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고차방정식보다 더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문학작품이 인생의 시뮬레이터도 모범 답안처럼 정답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를 줄 것입니다._유영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청소년들의 불안과 고민을 구성하는 세 가지 원소, 관계+미래+콤플렉스
청소년기 누구나에겐 여러 이유로 말 못 하는 가슴앓이들이 있다. “도대체 걘 나한테 왜 그러지?” “어쩌자고 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오늘 학원 빠지고 싶은데 무슨 핑계거리 없나?” 하는 일상의 고민부터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문턱에서 찾아드는 묵직한 질문들, “나는 누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누구도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이런 질문들에 어쩌면 엎드려 읽는 소설 한 편과의 교감이 유효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청소년소설의 알맞은 자리일 것이다.
지난 십 년간 청소년문학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온 대표 작가들과 신선한 발상과 진솔한 화법으로 청소년문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신예 작가 21명, 그리고 그동안 문학동네 아동청소년 도서 기획위원으로서, 청소년문학의 태동부터 팽창까지 최전선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해온 비평가로서, 청소년소설이 그 주체인 청소년의 삶과 가까워질 길을 모색해온 유영진(엮은이) 평론가, 그들이 한데 모여 요즘 청소년들의 불안과 고민을 구성하는 세 가지 주요 항목, 관계, 미래, 콤플렉스를 화두로 다채롭고 기발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많은 문제들은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불확실한 앞날에 있으며, 콤플렉스에 기인한다. 누구나 겪었고 늘 겪어 왔지만 언제나 새로운 그 고민들. 작가들은 각자의 색깔로 SF,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형식 안에 평범하기도 특수하기도 한 인물들의 사연과 고민을 녹여내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너는 그 고민을 어떻게 대하고 있냐고.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을 차지하는 관계, 미래, 콤플렉스를 주제로 엮은 단편집 중 미래 편. 가깝게는 성적과 대학, 나아가 직업, 그리고 결정되어지지 않은 미래의 시간들에 대한 불안과 환상, 기대와 고민을 SF적 상상력으로, 미스터리를 가미해서, 사진 찍듯 현실을 재현한 이야기로 펼쳐 냈다. 머나먼 미래의 공중도시 소년과 해저도시 소녀의 교감, 한여름 학교에서 얼음이 되어 버린 학생들, 김치 담그는 강좌를 열어 자식의 교육비기를 설파하는 엄마, 명문대를 걷어찬 아이, 어제까진 아무 꿈이 없었지만 오늘은 요리학원에 등록해 요리사가 되길 꿈꾸기 시작한 소녀,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역전된 두 친구, 의대 진학이 좌절된 형의 가출 이후 뮤지션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종태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내는 드라마 속에서 독자는 자신이 품은 고민의 한끝과 조우하게 된다.
수록 작품 소개
「잠시 막을 내리다」 오문세
중학생 시절 스포트라이트 아래 빛났던 나와 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던 우중충했던 아이. 2년 뒤 둘은 ‘1단계 비만의 돌멩이’와 ‘엣지 클럽’의 잘나가는 리더로 재회하지만 상황은 역전되어 있다. 미래에 꿈꿔 왔던 나와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지금의 나, 과거의 나를 닮은 듯한 킬힐, 채팅으로 만난 ‘티티카카’의 인물구도가 묘한 긴장감을 생성한다.
「4%」 최서경
4% 안에 들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아이들. 친구의 실패가 자신의 등급 상승으로 이어지는 비정한 경쟁사회를 빙하기에, 상처 입은 자화상을 물고기 네온테트라에 비유하며, 자기 세대가 느끼는 공포와 슬픔을 환상성을 입혀 드러냈다. 빙하기처럼 모든 것이 얼어붙은 학교에서 뛰쳐나온 주인공이 거울 속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엄마의 아들」 김학찬
대대로 박복한 팔자를 끊어내기 위해, 아들의 인생을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통제 아래 설계하기로 마음먹은 그녀. 아들을 성공한 사람으로 길러낸 그녀가 김치 담그는 강좌를 열어 그동안 간직해온 교육비기를 청중들에게 전수한다. 과연 그 김치의 맛은?
「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 전삼혜
머나먼 미래의 지구, 공중도시와 해저도시의 주민으로 갈라져 다르게 진화한 인류. 오래도록 공중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고 싶었던 소년 가하, 그리고 신체기관을 바꾸어서라도 더 깊은 바다 밑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소녀 나루. 절체절명의 순간 찾아온 둘의 풋풋한 사랑은 두 사람을 어떻게 진화시킬까.
「꽝! 다음 기회에」 정연철
의대에 미끄러지자 가출한 성치 않는 몸의 형, 집안의 반대에도 공고에 입학한 뒤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차근차근 걷는 상필, 의사가 될 거라는 모두의 기대와 달리 내심 다른 걸 꿈꾸는 반장 지환. 제가끔 꿈을 품은 이들 속에서 종태는 뮤지션의 길 대신 형이 놓친 의대 진학을 목표로 세운다.
「나의 욕망 나의 상처 나의 자랑」 장주식
중학교 삼 년 내내 1등이었던 세형은 일류라고 불리는 대학 대신 다른 길을 택한다. 제도가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인 선택은 그러나 세상의 벽 앞에서 비틀한다. 여행을 다니고 하루하루 마음 편하게 살고 싶지만 언제까지나 잉여로 살 수도 없는 노릇. 열정을 쏟을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 세형은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답답하다.
「봄이 온다」 김해원
고래를 잡아 서울에 구두 가게를 내고 싶었던 정 노인은 부둣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손녀 호정과 살아간다. 호정은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해 번 급료로 요리 학원에 다닐 기대로 부풀지만 교실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로 급료를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바닷바람에 풍화되어 간 정 노인의 꿈과 이제 막 벼리기 시작한 호정의 꿈은 어떤 봄을 맞이할까.
어쭙잖은 태도로 이해하는 척, 하지 않기
나도 너희 같은 때가 있었지, 잘난 척 않기
어쩌면 가장 빛나는 시간들을 내 옆자리, 앞자리 친구들과 동일한 미래를 놓고 경쟁하며 왜곡된 장래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내가 오늘 이걸 하지 않으면 과연 내일이 밝아질까, 내일은 오늘에 따라 정해지는 함수일까. 숱한 질문들에 대해 7명의 작가들이 열어젖힌 미래는 친근하여 내 얘기 같고 코미디에서나 볼 법하며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장 미래의 계획을 세우라고 충고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미래에 대한 선택은 두렵고 설레며 미래의 시간을 걸어가는 것은 자신뿐임을 가만히 일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