘소외’라는 말이 본래 자연권사상 및 사회계약설의 발전과 더불어 근대적 주체 형성과 함께 생겨난 철학적 가설임을 짚어내면서, 오늘날 급변화한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소내’라는 새로운 개념어를 등장시켜 본격적으로 철학적 소내론을 펼친다. 그리하여 주체의 권리 내부에 본질적 성격을 강하게 부여한 자연권 사상 및 18세기 루소의 사회계약설에서부터, 세계의 한계와 경험의 인식과 관련한 칸트의 이성의 이율배반, 그리고 칸트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존재자 내부의 존재를 설정한 헤겔 변증법에서의 소외 문제, ‘노동의 소외’와 ‘인간소외’로 회자되는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적 관념론적 거대담론이 간과한 지점과 오늘날 주체가 겪는 문제와의 괴리, 전통적 형이상학과 규범주의적 신학론에 기댄 프롬의 ‘소외된 인간homo alienus’이 지닌 맹목성과 허구, 프로이트를 통해 바라본 주체 내부의 소외와 극소외(極疎外) 문제, 푸코와 그의 권력관계와 구조적 내부공간의 지리정치학이 보여주는 폭력과 자유의 모순에서 오는 소외 문제 등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면서, 이들 모두 그가 밝혀나갈 ‘소내’ 개념의 철학적 모험의 여정으로 동참시킨다. 그리하여 근대 이후 자연적 질서의 박탈과 더불어 소외(바깥으로 낯설어지기)된 오늘의 주체가 자유, 안전, 위험마저 통치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극소외(소외가 과잉투정의 문제로 극단화된 상태)를 대면하고 소내되고 소내하는 과정(안으로 낯설어지기 혹은 안에서 낯설어짐을 무릅쓰기의 과정)을 거쳐 폭력과 자유 사이에서 기우뚱한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자유를 실행해나가는지, 그 창조적 주체의 ‘엉삐우심(엉뚱하고 삐딱하면서도 우스우며 심오한)’ 태도와 미학적 실천 윤리에 주목한다.
소외되기-소내되기-소내하기의 맥락과 풍경에서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문제
‘소외’의 가설이 루소 등 자연권 사상 및 사회계약론 관점에서 자연적 본성에 관한 내재적 설정에서 파생된 도덕적 철학적 문제로 역사화할 수 있다면, ‘소내’는 애덤 스미스 등 실용적 이해관계에서 파악되는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의 전개과정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이 과정의 이행 또는 겹침 속에서 주체의 권리와 자유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그 자신을 낯설게 하는가. 소외와 소내를 ‘자유’의 문제에서 보자면, 소외되기는 자연권 사상이 주장한 자유를, 소내되는 과정은 자유주의가 실행한 자유를, 그리고 소내하기는 다채로운 폭력에 의해 교직되고 교차되는 자유를 각각 동반한다.
저자에 따르면, 소외론은 “자연권이나 사회계약론을 통해 보편적 권리를 주장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할 정부의 권력에 눈뜨게 된 인간이 철학적으로 투입한 이념”이다. 즉 인간에게 기본권이 철학적으로 부여되면서 생겨난 것이 소외론이다. 팽창하는 유럽 세력의 경제권력과 새로운 시장질서 형성으로부터 인간의 보편적 자유와 도덕성을 강조한 근대는, 개인의 사유재산권 옹호 문제와 맞물리며 모순된 양상을 보인다. 말하자면 개인의 사적 권리에 대한 옹호는 타인의 권리와 맞물려 양도와 박탈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예를 들어 자연법주의자 루소나 보편적 도덕을 강조한 칸트도 사유재산권만은 인정하고 옹호한 반면, 보편적 인간 권리를 중시했던 마르크스는 젊은 날 이를 문제삼아 인간소외와 사회악의 근원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양도 불능의 개인 권리와 자유에 대한 문제 설정은 노동력, 인간 신체마저도 거래되는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넘어오면서 자유와 안전, 위험마저 통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속에서 소외를 넘어 극소외의 양상을 띠며 더 세분화되고 복잡화한다. 이로써 주체는 정치적, 경제적, 법률적 사회장치의 역능과 권력관계의 조율 문제에서 오는 통치와 폭력의 순환 속에 함몰되어 자기 자신의 소외, 안으로 낯설어지는 소내를 경험하게 된다. 이리하여 초월적 외부는 사라지고 인간 자신의 내부가 끊임없이 낯설게 확장되는 메커니즘 속에서 주체는 심리적 극소외상황에 직면하고 소내되기에 이른다. 소내는 주체의 권리와 자유 추구가 여러 차원에서 다각도로 타자와 상충하고 굴절되는 전체성과 개인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로써 이 체제의 비합리성과 모순에 한계를 느낀 주체는 자신의 자유 실행이 곧 타자에 대한 다양한 비물리적 폭력 행사와 연결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소내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즉 자유(안전)와 폭력(위험)을 동시에 무릅쓰며 어떻게 이 끝없는 내부순환의 연쇄에서 해방을 넘어 자유를 획득해나갈 것인지를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소내하기: 폭력과 자유 사이에서 기우뚱한 균형을 통한 주체의 새로운 모색
―‘엉삐우심(엉뚱하고 삐딱하며 우스우면서도 심오한)’ 주체의 윤리적 미학적 몫으로서의 자유
오늘날 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이제 더이상 주체에게 초월적 외부란 없다. 다만, 끊임없이 확장되는 낯선 내부가 있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리하여 자유, 안전, 위험의 삼각 고리로 엮인 관리-통치 시스템의 내부에서 오늘날 주체에게는 ‘엉삐우심’ 태도가 형성된다. 이는 앞서 말한 대로 주체와 타자의 모순적 연관성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여기서 주체의 태도 제어gouvernement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한 길을 모색한다. 이는 소내되기라는 과정에서 좀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과정으로의 이행을 감행하는 소내하는 주체의 탄생을 위한 길이다.
저자는 푸코의 ‘해방libération’과 ‘자유liberté’의 개념을 구별하면서, 자유를 무릅쓰는 것이 삶의 기본적인 조건이 된 이 시대에 단순히 억압과 통제의 권력에 대항하는 자유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제어하고 통치할 수 있는 자유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근대 이후 통치적 합리성이 조장하는 위험과 폭력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 실천하는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몫”을 바로 소내되기로부터 소내하는 태도를 구별해내는 자유로 명명한다. 그리하여 타자의 태도를 제어하면서 주체의 태도도 제어하기, 즉 제어의 실천이 곧 자유의 실천이 되는 주체와 타자의 자리를 성찰한다. 이로써 법이나 권리로 규정된 주체를 넘어 윤리적 미학적 자유를 실천하는 존재로서 소내하는 오늘날 주체의 자유는 소외-소내되기도 하고 소내하기도 하면서 구성된다. 즉 “소외의 이념과 소내되는 합리성 사이에서 기우뚱 균형을 잡으면서 우충좌돌할 때, 주체들은 ‘엉삐우심’ 자유를 실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