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면적인 주제는 ‘몸단장하는 여자’이다. 하지만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미술 속의 ‘누드화’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그림, 아니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그림은 ‘누드화’이다. 선사시대의 ‘빌렌도르프 비너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술과 역사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꼼꼼히 살펴보고 뜯어보는 대상은 역시 대부분 ‘벗고 있는 여자’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을 그냥 지나치곤 했던 서양미술사의 음흉한 비밀을 밝힌다. 우리가 그동안 직접적인 말로 꺼내지 않고 에둘러서 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꼭 하고 싶다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각오해야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도 아닌 ‘미술사학자’가 꺼낸다.
이 책의 저자 파스칼 보나푸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문체로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파리 8대학의 미술사 교수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자화상’이라는 고상한 주제를 연구해왔으나 최근 예순을 넘기고나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양미술사의 오랜 주제 중 하나인 ‘나신의 젊은 여자를 탐하는 노인’이 되기도 하며(수난나와 장로들처럼, 102쪽 그림), 그림을 보려면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미술사학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누드화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하면 선정적일 수 있다. 저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선정성에 집중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이 사실 ‘관음증 환자’라는 폭탄선언과 함께 누드화 속 여인들에게도 발언권을 주는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두 사람이다. 파스칼 보나푸라는 남자 미술사학자, 그림 속의 그녀들. 그녀들의 이야기는 남자 미술사학자의 입을 빌어 나오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여자를 잘 이해하는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들의 입장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저자처럼 대놓고 관음증 환자가 되어, 마음 편하게 누드화를 ‘누드화’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감상자들의 시선에 대해 그림 속 그녀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기까지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누드화 감상 책이 또 어디 있을까.
욕망은 그림의 또다른 이름이다
‘누드화’를 주제로 한 책은 많다. 하지만 이를 ‘몸단장하는 여자’로 영역(몸단장)을 확장하고, 대상(여자)을 명확하게 했을 때, 그림은 본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림’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림은 ‘인간의 욕망’과 닿아 있다고 말한다. “욕망이야 말로 그림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그림 속에서 화가가 펼쳐놓은 욕망의 전략은 어떤 것인지, 지금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베르메르, 렘브란트, 부셰, 드가, 피카소,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그간 서양미술사 속에서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미술로 분류되어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이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몸단장하는 여인’이라는 주제는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역사를 관통하는 매우 보기 드문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은 여인, 그림 그리고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