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사 03-창시자
- 원서명
- 易中天中華史: 奠基者
- 저자
- 이중톈
- 역자
- 김택규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4-03-24
- 사양
- 212쪽 |205*145| 무선
- ISBN
- 9788967351007
- 분야
- 역사, 교양
- 정가
- 12,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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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중국의 대표적인 사학자, 이중톈이 강의하는 알기 쉬운 중국사. 제3권 ´창시자´에서는 주周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다룬다. 그것은 3000년 정치윤리와 문화적 유전자의 기초를 닦는 작업이다. 3권엔 명확한 주인공이 있다. 그의 이름은 주공周公이다.
중국 문명에서 서주西周의 의의는 서양 문명에서 그리스의 그것과 맞먹는다. 단지 마르크스의 말을 빌린다면 그리스인은 ´정상적인 아이´, 주나라인은 ´조숙한 아이´였다. 그래서 각자의 유년 시절에 당연히 서로 다른 기질을 드러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정치가 주공周公. 그는 3000년 정치윤리와 문화적 유전자의 기초를 다졌다. 그것은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예로 질서를 세우고, 음악으로 조화에 이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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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중국 대륙 최고의 역사 고전 해설가. 현대적 시각으로 역사와 고전을 풀어내 중국인의 자화상을 그리는 역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2006년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인문강연 프로그램에서 ‘한나라 시대의 풍운아들’을 강연하고 2006년 『삼국지 강의』를 밀리언셀러로 만들었다. 이후 ‘이중톈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강연과 집필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저서로 1억 위안이 넘는 수입을 창출하기도 했고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갑부 47위에 오르기도 했다.
1947년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태어났으며 신장新疆에서 일한 적이 있다. 1982년 우한武漢대학교를 졸업하고, 샤먼厦問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2013년 현재는 장난江南 우한武漢에서 『중국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그간 펴낸 책들이 2011년 16권에 달하는 ‘이중톈 문집’으로 묶였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 『삼국지 강의(전2권)』 『독성기』 『품인록』 『제국의 슬픔』 『백가쟁명』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이중톈의 미학강의』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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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걱정스러운 출발
승자의 두려움
경수와 위수 사이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다
새 정권의 위기
천명과 수권
진상을 왜곡하다
제2장
팀파니
서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다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사람을 근본으로 삼다
덕치
눈에 보이는 힘
새 운영체제를 설치하다
제3장
서주의 봉건제
세 세력의 반란
일석삼조
통일전선을 넘어
방국제도
주나라도 방국이었을까?
주나라의 들녘
봉건은 질서다
제4장
천하는 한집안이다
적장자
거대한 가족
희주주식회사
중대한 실책
군자와 소인
어긋난 계산
제5장
두 가지 기본 포인트
애국이 죄인 까닭
거대한 그물
누가 이득을 보았나
천하제일의 악단
권리와 의무
중국의 밸런타인데이
제6장
근본의 소재
블랙리스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문화적 핵심
신이 없는 세계
공수표를 마다하다
정리
저자 후기│시간이 시작되다
옮긴이의 말│이중톈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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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이중톈 중국사 제3권 ‘창시자’ 출간
이중톈은 제3권 창시자에서 ‘주周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다룬다. 그것은 3000년 정치윤리와 문화적 유전자의 기초를 닦는 작업이다. 이중톈이 획득한 주나라의 위상은 상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성취된다.
따라서 줄곧 내륙에서 농경에만 종사해온 주족周族은 상족商族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상족은 발해渤海 연안에서 세계 각지를 대상으로 무역을 하고 청동기와 갑골문을 사용했으며 과학, 기술, 예언, 정치화된 샤머니즘에 심취해 자신들의 문명을 낭만적이고 신기하며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나갔다.
상나라와 주나라의 관계는 경수와 위수를 연상시킨다.
이 두 문명의 다른 스타일은 그들이 신과 조상을 대하던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상나라인은 신에게 술을 대접했고 주나라인은 신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고고학자들은 상나라의 예기禮器가 대부분 주기酒器였던 반면, 주나라의 예기는 대부분 식기였음을 발견했다. 주나라인의 제사의식이 훨씬 더 장엄하고 엄숙했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은 엄격히 예법의 규정을 따라, 고기를 넣는 솥인 정鼎과 밥을 넣는 솥인 궤簋를 늘어놓고서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묵묵히 신과 함께 식사를 했을 것이다. 결코 상나라인들처럼 엉망으로 술에 취해 비틀대며 나체 무도회를 열었을 리는 없다. 상나라인은 ‘술귀신’, 주나라인은 ‘밥귀신’이었던 것이다.
상나라는 중국의 디오니소스였고 주나라는 중국의 아폴론이었다. 그래서 상나라는 활달하고 주나라는 이성적이었으며 또 상나라는 낭만적이고 주나라는 근엄했다. 그리고 상나라는 무관巫官을 중시한 반면 주나라는 사관史官을, 상나라는 귀신을 중시한 반면 주나라는 인간을 중시했다. 다만 서주 이후에는 주나라의 문화가 주류 문화가 되었고 상나라의 전통은 하위 문화로 변해 남방과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뿐이다.
상의 문화가 2선으로 물러난 것은 거의 필연적인 일이었다. 중국 문명의 기조뿐만 아니라 중국 민족의 역사와 문화심리까지 모두 주나라인들에 의해 쇄신되었기 때문이다. (본문 22~23쪽)
『이중톈 중국사3-창시자』엔 명확한 주인공이 있다. 그의 이름은 주공周公이다.
주공은 도합 7년간 섭정을 했다고 한다. 세 번째 해까지는 반란을 진압했고 네 번째 해에는 제후들에게 분봉을 했으며 다섯 번째 해에는 성주를 건립했다. 여섯 번째 해에는 예악을 제정했고 일곱 번째 해에는 성왕에게 정무를 넘겼다. 예악제도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주공이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중국의 기초를 다진 것은 주공 한 사람만의 공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윤곽도 꽤 분명하다.
우선은 걱정이 있었다. “천명이 일정치 않아天命無常” “왕이 되기가 쉽지 않은不易爲王” 것에 대한 우려로 ‘군권천수’의 개념이 생겼다. 그런데 주나라인 자신들조차 스스로의 리더십과 대표권은 명분상 하늘이 주는 것이어도 실제로는 백성이 준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사람을 근본으로 삼음으로써 ‘인본주의 정신’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정신은 아래와 같이 기술될 수 있고, 또 기술되어야 한다.
천인합일은 인간으로 귀결된다. 물론 한마디를 덧붙여야 한다. 그 인간은 곧 집단의, 가국家國의, 윤리의 인간이었다. 집단이 최고의 존재였기에 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중국의 국가 건립은 씨족 조직을 파괴하는 혁명을 거치지 않았고 거꾸로 씨족과 부락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졌다. 하·상·주가 다 그러했다. 주나라가 수립한 국가연맹은 더더욱 가국 일체의 ‘가천하家天下’였다. 그 기초는 정전제의 소농경제였으며 전체를 연결시킨 것은 종법제의 혈연관계였다. 이러한 집단에 있어서 덕과 예는 확실히 법률보다 더 적합하고 유용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학자, 이중톈이 강의하는 알기 쉬운 중국사. 제3권 ´창시자´에서는 주周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다룬다. 그것은 3000년 정치윤리와 문화적 유전자의 기초를 닦는 작업이다. 3권엔 명확한 주인공이 있다. 그의 이름은 주공周公이다.
중국 문명에서 서주西周의 의의는 서양 문명에서 그리스의 그것과 맞먹는다. 단지 마르크스의 말을 빌린다면 그리스인은 ´정상적인 아이´, 주나라인은 ´조숙한 아이´였다. 그래서 각자의 유년 시절에 당연히 서로 다른 기질을 드러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정치가 주공周公. 그는 3000년 정치윤리와 문화적 유전자의 기초를 다졌다. 그것은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예로 질서를 세우고, 음악으로 조화에 이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