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폭력에 분노하고 자유와 해방을 기도하다
남북전쟁 당시 역사 속 올컷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
루이자 메이 올컷은 열렬한 노예해방론자였다. 남북전쟁중 북군 측 종군간호사로 참전했던 일,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친 흑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던 일, 사형을 당한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을 위해 추도시를 지어 발표했던 일 등은 단편적이지만 그녀의 신념이 여실히 드러나는 일화들이다. 그의 해방적 세계관은 문학작품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특히 여성 작가로서 그는 멜로드라마나 자전소설 등 대중문학의 프레임을 십분 활용해, 남북전쟁의 정당성과 노예해방의 당위성을 단호하면서도 유쾌하게,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이 책에 처음 수록된 「병원 스케치」는 올컷의 첫 성공작이자 노예해방론과 여성주의적 관점을 녹여낸 자전적인 작품이다. 남북전쟁중인 1862년 북군 측 종군간호사로 참전했던 경험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이 글에는 전쟁과 상처를 실제로 처음 맞닥뜨린, 모든 것이 낯선 간호사 트리불레이션 페리윙클의 좌충우돌 병원생활이 익살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희극적인 어조는 날카로운 풍자를 위한 수사적 장치다. 화자는 명랑한 어조를 잃지 않으면서도 야전병원 곳곳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비능률적인 병원 운영, 비인간적인 의료진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문장에서 혼란에 빠져 어리둥절해하는 이는 간호사 페리윙클이지만, 행간에서 드러난 온전함을 잃은 주체는 노예제도와 시민전쟁으로 두 동강이 난 미국인 것이다. 나아가 절단되고 피 흘리는 국가를 간호해 질서와 건강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시민의 탄생을 위한 진통을 감수하며 그 양육을 위한 수고를 기꺼이 껴안는 것은 현장의 여성들이다.
두번째 실린 단편소설 「나의 콘트라밴드」는 종군간호사 데인과 남북전쟁중 해방된 노예(콘트라밴드) 로버트의 만남과 이별을 다루고 있다. 데인과 로버트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작품의 마지막까지, 두 인물 사이에 에로틱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병원 스케치」의 간호사 페리윙클이 어머니로서 해방을 위해 싸우는 미국을 보듬어안으며 인종통합의 방식을 제시한다면, 「나의 콘트라밴드」에서 데인은 흑인 노예와 은유적인 연인으로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인종통합의 관계를 보여준다. 세번째 작품 「한 시간」은 남부 벼 플랜테이션의 흑인 봉기 기도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남북전쟁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강조, 노예제도가 폐지되지 않으면 신의 분노든 노예의 분노든 곧 폭발하고 말 것이라는 묵시론적 경고 등을 서사로 엮어낸 솜씨는 문학의 힘을 되새기는 자못 강렬한 작품이다.
초월주의 철학‘만’을 논하는 남자들 vs 일상의 노고를 감당하는 여자들
사유 공동체 및 노동에 대한 생각과 자전적 경험이 버무려진, 올컷의 인생론
마지막 실린 표제작 「초월주의의 야생귀리」는 「병원 스케치」처럼 자전적인 작품으로, 올컷이 문학 시장에서 잘 팔리는 글을 놀랍도록 많이 쓴 것, 대중문학이 허락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한 것 등 작가 이력의 전기적 이해를 돕는 기념비적인 글이다. 무능하고 위선적인 아버지에 대한 답답함과 원망, 이상주의자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연민 등 올컷이 평생 아버지에게 느낀 양가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올컷의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은 소외된 노동과 소유, 어떤 종류의 착취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적 원시 공산주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1843년 여름날,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을 모두 데리고 뜻을 함께 하는 몇몇 친구와 뉴잉글랜드의 척박한 산골짜기 마을로 들어간다. “행위보다 존재를” 그리고 “육체적 기술보다 영혼의 명령”을 우선시하며 생활을 외면하는 철학들을 대신해 정착 노동의 대부분을 감당한 것은 올컷의 어머니와 어린 자녀들이었다. 이는 또한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사색과 고독을 향유하는 소로 곁에서 남편의 동지들을 접대하고 자질구레한 일상을 모두 감당했던 아내의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올컷은 인종, 성, 계급 등 사회문제에 대한 아버지 공동체의 비판적 인식에 깊이 공감했으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그들의 이상주의적 태도를 존중했다. 하지만 올컷은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끊임없이 일을 하면서 늘 빚과 가난에 허덕였다. 아버지의 유유자적한 삶은 자신에게 가능한 생활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월주의의 야생귀리」는 어쩌면,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위대한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나가는 손길이라는 것을 조용히 주장하는 글인지도 모른다.
● 본문 미리보기
“저기 저 빨간 머리 악마놈이요, 남군이에요, 망할 자식! 부인도 물론 동의하시겠죠, 그렇죠? 다리에 총상을 입었든지 다른 사람들처럼 칼침을 맞았을 겁니다. 저놈, 씻기지도 말고 먹이지도 말고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비명이나 지르게 내버려두세요. 저 망할 자식들을 우리랑 같이 이곳으로 데려오다니, 이게 무슨 지랄 맞은 수작인지. 이런 문제를 결정한 더 높은 인사에게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안 그러면 내가 벼락을 맞죠, 두고 봐요.” (「병원 스케치」 47쪽)
혼잡함 속에서도 외로웠던 병원 침대. 그가 감내한 그 모든 희생과 고통에 비해 보상은 너무도 초라했다. 바라봐주는 낯익은 얼굴 하나 없이, 잘 가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목소리도 없이, 사자死者의 골짜기까지 다정하게 인도해줄 손도 없이. 붉은 바다에 더해진 한 방울의 피처럼,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잠시 나는 생명의 가치와 죽음의 신성함이 이렇게 하찮게 취급되는 현실에 비통함을 느꼈다. (「병원 스케치」 53쪽)
남자들은 ‘검둥이’라는 욕에 기역까지 하나 덧붙여 껌둥이라고 지껄이면서, 그런 쓰레기들에게 무엇 하나 쓸 만한 것이 나올 리 없다며 흑인 인권 옹호자들을 비웃었다. 간호사들은 흑인의 도움은 기꺼이 받으면서도 감사를 표하거나 칭찬하지도, 거리에서 알은척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두 세대에 걸친 노예해방론자 집안의 피가 끓어올랐고, 건수가 생기자마자 튀어나와 강경하게 자유 발언의 권리를 주장했다. (「병원 스케치」 104-105쪽)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는 여러 가지 생각 중 오직 하나만이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명료했다. 어떻게든 살인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죽어가는 남자, 그리고 미친 남자(잘못된 충동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은 그 충동의 지배를 받는 동안 미친 것과 마찬가지니 말이다)와 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데 대체 어떻게? 나에게는 힘도, 용기도, 시간도, 전략을 짜낼 기지도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모르지만 그건 요행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무기가 있었다—혀, 여자의 가장 강력한 방어술. (「나의 콘트라밴드」 156쪽)
“그럼 말을 하지요. 아직 너무 이르긴 하지만 말이에요!” 짧고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며 밀리가 소리쳤다. “때가 되기 전에 말했다고 날 죽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바로 다음 순간 죽더라도 난 이 한 시간의 자유를 누려야겠어요. 오늘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 일이 벌어지게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이에요. 우린 이제 못 참아요. 새로 오는 주인이 이전 주인처럼 우리를 괴롭히기 전에 자유를 쟁취할 거예요. 자유를 손에 넣기 전에 피를 좀 보게 될 겁니다." (「한 시간」 184-185쪽)
“접근이 좀 어렵네요.”
“좋은 것들은 언제나 그렇지요. 하지만 신심과 인내를 가지고 찾는 사람들은 곧 우리를 발견할 겁니다.”
“진실은 우물의 바닥에 있습니다, 호프 자매.”
“그래서 그렇게 통 우리 손에 닿질 않는 모양이네요.” (「초월주의의 야생귀리」 220-221쪽)
● 해외 리뷰
올컷의 ‘또다른’ 문학 선집은 여성문학사가 잃어버렸다 되찾은 더없이 흥미진진하고 소중한 결실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
「병원 스케치」는 디킨스적인 유머와 분노를 강렬한 플롯 속에 훌륭히 담아낸 작품이다.
—일레인 쇼월터
「병원 스케치」는 잔잔한 유머와 생생한 재치로 버무린 유려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보스턴 이브닝 트랜스크립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