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그 창조력의 한가운데에
피렌체의 상인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피렌체를 보석으로 만든 사람들 이야기
르네상스라고 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것은, 종교의 압박으로 가득 찬 중세의 긴 암흑기를 벗어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의 부흥을 통해 인간성의 해방을 선언하고 새로운 인간을 발견한 인문주의자들이나 성서와 교리 내용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인간을 그렸던 예술가들만을 떠올리기 쉽다. 페트라르카와 단테, 그리고 보티첼리와 다빈치, 미켈란젤로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뒤에는 피렌체를 무대로 새로운 지배질서와 세상을 꿈꿨던 상인들이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들을 인문학자와 예술가를 통 크게 후원한 사람들로만 여겨왔다. 과연 그들은 단순한 후원자에 불과했을까? 그들은 황금의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황금을 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상인들이다. 그들이 단순히 예술을 사랑해서 그렇게 모은 황금을 선뜻 내놓고 인문학자와 예술가 들을 후원했던 것일까?
왜 코시모 데 메디치와 같은 신흥상인들은 성당이나 수도원 벽면을 세기의 천재들에게 맡겨 장식하도록 후원하게 된 것일까? 더구나 이들이 작품의 주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분명 이 상인들이 예술작품을 후원했던 특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 의문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시대 예술작품의 용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이 책을 쓰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르네상스 예술을 소개하는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주인공이 예술가들이 아니라 상인들이다.
르네상스 시대 초반에는 성당이나 수도원 내부를 장식하는 예술작품의 주제를 종교 지식에 해박한 고위 성직자들이 결정했다. 그리고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이어 그의 손자인 ‘위대한’ 로렌초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국가의 가치를 고대 문헌에서 찾던 인문학자들에 의해 작품의 주제가 주로 결정되었다. 당연히 오늘날 천재 예술가들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작품의 주제를 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당시 예술가들의 지위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하층계급에 속하는 수공업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상품 주문을 받은 수공업자들처럼 예술가도 성직자와 인문학자가 정해준 주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에 충실하면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에는 당시의 성직자들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후원으로 고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출 수 있었던 인문학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듯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은 교회의 교리나 부유한 신흥상인들의 세속적 욕망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물이었다.(8~9쪽)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그 시대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상인들에게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문의 열쇠를 쥐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황이었다.
13세기에 이르면 도심 외곽의 토지를 중심으로 한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업의 시대로 이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도시로 향하는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13세기 후반에 이르면 피렌체에 이런 이민자들이 9만여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늘어난 이민자 곧 평신도들을 위해 피렌체 외곽에 있던 낡은 수도원에 탁발 수도사들이 정착하게 되지만 재산도 없고 후원자도 구하지 못하여 그들은 평신도에게 설교를 하거나 장례식을 주재하는 것으로 연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이들 가난한 수도사들과 수도회를 돕기 위해 묘안을 짜내야 했다.
당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렌체의 상인들에게 남은 하나의 문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현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사후에 안식을 얻을 수도 있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고 믿었고, 사후의 안식을 위해 수도원 지하에 묻혀 있는 수호성인들의 유골과 가까운 곳에 자신이 안장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들은 사후 최후의 심판장에 서게 되면, 가까이 묻혀 있는 수호성인들이 동행해 자신의 잘못을 변호해 줄 것으로 믿었고, 자신의 교구 공동묘지보다 수호성인들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는 수도원 지하에 묻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재정이 부족한 수도원을 돕기 위해 고민하던 교황은 수호성인이나 고위 성직자들만이 사후에 묻힐 수 있었던 수도원이나 성당에 신앙이 두터운 평신도들도 묻힐 수 있게 하는 칙령을 내린다(1244년). 그 칙령으로 탁발 수도사들이 머물렀던 낡은 수도원은 황금을 가진 상인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본래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 상당한 재산을 기부한 신도들에게 성직자들은 다양한 특권을 부여해왔었다.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자신의 토지에 교회를 지으면, 십일조를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 관례였다. 중세에는 이렇게 교회 후원자에게 주어지던 특권을 ‘교회 후원권한’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법을 통해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신앙 활동이 도심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새로운 교회를 짓는 성업은 도시의 높은 땅값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된다. 대신에 이미 도심 안이나 외곽에 있는 수도원에 재정적인 후원을 한 가문은 수도원 안에 자신의 가문을 위한 기도실을 갖을 수 있게 된다. 중세의 ‘교회 후원권한’이 르네상스 시대에 오면 ‘기도실 후원권한’이라는 형태로 전환되고, 이 후원권한을 가진 부유한 상인들에게는 기도실을 갖는 특권만이 아니라 그 기도실에서 가문을 위해 미사를 드릴 사제에게 평생 동안 봉급을 지불(사제 추천권에 부과된 의무)해야 하는 동시에 기도실을 새롭게 장식해야 하는 의무도 함께 져야 했다.
부유한 상인들은 경쟁적으로 기도실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들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더 재능 있는 예술가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들은 중세에 그려진 그림을 단순히 복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예술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창조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예술가들에게 열광했다. 수도원 역시 자신들이 속한 수도회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줄 재능 있는 화가를 필요로 했다. 이 시대의 종교화는 수도원의 주요한 홍보 매체였던 것이다.
상인들과 교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재능 있는 화가들에게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 화가들 밑에서 수련과정을 거치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유명 화가들은 공방을 운영해야만 할 정도가 되었다. 천 년 이상을 잠자고 있던 ‘아발론의 아홉 자매’(예술의 여신 무사)가 피렌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피렌체는 서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는 예술의 도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피렌체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26~27쪽)
오늘날 피렌체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들은 황금을 가진 상인들의 욕망과 황금이 필요한 성직자들의 현실이 맞닿은 지점에서 탄생하며, 이렇게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의해 열린 새로운 공간은 더욱 새로운 가치를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피렌체의 ‘국부’라고 불린 코시모 데 메디치와 피렌체를 위기에서 구해 ‘위대한’ 로렌초라 불린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이끈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에서는 이민자 출신으로 고리대금업과 엄청난 액수의 지참금을 들고 온 배우자와의 결혼으로 황금을 축적한 메디치 가문이, 기도실 후원권한을 얻어 새로운 수도원과 성당을 피렌체의 신앙생활 중심지로 만들고, 그 수도원과 성당을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고, 플라톤 아카데미의 인문학자들을 후원하여 새로운 지배 이념을 만들어 내고 그로 인해 새롭게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을 창출해 내는 과정이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 이전에는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창조력으로 가득찬 피렌체 르네상스의 진면목과 함께 찬란한 역사로 남아 있는 그 결정적 순간의 역동적인 모습을 포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를 보석으로 만든 조토와 마사초, 프라 안젤리코, 고촐리, 보티첼리, 레오나드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의 건축물에 담긴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