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은진 언니, 노래하듯 시를 쓰고
풍각쟁이 은진 언니, 시를 쓰듯 노래하네
귀가 있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노래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목이 바로 첫 소절로 시작되기도 하는 바로 그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 간드러지는 콧소리로 ‘오빠는 풍각쟁이야’가 흘러나오면 춤을 추듯 온몸을 쓰는 아코디언과 뭉툭한 입 모양새로 우뚝 선 스탠드 마이크를 동시에 떠올리게도 되지요. 그리고 여기 한 사람. 흡사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옴 직한 터번을 머리에 둘러쓴 채 쿵짝쿵짝 박자를 맞추는 복스러운 한 여인. 이름은 혹여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은진’이라는 본명보다는 ‘풍각쟁이 언니’로 한 시절을 풍미했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헌법재판소 근처에서 ‘풍각쟁이 언니’가 운영하는 문화 공간 ‘아리랑’이 지난 2013년에 개봉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의 무대가 되어준 뒤로는 ‘풍각쟁이 언니’에 더해 ‘아리랑 언니’로도 불리게도 되었지요. 돌고 돌아 여기 ‘최은진’이라는 예인 한 명을 이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다가 소개할 타이밍을 맞이했으니, 달랑 책 한 권이라면 섭섭하지 아니할까 하여 음반도 하나 얹어드리니, 바라건대 그저 여러분들은 제 눈과 제 귀에게 주어진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열어 잠시나마 오감 안에서 깊어지시고 넓어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책과 음반이 한데 어울려 있는『머리에 꽃 이고 아리랑』, 글과 음악이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이 책은 총 2부의 짜임새를 가졌습니다. 1부는 ‘트윗쟁이 은진: 최은진이 쓰고 가려낸 아포리즘 100선’이라 하여 그간 부지런히 올려온 그녀의 트위터 글 가운데 주로 일상을 주제로 한, 평범하면서도 한줌의 감동을 한줄기 등뼈처럼 몸에 숨기고 있는, 마치 하이쿠와 같은 단상들을 추려 모아봤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어쩌면 사람을 만나고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매일같이 ‘아리랑’의 ‘주모’로 가게 문을 여는 게 아닐까 추측을 해보게 되는 데는 글을 통해 세상을 향하는 그녀만의 날카롭고도 뜨거운 시선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역으로 거슬러 부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걸 자꾸만 보게 되니 그녀는 흔해진 웃음만큼 눈물도 자주 흘리게 됩니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데 급급했다면 그녀는 실시간으로 글을 써 트위터에 올리거나 ‘아리랑’에 찾아온 이들에게 막 구운 오징어를 착착 찢어주는 손놀림의 공연한 부지런함을 택하지 않았겠지요.
최은진의 글에 자꾸만 눈이 가는 건 그녀 특유의 솔직함도 한몫을 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려고, 혹은 어려 보이려고 거울 앞에서 덕지덕지 분첩을 두드리는 일 같은 건 그녀, 절대로 행하지 않거든요. 아니 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연이 콩깍지를 뒤집어써서 우리에게 미의 기준이 되고 치유의 수단이 되어주는 건 아니니까요. 본디 타고난 자연스러움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지요. 최은진의 글 또한 그렇습니다. 공작새처럼 화려한 비유나 기교를 위해 주제를 흐리지도 않고 목에 힘을 주어 제 의견을 피력함에 있어 쭈뼛거리거나 망설이며 말을 비벼버리는 비겁함과도 먼 거리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동심’에서 비롯된 ‘시심’이라 정리를 해볼까요.
묻고 묻기
비가 오나 문을 여니
얼마 전 죽은 새끼 길냥이 어미가
뭣 좀 없수 하는 얼굴이다
없는 것을 알고 돌아서는 그놈 뒤에
너 새끼 없어진 거 아니?
묻는다
묻었겠지 너도
그러니 살겠지
가만 가만히
어둠과 바람이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안 봐도 다 압니다
귀를 열기 전에
마음을 먼저 열어놨으니까요
희망
가짜가 많다고 투덜거리는 자에게
가짜가 있어야 진짜가 빛난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도 깊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깊게 파인 구덩이 안에서
사람 하나 걸어나온다
머리에 달빛을 화관처럼 쓴 채
시를 읽어가며 노래를 들어가며 한 권의 시집에 한 장의 CD!
2부는 ‘풍각쟁이 은진: 최은진이 새로 부른 근대 가요 13곡’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고향> <오빠는 풍각쟁이> <다방의 푸른 꿈> 등 그녀가 새로 불러 다시금 우리에게 각인이 된 ‘만요(漫謠)’들을 한 곡 한 곡 보자기처럼 탈탈 털어 쫙 하고 펼쳐둔 이유에는 시에 아주 맞닿아 있는 가사를 한번 음미해보십사 하는 의도였습니다. 그저 듣고 마는 노래와 읽어가며 듣는 노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오랫동안 몸에 남는가 하면 잴 것도 없이 아마 후자일 것입니다. 우리 노래들이 명곡으로 오래오래 불려올 수 있는 데는 아마도 이 가사의 힘이 한몫 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순수한 가사로 세태를 풍자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며 시대의 아픔까지 담고 있는 만요. 최은진의 글이 해학과 재치가 넘치는 만요의 가사에 꽤나 닮아 있는 데는 노래를 부르며 몸에 배인 문장의 힘이란 게 분명 있었을 겁니다.
★ 이 사람의 말과 노래를 듣고 있으면 결국 뭐든 ‘견디어내게’ 된다.(영화감독 조원희)
★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이에게만 가면 뭐든지 생생해지는.(시인 이원)
★ 그녀의 목소리에는 오감이 있다. 오감 중에서도 봄의 오감.(소설가 천운영)
‘만정쟁이’ ‘사랑쟁이’ 최은진을 곁에서 오래 지켜본 지인들의 진솔한 한마디와, 그녀의 인생 이야기도 더해보았습니다. 13곡 다 끝나고 다시 1번 트랙으로 돌아가 이 책의 맨 첫 대목 한번 다시 읽어봐주시길요. 1930년대 목소리를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자유롭고 맑은 영혼의 살뜰한 맛에 절로 랄랄라, 랄랄라……
몸, 마음, 영혼이 있다면
지성, 감성, 영성의 옷을 입혀
조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게 하고 싶다.
머리에 꽃 이고 아리랑, 랄랄라.
_‘서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