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분기 일본 드라마는 말 그대로 수사극 열풍이다. 그중에서도 <더블 페이스>에 이은 TBS와 WOWOW사의 합작,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니시지마 히데토시, <한자와 나오키>의 가가와 데루유키 등의 호화 출연진으로 기획 단계부터 주목을 받은 드라마 <MOZU Season1~모즈가 울부짖는 밤~>은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짜임새와 극영화 못지않은 대담한 스케일로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 느와르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월부터 다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예정이라 한동안 식지 않을 인기를 예약해놓은 <MOZU>의 원작소설 『모즈가 울부짖는 밤』이 문학동네 블랙펜 클럽으로 출간되었다. 1980년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밀한 플롯과 스릴러물로서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이 대작 시리즈의 첫 권에서 ‘20세기 일본 하드보일드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통하는 원작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기억을 잃은 킬러, 아내를 잃은 형사
물러설 수 없는 추적자들의 대결이 시작된다!
절벽에서 추락해 기억상실 상태로 발견된 한 남자. 미궁에 빠진 현실과 영문 모를 적들의 위협 속에서 그는 신가이 가즈히코라는 자신의 이름 하나에 의지해 과거와의 유일한 끈인 여동생을 찾기 시작한다. 신주쿠 한복판에서 일어난 무차별 폭탄 테러로 아내를 잃은 공안형사 구라키 나오타케는 문제의 폭탄을 소지하고 있던 이가 극좌파 테러집단 ‘검은 엄니’의 간부였고, 우익단체에서 고용한 청부살인업자가 당일 그를 미행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위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구라키는 독단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자신의 여동생이 살았다는 집을 찾아간 신가이는 모종의 이유로 자신을 감시해온 또다른 공안형사 아케보시 미키와 마주친다. 신가이를 쫓는 폭력단의 목적은 무엇인가? 수수께끼의 암살자 ‘모즈’의 정체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미로를 풀어가던 이들 앞에 이윽고 권위의 이름 아래 가려 있던 경찰사회의 암투가 드러나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하드보일드 작가 오사카 고가 1986년에서 2002년에 걸쳐 전5권으로 완결한 ‘모즈’ 시리즈는 현재까지 도합 판매부수 80만 부가 넘는 대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숙명적인 계기로 범죄에 발을 담근 살인자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자 경찰조직 내부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본격 수사물이기도 한 이 시리즈는 개성 강한 등장인물과 간결하고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삼 년 반의 시간을 들여 집필한 첫 권 『모즈가 울부짖는 밤』은 시리즈 중 가장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의 시점과 정치 세력이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측의 시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각각 이야기를 진행하는 형식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마지막 장까지 독자를 사로잡는다. 특히 외부에서 고립된 스산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을 총집합시켜 사건의 전모를 둘러싼 베일을 한 겹씩 벗겨나간 뒤 예상치 못한 전개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후반부는 가히 서스펜스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일종의 서술트릭으로 분류될 수 있는 반전 역시 치밀한 구성과 묘사 덕에 무리 없이 녹아들며 하이라이트에 가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한다. 미스터리와 스릴러, 하드보일드 장르를 모두 아우르는 이런 매력 덕분에 『모즈가 울부짖는 밤』은 ‘극상의 엔터테인먼트’라는 평을 받으며 후속편들에 큰 기대를 모으는 데 성공했고, 2012년에는 ‘이 경찰소설이 대단하다’ 역대 순위 2위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한 인기를 증명했다.
빈틈없이 계산된 정밀한 플롯, 박진감 넘치는 전개
거대조직의 그늘에서 역동하는 장대한 서스펜스의 서막
둥지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꼼짝도 하지 않는 암갈색 새. 참새보다 덩치가 두 배 정도 크고 부리도 날카롭다. 허공을 노려보는 눈은 그 새가 이미 죽었음을 알려주었지만, 살아 있을 때는 분명 불길한 빛을 내뿜었으리라. 새장 밖에서 안쪽을 향해 고정된 쇠꼬챙이에 바짝 마른 개구리와 도마뱀의 잔해가 꽂혀 있었다. 시취의 진원지는 바로 여기였다. 그는 질릴 줄도 모르고 새장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이 새를 본 적이 있는 듯했지만 무슨 새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퇴원하고 나서 두 번 정도 새가 나오는 꿈인지 환상인지를 본 기억이 났다. 그것도 이 새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_본문에서
소설의 중반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의 암살자 ‘모즈(百舌)’의 이름은 일본어로 때까치를 뜻한다.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낸다 하여 ‘백 개의 혀’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이 새는 사냥한 먹이를 나뭇가지나 꼬챙이에 끼워 보관하는 다소 섬뜩한 습성으로도 유명한데, 『모즈가 울부짖는 밤』에서는 하드보일드 장르 특유의 서늘하고도 건조한 분위기에 녹아들며 본능에 가까운 살육을 저지르는 주인공의 상징이자 이야기 전반에 불길한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모티프로 등장한다. 또한 기억을 상실한 남자가 위협 속에서 직접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는 설정은 동시대에 출간된 로버트 러들럼의 유명한 장편소설 『본 아이덴티티』를 떠올리게 하는데, 오사카 고는 후기에서 ‘한창 집필하던 중 비슷한 설정의 해외 미스터리가 번역되는 바람에 기함했다’ ‘다행히 상황 설정만 제외하면 전혀 다른 내용이라 계속 집필할 수 있었다’라고 작은 에피소드를 밝히고 있다. 실제로 『모즈가 울부짖는 밤』에서는 의문의 킬러 신가이 가즈히코의 정체와 그를 둘러싼 추격전이 미스터리의 큰 축을 담당하지만, 시리즈 후속편으로 갈수록 공안형사 구라키 나오타케를 중심으로 한 하드보일드 경찰소설의 성격이 강해진다. 1980년대 후반의 혼란스러운 국제정치 상황과 이념적 대립을 적절한 극적 요소로 소화해낸 필력도 ‘모즈’ 시리즈를 출간 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새로운 독자들에게 꾸준히 인정받게 만든 이유라 할 수 있다.
『모즈가 울부짖는 밤』은 최고로 예리한 변화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공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비스듬히 휘어져 떨어진다. 타석에 선 독자는 당황스러움에 할말을 잃을 것이다. 오사카 고는 단 한 장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절묘하게 컨트롤하며 이 소설을 썼다. 이것이야말로 일급 서스펜스만이 지닌 잔향이다.
_후나도 요이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