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소리, 짜증나는 냄새, 짜증나는 운전자, 짜증나는 친구, 짜증나는 배우자……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상황에 처하지만 누구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짜증이 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이유로 짜증을 느끼는지, 어느 정도로 느끼는지에 대한 자료나 측정치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연구도, 사람들이 짜증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도 없다. 그동안 몇몇 과학자들이 분노, 혐오, 음향학, 문화인류학, 화학적 자극원 등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나 짜증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나 이론은 전무하다. 즉, 우리는 습관적 혹은 반사적으로 짜증을 내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이에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PR)의 과학전문기자 조 팰카와 플로라 리히트만은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며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인간의 짜증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소개하지만 어려운 학술 용어나 이론을 나열하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화나 사건을 예로 들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짜증스럽지 않게’ 짜증을 소개한다.
짜증에 대한 권위자가 존재한다면 진정 박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짜증 전문가다.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거나 스스로 짜증을 느끼는 것 양쪽에서 말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짜증의 과학에 대한 책을 쓴다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한바탕 비웃은 뒤 얼마 전에 겪은 짜증나는 일에 대한 기나긴 불평을 이어간다. 상당히 역설적인 일이다. 우리는 짜증나는 상황을 싫어하지만, 무엇이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즐기는 듯하다. 누구나 짜증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왜 짜증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에 눈을 돌린다. _작가의 말에서(7~8쪽)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짜증의 과학!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는 짜증 유발 요소로 신체적인 불쾌감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들려오는 휴대전화 대화, 정신 사납게 울려대는 사이렌,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 손가락 관절 꺾는 소리, 손톱 깎는 소리 등 청각을 괴롭히는 요소를 비롯해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고추, 강렬한 악취, 주위를 산만하게 날아다니는 파리 등 갖가지 요소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오감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같은 감각이 자극을 받는 경우에도 짜증을 내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통화의 경우 단순히 큰 소리로 이뤄지기 때문에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패턴이 일정하지만 언제 끝날지도 불확실하고, 대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반쪽짜리 대화’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지체제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 통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결국 짜증스러워진다. 마찬가지로 청각으로 인한 짜증인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는 인간의 비명 소리와 비슷한 주파수이기 때문에, 청력의 합리적 보호를 위해서 혹은 진화적으로 우리의 두뇌에 각인된 원시적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에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 밖의 짜증 유발 요소 중 하나인 스컹크의 고약한 냄새는 썩은 음식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불쾌하다. 다시 말해 오감과 관련된 이런 불쾌감은 생존을 위해 진화되어온 회피반응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 짜증 유발 요소는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피하도록 설계되어온 뭔가를 연상시켜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어찌 보면 진짜 위협과 그 위협을 흉내내는 가짜 위협을 구별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착각이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셈이다.
짜증은 삶의 일부분이다. 피할 수도 없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짜증은 우리를 약올리고,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눈앞에 당면한 일에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그러나 짜증에 굴복하면 매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는 직업이 있다. 자신이 탄 비행기의 조종사가 폭풍우 속에서 착륙을 시도하는 동안 찰싹거리며 파리를 잡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경외과의사가 수술실의 형광등에서 나는 성가신 소음에 버럭 화를 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요리사가 여러분의 식사에 곁들일 소스에 고춧가루를 넣고 있는데 짜증난 웨이터가 요리사를 귀찮게 구는 일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_본문에서(122쪽)
짜증 없는 사회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상황에 처한다. 교통체증, 비행기 연착처럼 뜻하지 않게 일정이 틀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아 목표 성취가 좌절되는 경우도 있다. 요란하게 방귀를 뀌거나 코를 후비는 사람,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사람처럼 무례한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배려 없이 대화중에 딴짓을 하는 사람이나 금연 구역에서 흡연을 하는 등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도 접한다. 일반적으로 감정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생각하나 연구자들은 감정 또한 개인적인 특징이라기보다는 공동체,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속성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서양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제한될 때 짜증나지만 동양 사회에서는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등 개인이 집단에서 두드러지게끔 행동할 때 짜증이 유발된다. 이처럼 인간 간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짜증은 일종의 ‘사회적 알레르기’다.
사회적 알레르기는 특히 다른 타인에 비해 방어막이 얇은 배우자 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쩝쩝대며 음식을 먹거나 다 쓴 휴지를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는 등의 매일 혹은 가끔씩 사회적 알레르기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감정적 폭발이 일어난다. 대부분 이런 경우 상대방을 피하지만 연구자들은 배우자의 짜증나는 습관을 받아들이기, 상대방의 별난 점을 재평가하기 등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뭔가를 노력할 때 짜증이 줄어들기 마련이라고 한다. 배우자에게 짜증나는 행동을 멈추거나 그만둬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알레르기원은 고의가 아닌데다 통제하기 어렵고, 상대방이 당연히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본다.
몇 가지 해결책을 통해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아질 수 있으나 자신도 모르게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짜증에는 손쓸 도리가 없다. 이 책은 이런 일상적 불쾌와 짜증에 대해 단일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과학적 설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섬세함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준다.
사람들은 (그리고 물론 일부 동물들은)다양한 불쾌함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짜증나는 일을 접한다. 우선, 스컹크 냄새,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 귀에서 윙윙대는 파리 등 신체적으로 불쾌한 짜증이 있다. 비행기 연착이나 세 통씩 작성해야 하는 양식, 잠을 청하려고 할 때 시끄럽게 짹짹대는 새, 의사와 통화하려고 하는데 끝없이 흘러나오는 전화응답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 일어나는 또다른 종류의 짜증이 있다. 세번째이자 아마도 가장 큰 짜증의 범주는 특정한 사회적 규율을 위반하거나, 스스로의 가치체계와 충돌하거나, 합리적인 기대를 배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짜증이다(물론 일부 특정한 짜증 요소는 동시에 여러 범주에 속한다. 휴대전화 통화는 사회적 규율 위반인 동시에 버스로 통학하면서 독서하려는 계획을 망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_본문에서(199~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