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33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신화총서> 아홉번째 작품 출간!
모옌, 위화, 쑤퉁과 함께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중국 문학을 이끌고 있는 작가 예자오옌의 장편 『후예』 가 출간되었다. 영국 캐논게이트 출판사가 기획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33개국의 저명한 출판사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신화총서>에 중국 작가로 선정되어 집필한 작품이다.
예자오옌은 뛰어난 서사와 독특한 형식, 다양한 인물 설정, 풍부한 역사 인용 등이 강점으로 꼽히는 작가다. 이 강점은 그의 특별한 집안 내력에서 연유한다. 그의 조부 예성타오는 중국 현대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이자 중국 최초로 창작동화집을 펴낸 교육자였고, 부친 예즈청 또한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예자오옌은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장서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 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흥취와 생동감 있는 문체가 녹아 있다.
1980년 「무제无题」로 등단한 예자오옌은 1988년 「주이웨 누각追月楼」으로 장쑤문학예술상과 전국우수중편소설상을 받으며 중국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주이웨 누각」의 연작소설인 「밤에 친화이 강에 배를 대다夜泊秦淮」 「좡위안 거리状元境」 「반볜잉 거리半边营」 「스쯔푸十字铺」로 전근대의 몰락한 정신상을 그리며 ‘민간의 시각에서 중국 근대사를 다시 썼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후로도 장편소설 『1937년의 사랑一九三七年的爱情』 『타인의 사랑别人的爱情』 등과, 중편소설 「대추나무 이야기枣树的故事」 「화장실에 관하여关于厕所」 등을 꾸준히 발표해온 예자오옌은 이제 중국 현지에서 ‘신역사소설’(새로운 시각과 작법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중국 소설계의 한 조류)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역사를 넘어 문화의 원류인 신화를 향해 날카로운 펜대를 들이댔다. 중국 현대문학의 거인 루쉰도 『고사신편』에서 다시 쓴 바 있는, 후예와 항아의 이야기다.
역사의 신성과 위엄을 허물고 세속을 끌어내리는 데
천부적 재능을 가진 소설가 예자오옌,
그의 펜 끝에서 중국 신화 속 후예와 항아가 되살아난다
오랜 옛날 중국의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떴다. 태양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자 천하의 궁수 예가 하나의 태양만 남기고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려 인간 세상을 구했다. 그 포상으로 하늘에서 불로장생의 선단을 예에게 내렸다. 예에겐 항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혼자 영생을 얻겠다고 선단을 먹어버렸다. 남편을 배신한 항아를 괘씸히 여긴 하늘은 항아에게 영생을 주되 달에서 혼자 외롭게 살도록 만들었다. 긴 이야기를 단 네 글자로 요약해 부르길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후예와 항아의 이야기를 각각 ‘후예사일(后羿射日), 항아분월(姮娥奔月)’이라 줄여 부른다. ‘후예는 태양을 쏘았고, 항아는 달로 달아났다’는 뜻이다.
작가 예자오옌의 눈엔 이 이야기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예는 원래 그렇게 타고난 ‘잘난’ 영웅이었을까? 항아는 예를 열렬히 사랑했다는데 왜 그를 배신하고 혼자 떠났을까? 혹시 예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예자오옌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엮어 애절한 사랑 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냈다. ‘후예사일, 항아분월’이라는 신화의 기본 플롯을 그대로 살려 ‘상편: 후예,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다’에선 예가 항아를 만나 그녀의 도움으로 영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편: 항아, 달나라로 가다’에선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 예에게 버림받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항아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렇게 예자오옌은 후예와 항아의 신화를 새롭게 썼다.
삶을 집어삼키는 사랑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신으로 환태하는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누구든 힘만 있으면 우두머리가 되고 세력을 넓힐 수 있는 부족국가 시대. 무력으로 다른 부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한 유융국은 이곳저곳에서 포로들을 잡아들인다. 여자 포로들은 유융국의 사내들에게 선택됐는데, 그중 항아라는 소녀는 오강이라는 칼잡이의 일곱번째 아내로 가게 된다. 어느 날 오강과 항아가 사는 마을에 홍수가 나고, 홍수에 휩쓸린 항아는 강물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롱박에 의지해 간신히 살아남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항아가 조롱박을 안고 돌아오자 오강과 그 식구들은 깜짝 놀라는데, 그에 더해 그 조롱박에서 사내아이까지 태어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요괴가 나타났다며 당장 아이를 내쫓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강과 항아는 아이에게 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처럼 키운다. 예는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몸집이 예닐곱 살만해질 정도로 빠르게 자란다. 항아는 그런 예를 엄마처럼, 누나처럼 돌봐준다.
그러던 어느 날 유융국에 열 개의 태양이 뜨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내뿜는 엄청난 열기에 온갖 작물들이 말라비틀어지고,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된다. 하늘에 제물을 바쳐보기도 하지만 열 개의 태양은 여전히 이글거리며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때 여신 서왕모가 나타나 예는 천상에서 내려온 신이며, 그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 전한다. 활 쏘는 솜씨가 뛰어났던 예에게 부족 사람들은 신목(神木)으로 보궁을 만들어주고 태양을 쏘아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힘세기로 유명했던 예는 어찌된 영문인지 활시위도 당기지 못한다. 예와 사람들 모두가 낙담해 있는 가운데 서왕모가 잠자는 항아의 몸에 들어가고, 항아와 예는 예기치 않게 몸을 섞게 된다.
“너 스스로는 이제 어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넌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 사내는 여인을 통해서만 진정한 남자가 될 수 있다.”(본문 193쪽)
예는 전에 없던 이 경험을 통해 아이에서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서왕모는 예에게 불로장생의 선단을 주고 떠난다. 엄청난 힘을 얻게 된 예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하나만 남겨두고 모조리 쏘아 맞혀 세상을 구한다. 예는 영웅으로 추앙되어 최고 권력자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기울이게 된다는 뜻인 후(后)라는 존호까지 얻어 후예가 된다. 후예의 곁에서 항상 함께했던 항아는 이제 후예의 여자로서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항아는 후예를 치료하는 특효약이었다. 그녀만이 후예의 가슴속 불만, 머릿속 혼란을 다스릴 수 있었다. (본문 329쪽)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예는 그저 항아만을 원했다. 그러나 항아의 친구인 말희와 몸을 섞게 된 후로 예의 신성은 조금씩 사라지고 인간의 악함과 어리석음이 그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애욕의 화신이 된 후예는 현처라는 이웃 부족의 여자를 얻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고 그녀에게 빠져 지낸다. 끝내 항아는 현처 때문에 궁에서 쫓겨난다.
그녀는 예전처럼 그와 함께 일상을 이야기하고 옛일을 회상하며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이제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지 오래였다. 항아는 그저 자신을 지난 세월의 시간 속에 묶어둘 뿐 어떤 미래도 떠올릴 수 없었다. (본문 368쪽)
이후 유융국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패전을 거듭하는 유융국의 전쟁터에 이미 유융국을 떠났던 항아가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후예에게 선단을 먹고 함께 인간 세상을 떠나자고 한다. 후예는 그제야 항아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곤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모진 말로 자신을 떠나라고 한다. 지고지순한 자신의 사랑을 철저히 부정당한 항아는 절망하며 선단을 삼켜버린다. 선단을 먹은 항아는 신이 되어 인간 세상의 일을 잊고 달나라에서 살게 되고, 후예는 현처의 간계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예자오옌에게선 옛 문인의 기운이 느껴진다. 쑤퉁(소설가)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신화,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소설. 예자오옌은 신화와 소설의 공식을 깨고 둘의 경계를 무너뜨려 신화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신화를 완성했다. 우이친(문학평론가)
예자오옌은 후예의 영웅적 면모뿐만 아니라 그의 번뇌와 불안 등 인간적인 모습까지 발굴해냈다. 장이우(베이징 대학 교수, 평론가)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사랑할 권리를 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반하고 의심하고 질투하고 상처받는다. 『후예』엔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있다. 문예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는 궁극적인 물음을 던지는 소설! 하북일보
죽음보다 냉혹한 사랑 이야기. 중국청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