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부키가 페소아의 눈 속으로 들어가 리스본을 떠돌다!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작가로 손꼽히는 안토니오 타부키, 그가 사랑한 포르투갈과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에게 바치는 오마주. 7월 무더위에 리스본 한 부두에서, ‘나’는 오늘 열두시에 오래전 죽은 시인을 만나야 한다. 정오와 자정을 지나 시인을 만나기 전까지, 리스본 주위 곳곳을 떠도는 그의 여정에 스물세 명―젊은 마약중독자, 택시 운전사, 묘지 관리인, 나의 젊은 아버지, 복제화가, 검표원, 아코디언 연주자 등―의 온갖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평생 페소아를 연구하고 그의 나라 포르투갈을 사랑한 한 문학가의 꿈같은 여행기이자, 작가의 젊은 시절이 깃든 자서전이자, 포르투갈 사람과 그 음식이 소개되는 사랑스러운 미니 요리책. 죽은 시인 하나를 만나러 가서 스물세 명의 인물과 맞닥뜨리는, 귓전에 맴도는 길거리 음악과도 같은 진혼곡.
“문학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불안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의식을 평온하게 하는 문학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안토니오 타부키
* 1991년 포르투갈어로 먼저 쓴 이탈리아 작가의 각별한 애정의 산물!
* 1992년 이탈리아 PEN 문학상 수상.
* 1998년 스위스 영화감독 알랭 타네가 영화화한 작품.
이탈리아 작가가 포르투갈어로 써낸 한 편의 각별한 레퀴엠
2012년 3월 25일, 안토니오 타부키 사망 소식이 알려졌을 때, 유럽 지성계가 온통 출렁거렸다. 이탈리아 재벌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를 향한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했던 그는, 문학(글)으로 현실의 부패를 정면돌파했던 위대한 지성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움베르토 에코의 냉담한 지식인론에 맞불을 놓으며 이 시대 지성인의 책무에 대해 펜으로 맞섰던 안토니오 타부키, 그가 죽자 유럽 언론계는 대서특필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살만 루시디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가 오늘 죽었다”며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2013년 3월 25일, 작가 타계 1주년을 맞아 문학동네에서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 세 권을 펴냈다. 이어 2014년 3월, 2주년을 맞아 타부키의 문학세계와 그의 젊은 날을 가장 찬란하게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레퀴엠Requiem』(1991)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다.
이 소설은 젊은 날 문학의 세계로 타부키를 이끌었던 포르투갈 리스본 태생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와 그가 평생 연구한 포르투갈 문학에 대한 오마주이다. 동시에 포르투갈 아내를 맞아 리스본에 거주하며 제2의 모국으로 삼았던 포르투갈 문화, 사람, 풍경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작가는 레퀴엠에 걸맞은 라틴어도, 자신의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도 아닌, 자신에게 “애정과 성찰의 장소로서의 언어”인 포르투갈어로 이 책을 쓰게 된 필연적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칠월의 어느 일요일, 황량하고 메마른 리스본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내가 ‘나’라고 부르는 인물이 이 책에서 연주해야 했던 레퀴엠이다.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왜 포르투갈어로 썼는지 묻는다면, 이 이야기는 오직 포르투갈어로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대답하겠다.” ―안토니오 타부키, 「저자의 메모」 중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차원에서 만나는 리스본 소나타이자 한 편의 꿈”
이 책은 안토니오 타부키가 송두리째 홀린 한 시인과 그 시인의 나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의 산물이다. ‘나’는 칠월 하순의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리스본 한 부둣가에서, 오래전 죽은 시인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작가의 말대로,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차원에서 만나는” 이토록 부조리한 소설의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나는 생각했다. 그자는 이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열두시라고 일러주었지만 어쩌면 밤 열두시를 의미했을지도 모른다. 유령이 나타나는 때는 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어나서 부두를 따라 걸었다. 차도는 죽은 듯 고요했다.”(본문 15쪽)
타부키의 화자 ‘나’는 정오에서 자정까지, 죽은 시인을 만나기 전까지, 좀더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리스본 곳곳을 헤매며 걷는다. 그러다 마주친 23명의 인물들―젊은 마약중독자, 로토 가게 절름발이, 택시 운전사, 브라질레이라의 웨이터, 늙은 여자 집시, 묘지 관리인, 죽은 친구 타데우스, 나의 젊은 아버지, 고미술박물관 바텐더, 복제화가, 검표원, 이야기 장사꾼, 아코디언 연주자 등―은 점차 나타나지 않는 시인의 은밀한 초상을 스케치해낸다. 생전에 여든 개가량의 여러 이명異名으로 활동했던 독특하고도 기이한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 그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인물 군상들이 곳곳에 속출한다. 이는 일생에 타부키가 만나고 헤어진 겹겹의 사람들이 짜나간 작가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옮긴이 박상진 교수는 “『레퀴엠』은 페소아를 떠나보내는 장송곡, 그의 유령을 불러내고 만나서 원한을 씻는 노래다”라고 해설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하자면, 마치 실제 현실과도 같이 죽은 아버지의 원혼을 만나는 장면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한자리에 만나는 이 레퀴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포르투갈 정서 중에 ‘사우다지Saudade’는 “지금은 사라진 사람, 물건, 즐거움과 시대에 대해 느끼는 우울 혹은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한 시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마침내 작가 타부키는 그가 뜨겁게 마주했던 한 세계, 한 시인, 한 나라의 추억들과 더불어 이 각별한 레퀴엠을, 그가 사랑했던 길거리 음악처럼 잊힐 수 없는 인물들과의 만남으로 연주해낸다.
“포르투갈 사람, 문화, 음식이 소개된 여행기이자 미니 레시피북 ”
이 책에서 작가의 분신 ‘나’가 지나는 리스본과 인근 지역 곳곳의 세밀한 풍경 스케치는 이 책의 또다른 재미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시인 페소아의 눈 속으로 들어가 포르투갈 풍경을 스케치해나가는 타부키의 재담과 위트는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무엇보다도 실제 오늘날 리스본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꿈, 환상, 현실이 뒤섞인 그의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 책에는 갖가지 포르투갈 지역 음식과 술이 등장한다. 특히 산 자(주인공 ‘나’)와 죽은 자(친구 타데우스, 나의 손님)가 한자리에 만나 나누는 식사에서 ‘음식’은 문학적 심벌을 넘어, 또하나의 시대문화와 지역문화를 반영하는 심벌이 된다. 이탈리아어판 편집자가 부록으로 「이 책에 나온 요리법 관련 메모」를 싣고 옮긴이가 각주를 곳곳에 달았다. 여기에 소개된 음식 하나하나는 레퀴엠을 연주하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타부키가 나눈 작별과 애정의 만찬이기도 하다.
【해외 언론 리뷰】
◆ 타부키는 늘 불온한 작가다. 그는 삶(과 예술)을 음모, 징후, 비밀로 가득한 것으로 본다. ―『리뷰 오브 컨템프러리 픽션』
◆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떠오른 가장 신중한 관찰자이자 독창적인 서술자이자 문제적 미학자. ―『월드 리터러처 투데이』
◆ 타부키를 아직 읽지 못한 독자에게 안성맞춤인 소설. ―『더 네이션』
◆ 묘하고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탁월한 그의 이야기 효력은 손 하나 까딱 않고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진짜 마술사의 터치를 보여준다. ―『더 샌 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 『레퀴엠』, 묘하면서 그만큼 아름다운 소설. ―『레 쟁록쿱티블』
◆ 일면 포르투갈 문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일면 감미로운 자서전적 판타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 꿈, 환상, 현실이 뒤섞인 그의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 ―라디오방송 〈카르네 노마드〉, 작가 사후 ‘타부키에 대한 오마주’로 방송된 프랑스 퀼튀르 프로그램 중에서.
◆ 리스본과 페소아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자 타부키의 젊은 날 그 자체. ―『캥젠느 리테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