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야기꾼이 선보이는 맛깔스러운 여섯 편의 동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 올해의 예술상, 창원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우리 시대의 대표 동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남중 작가의 신작 동화집 『공포의 맛』이 나왔다. 작가 특유의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 섬세한 관찰이 바탕이 된 담백하면서도 정교한 문체가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그동안 선보여 온 자연과 생명, 내면의 폭력성 등 선 굵은 주제 의식에 밝고 명랑한 동심의 색채가 더해진 작품이다.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공포의 맛』은 자신만 보면 빨갛게 얼굴색을 바꾸며 성을 내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인 칠면조 부부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난 해프닝을 다뤘다. 맛본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나(「공포의 맛」), 친구를 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한 장난감 총으로 벌 맞히기가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이라 든지(「그대로 멈춰라」), 어른들로부터 동물들을 지켜 주겠다며 따라간 산행에서 저도 모르게 사냥에 깊이 빠지게 되는 순간(「토끼 잡으러 간단다」) 등, 바깥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잔인한 폭력성이 내 안의 어떤 감정으로 와 닿는 순간의 미묘함을 작가는 ‘공포의 맛’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작가는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극적인 순간을 겪으며 깨닫게 되는 여러 감정들을 여섯 편의 이야기 안에 맛깔스럽게 담아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즐거움뿐만 아니라 쓸쓸함이나 눈물 쏙 빼는 매콤한 순간도 ‘음미할 수 있는’ 것이자,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영양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평범한 하루에 뿌려진 마법 같은 특별한 맛
여섯 편의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일상을 다루면서도 그 속의 특별한 사건들을 포착하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기 위해 억지로 닭 소리를 배우는 장면이나, 깊은 밤 숨죽여 금잉어를 낚는 장면, 하얀 설원 위에서 비밀스러운 사냥을 시작하는 장면 등은 그 감각이 생생하게 와으며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아주 오랜만에 친구의 손을 슬쩍 잡는 장면이나, 나를 깔보는 줄만 알았던 친구가 사실은 내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 외톨이 강아지와 교감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아이의 모습 등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찌르르하게 간질이는 감동을 준다.
▪ 할아버지의 기발한 벌 피하는 방법 「그대로 멈춰라」
주봉이는 가을 소풍을 앞두고 잔뜩 들떠 있다. 뉴스를 보던 할아버지는 가을 벌이 무섭다며 어딘가 어설픈 벌 피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소풍날, 도시락을 재빨리 해치운 주봉이와 친구들은 옆 반 아이들과 장난감 총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벌에 쏘이면서 아이들의 과녁은 벌로 옮겨 간다. 재미있는 벌 쏘기 놀이에 서서히 지쳐갈 때쯤 벌들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위기에 몰린 주봉이는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 나만 보면 화내는 칠면조 이사하던 날 「공포의 맛」
어느 날 아빠는 칠면조를 얻어 왔다. 마당 한쪽을 차지한 칠면조 부부는 어쩐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매일 칠면조와 신경전을 벌이는 데 지친 주인공은 칠면조를 학교의 빈 축사로 데려갈 묘안을 짜낸다. 마침내 칠면조를 학교로 옮기는 날이 왔다.
▪ 어미 개 진풍이가 뜨거운 바람을 내 허벅지에 내불었다 「부드러운 입술」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빠른 대진이는 요즘 들어 부쩍 힘이 세지고 성격도 거칠어졌다. 수호는 자신과 친구들을 부하처럼 대하는 대진이가 부담스럽지만 오랜 친구로서 곁을 지킨다. 둘은 새끼 강아지들을 보러 등골댁 할머니네에 간다. 수호가 슈퍼에 간 사이, 택배를 받으러 나간 대진에게 갑자기 어미 개 진풍이가 달려드는데……. 이 사건으로 대진이와 수호의 우정은 회복의 실마리를 찾는다.
▪ 깊은 밤, 하늘에서 대어를 낚았다 「하늘을 나는 금붕어」
나는 얼마 전 옆집으로 이사 온 수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를 시골 아이라고 깔보는 것만 같고, 괜히 비웃는 듯한 표정도 싫다. 엄마 심부름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수현이네 연못에 금붕어 백 마리에 금잉어 스무 마리를 푸는 현장을 목격한다. 마을 연못에서 월척 낚는 꿈을 꾸고 있던 나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밤 낚시 도구를 챙겨 규현이네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 토끼, 고라니, 멧돼지, 그다음 차례는…… 「토끼 잡으러 간단다」
남현이는 광수 삼촌과 치언이 형을 따라 겨울 산으로 토끼 사냥을 간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삼촌과 형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눈 덮인 산을 걷는 일은 쉽지 않고 토끼는 흔적도 찾기 힘들다. 그때 세 명의 눈앞에 거대한 형체가 출현한다. 셋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이 존재들의 정체는 바로…….
▪ 친구가 필요한 아이와 외톨이 강아지의 비밀스러운 약속 「큰 산에는 호랭이가 산다」
엄마와 둘이 사는 은솔이는 엄마가 출장을 가 있는 동안 방학을 보낼 겸 시골 할머니 댁에 왔다.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인 마을에서 심심함을 느끼던 은솔이는 우연히 올라간 언덕에서 떠돌이 강아지를 만난다. 그때부터 은솔이는 과자를 잔뜩 들고 강아지를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 무렵 마을에서는 가축들을 죽이고 말썽을 일으키는 ‘호랭이’를 처리하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연못과 언덕을 제공하는 동화
훌륭한 요리는 각각 재료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조화되었을 때 최상의 맛이 나는 것처럼, 『공포의 맛』에 실린 이야기들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작가의 철학 아래 한 권으로 묶여 각 이야기의 매력이 더욱 살아난다. 아이들에게 파헤쳐지고 메워진 언덕과 연못을 돌려주고 싶어 하는 작가의 소망은 책 속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냈다. 그곳은 너른 자연을 배경으로 누구와도 무엇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몸의 움직임과 놀이의 재미가 살아 있는 곳이며, 친구와의 우정이 회복되는 공간이다. 노석미 화가의 담백하면서도 산뜻한 그림은 책 속 세계를 한층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과중한 학업과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치고 답답한 아이들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을 작품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