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교 선생님은요, 뾰족한 연필심으로 콕 찍은 점만큼이나 작은 세계를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졌어요. 언제나 큰 키를 수그리고, 실눈을 하고, 쥐, 새, 씨앗처럼 조그만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지요. 그런 선생님의 동시를 읽다 보면 새삼 이 세상이 우리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는 이처럼 나와 함께 사는 세상의 모든 것, 이를테면 벌레, 햇빛, 바람까지도 나와 똑같은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랍니다.
_오인태(시인‧아동문학평론가)
소외된 존재들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시력 40여 년,
키다리 시인 이상교의 신작 동시집 『예쁘다고 말해 줘』
동시인, 동화작가, 그림책작가 등 아동문학가 이상교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1973년 『소년』에 동시를 추천받아 문단에 나온 이후, 40여 년간 동시, 동화,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까닭이다. 그러나 ‘시인’으로 불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상교 시인은 “나는 동시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어요.”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 한다. 그 말은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시심을 잃지 않고자 하는 의지적 발화로 들린다. 동시에 대한 그의 애정은 『우리 집 귀뚜라미』(1988,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먼지야, 자니?』(2006, 산하) 『고양이가 나 대신』(2009, 창비) 등 굵직굵직한 동시집을 통해 꾸준히 증명되어 왔다. 그동안 내놓은 동시집들을 일별하니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띈다. 귀뚜라미, 먼지, 고양이가 등장하는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40여 년간 지속된 그의 시 세계는 대개 작고 약한,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의 눈길은 이번 동시집에서도 어김없이 세상에서 소외된 존재들로 향하며 “그래그래 예쁘다” 하고 그들을 어루만진다. 시인이 책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시인의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며 “마음을 건드”리는 듯하다. 그의 동시는 시인이“큰 키를 수그리고, 실눈을 하며” 들여다봐야 할 만큼 몸을 숨기는 데 익숙한 존재들을 다시 세상과 연결해 준다. 그의 신작 동시 44편을 통해, 원로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정진하는 시인의 새로운 성과를 만나 보자.
“자신에 대한 연민 같은 게 발현된 게 아닐까 해요. 남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것들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 같은 거 말이죠.”
시인은 2006년 아침독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난히 키가 컸고, 유난히 말랐고, 눈이 나빴던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시인은 그의 작품에서 두루 보여지는 ‘작고 초라한 존재에 대한 애정’이 유년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년의 그늘이 있었기에 시인은 세상의 작디작은 것들과 눈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눈길이 닿는 모든 대상에서 의미를 이끌어 내는 시인이 되었고, 모든 존재들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데려다 놓고자 하는 따뜻한 시심을 다질 수 있었다.
새가/ 똥을/ 뽀지직!// 풀씨 한 톨 든/ 똥을/ 뽀지직!// 한 톨 풀씨에서/ 한 줄기 돋아 자라기에/ 딱 알맞을 도시락으로/ 뽀지직!
_「새똥」전문
새가 똥을 “뽀지직!// (…)뽀지직!// (…)뽀지직!” 떨구며 리듬을 만드는 이 동시는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흥겨운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간결한 시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이내 그 안에 담긴 조화롭고 충만한 자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눈길은 작고 초라한 것을 향해 있다. 새가 아니라 새가 남기고 간 똥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선은 그 속에 든 풀씨 한 톨을 응시하며 더욱 깊어진다. 생명을 지닌 풀씨에게 똥은 꼭 필요한 양분이 된다. 시인은 똥을 “한 톨 풀씨”에게 “딱 알맞을 도시락”으로 탈바꿈시키며 ‘더럽고 냄새나는’ 똥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낸다.
쌀만 먹어/ 하얗고/ 쌀만 먹어/ 통통 살 오른/ 꼬물꼬물 쌀벌레/ 한 마리// 쌀통 속에서/ 기어 나와/ 쌀쌀쌀 기어간다/ 가는 데가 어딘지 모르면서/ 쌀쌀쌀 기어간다
_「쌀벌레」전문
고양이가/ 입을 조그맣게 벌려/ 울었다// 야아옹―// 조그맣게 입을 벌리고/ 울어/ 소리가 조그맣다// 야아옹―// 조그맣게 벌린 입 사이/ 이빨, 혀가 조그맣다
_「고양이가」전문
“쌀벌레”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기만 해도 ‘쌀벌레 없애는 법’ ‘쌀벌레 퇴치제’와 같은 연관 검색어를 볼 수 있건만, 시인은 쌀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쌀이 상할까 걱정하지 않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다. “하얗고” “통통 살 오른” “꼬물꼬물/ 쌀벌레”라는 표현에서는 대상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기미마저 읽힌다. 쌀벌레를 그저 가만히 두는 것, 그를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인은 세상 모든 소외받는 존재들에게 심층적인 위로를 건네고 있다. 「고양이가」라는 시 역시 작고 연약한 존재를 지켜 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행간마다 잘 묻어 있는 시이다.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우는, “벌린 입 사이/ 이빨, 혀”마저 조그만 이 고양이는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다. “조그맣게”로 시작하여 “조그맣다”로 끝나는 어구의 반복, 그 사이로 들려오는 “야아옹―”소리도 “조그맣게” 느껴진다. 언어가 그려내는 가냘픈 생명의 이미지가 절로 감정을 자극하여 독자의 마음 한 구석을 울린다.
거듭 읽을수록 뭉근하게 배어드는 환상적 서사
시인이 조곤조곤 우리의 마음속에 대고 노래하는 시적 대상은 쫄쫄이 강아지, 하늘을 가르는 헬리콥터, 한여름의 매미 소리처럼 생활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시인은 그들에게 동화적인 상상력을 더하며 독특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풀어 나가면 그대로 한 편의 동화가 되는 그의 동시는 재미있고 명료한 이미지로 다가올 뿐 아니라,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마력을 지닌다.
연이 퍼들퍼들/ 우산을 펴 들자,// 연못이 우걱우걱/ 떼 지어 살아난다// 하늘은 우산 위로/ 발을 옮겨 딛는다// 어떤 하늘은/ 우산 사이로 발목이/ 쑤욱 빠졌다
_「연못」전문
잎을 돋워 올리는 연을 두고 “우산을 펴” 든다고 상상한 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참신하다. 뿌리를 뻗은 곳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그의 그늘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을 ‘보호’하는 연잎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우산이라는 시어를 사용하여 연잎의 이미지를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연못 생명체들의 활달한 생명력은 “우걱우걱/ 떼 지어 살아난다”는 표현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연못 위에 비친 하늘이 “우산 위로/ 발을 옮겨 딛”다 “우산 사이로” “쑤욱 빠”진 “발목”으로 표현되면서 그 운동성과 역동성이 배가된다. 이러한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은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는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전철에서 잿빛 토끼 아줌마와/ 나란히 앉았다/ 아줌마는 긴 두 귀를 자꾸 쫑긋거렸다/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길을 걸어가다/ 노란 털 여우 아줌마와 마주쳤다/ 입이 뾰족, 눈이 쪽 올라가 있었다/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신호등 앞에서/ 검은 물소 아저씨를 보았다/ 초록불이 켜지자/ 북북거리며 건너갔다/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_「털가죽 옷」전문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산과 들에서 도시로 오게 된 동물들. 그들은 이 동화적 세계에서 “토끼 아줌마” “여우 아줌마” “물소 아저씨”로 의인화되어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고 있다. 어떤 권위나 차별도 없는 이상교 시인의 시 세계에서 독자들은 의인화된 동물과 자신을 자연스레 일치시키며 그들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동화적 발상을 통해 역지사지를 꾀한 시인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 모두가 “걱정”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삶에 온기와 웃음, 깊은 사유를 더하는 이상교 시인의 동시 세계는 ‘나’먼저 ‘나’부터 생각하기 급급한 오늘날 더욱 소중하다. 관심받지 못하는 존재를 중심에 놓고 사유하는 그의 시심은 시인의 오랜 정성으로 유지되어 왔기에 더욱 따뜻하고 뭉근하게 마음속에 배어든다.
팽이처럼 돌고 도는/ 지구/ 똑바로 서서 돌지 않고/ 기울기 23.5도// 볕 안 드는/ 식탁 밑/ 싱크대 구석의/ 먼지 앉은 자리/ 볕 한 줄기라도 얹고 지나려고// 담장 아래 쥐똥나무/ 쥐똥나무 밑의/ 땅강아지 집/ 볕 한 자락이라도 얹고 지나려고// 똑바로 서서 돌지 않고/ 23.5도 마침맞게 기울어/ 봄 여름 가을 겨울/ 볕 안 드는 데 없이/ 고루고루
_「23.5도」전문
그림은 동화 『처음 받은 상장』(2005, 국민서관) 이래로 『얼굴이 빨개졌다』(2009, 국민서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2013, 뜨인돌 어린이) 등 이상교 시인의 주요 작품에 그림을 그려 온 화가 허구가 맡았다. 재치 있는 시 해석과 유머러스한 그림체, 자유로운 화면 구성이 시에 활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