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에게 말 걸기
김진경 이중현 김성근 이광호 한민호 지음
153*225 | 268쪽 | 2014년 9월 1일 발행
978-89-546-2561-6 03800
2014,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위한 제안
2014년 6월 14일 치러진 교육감 선거로 13개 시도교육청에서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제2기 진보교육감 시대에 앞서, 김진경, 이중현, 김성근, 이광호, 한민호 다섯 교육운동가들이 현 교육계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함께 교육생태계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담은 책을 선보인다.
지금 아이들은 가슴에 수많은 유령을 품고 산다
보수정권 7년을 지내며 우리 학교 교육은 극단적인 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을 밑천삼은 학력경쟁은 나날이 강도가 심각해지고, 대상 연령 또한 점점 낮아져 유치원까지 내려왔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특목고 열풍, 그 핵심으로서의 사교육 열풍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졌다. 교육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 특목고, 자사고의 확대, 그리고 국내 국제고, 외국계 국제고까지 열을 세우며, 엘리트주의의 장벽을 높게 세우고 있다. 연간 수천만 원이 드는 학교는 새로운 ‘구별 짓기’의 하나가 되어 부모의 부가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학교는 새로운 계급을 만드는 곳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가슴에 수많은 유령을 품고 산다. 아무도 아이들 가슴속의 유령을 호명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유령들은 점점 기괴한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세계적 지각변동으로 일컬어지는 변화 한가운데에 있고, 미래를 대변하는 아이들은 그 변화의 가장 앞자리에서 있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존재들은 변함이 없다. 부모들은 교육을 통해 아이가 계층사다리를 타고 오르길 바란다. 아이가 부모세대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기를, 더 큰 부를 얻기를, 그러기 위해서 더 배타적인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학교 교육은 여전히 아이들을 도구적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를 포기할 것을 강요받는 아이들을 위해, 진정한 학력이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질 때이다. 붕괴된 교실에 방치된 아이들을 꺼내 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건강한 교육생태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해리 할로의 유명한 헝겊원숭이 실험은 1957년에 이미 따뜻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인간에게 얼마나 근원적인가를 보여준다. 새로운 교육생태계는 아이들을 어루만져 접촉하고 교감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식 중심의 도구적 아동관, 그러한 관점에서 운영되는 교육시스템은 폭력에 가까운 억압일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간 아무도 아이들 가슴속의 유령을 호명해 주지 않았다. 이 유령들을 호명하고 말을 걸지 않으면 교육의 변화란 있을 수 없다.”
변화는 교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를 보면, 교육계에서 비롯된 담론과 실천이 사회 전반의 변화를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학교와 교실에서 시작된 ‘구별 짓기’는 교육의 문제, 아이들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2014년 6월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전국 13개의 시도 교육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변화의 바람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불기 시작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하지 못하고, 개인의 욕망만을 위해 경쟁하는 삶은 교실에서부터 극복되어야 한다. 제2기 진보교육감 시대에 희망을 거는 이유이다.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의 등장 이후 지난 5, 6년간 진행된 정치·사회적 변화를 볼 때, 우리 사회의 진보적 개혁은 새로운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혁신학교의 확산과 새로운 교육생태계의 구축을 통해 새로운 사회 진보의 주체가 형성되고, 동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소용돌이치던 교육계 안과 밖에서, 아이들의 곁에서, 학부모의 곁에서, 교사들의 사이에서, 순간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온 힘을 다해 몸으로 부딪혀온 다섯 명의 교육운동가들은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꿈꾸며, 현재의 헝클어진 현실을 짚어내고 분석한다. 혁신학교의 확대, 혁신고등학교의 성공적 모델 찾기, 고교교육의 수평적 다양화와 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것, 교원임용방식의 다양화 등 제2기 진보교육감 시대의 과제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본문 소개]
김진경 _ 바보야, 문제는 헝겊원숭이야
1989년 초대 정책실장으로 전교조 창립을, 참여정부 시절 교육문화비서관으로 교육정책을 주도했던 김진경은 교육의 문제를 정치 사회 경제적인 변화 속에서 중산층의 붕괴와 교육 양극화 등 오늘의 학교 교육이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학교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학교를 넘어 지역 교육생태계를 회복을 위해 혁신학교에 대해도 이야기한다.
“학교는 지역사회를 향해 문을 열고 지역사회와 맞물리며 교육생태계를 복원해 나가는 중심에 서야 한다. 경기도나 서울의 금천구에서 진행된 교육혁신지구사업은 지역 교육생태계의 회복을 위한 시도들이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중상층 아이들만을 위한 학교에서 벗어나 중하층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학교가 될 수 있다.”
“혁신학교는 아이들이 거주하는 곳의 평범한 학교를 바꾸어 다양한 아이들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반엘리트주의의 보편교육을 지향한다. 혁신학교는 아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를 그 지역의 교사, 학부모, 학생, 교육자치체와 지자체가 힘을 합해서 바꾸어 가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교육이 잃어버렸던 기억 즉, 해방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갔던 자발적인 학교설립운동에 맥이 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학교가 성공한 지역에서 학부모들의 문화적 공동체가 복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혁신학교가 지역사회복지 차원의 교육시스템, 평생교육시스템과 연계하여 폭을 넓히며 발전해 간다면 지역생활공동체의 복원으로까지 나가게 될 것이다.”
이중현 _ 잘 살아 보세 패러다임과 교육
40년 가까이 초등교육현장을 지키며 2007년 교장공모제 시행 때 폐교 직전이던 경기도 조현초에서 첫 공모교장으로서 학교가 어떻게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준 이중현은 시대별 주요 교육정책과 교육현장을 회고한다. 월말고사가 있던 70년대부터, 고교평준화와 과외의 80년대, 열린교육의 90년대, 수능과 논술의 2000년대, 그리고 이후 새로운학교만들기와 교장공모제, 혁신학교까지 주요한 교육정책들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움직여왔던 한 사람의 교사의 고민이 보인다. 그리고 해방 이후 우리 학교를 지배해 온 ‘잘 살아 보세’ 패러다임, 즉 학교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신화로 인한 왜곡된 학력관에 대해서 성찰하며 진정한 학력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우리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보면 출세를 위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의 만원버스 타기 경쟁이었다. 만원버스를 타기 위해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부르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정답만 찾는 교육, 점수 위주의 왜곡된 학력관, 대학입시경쟁과 특목고, 자율고, 국제고 설립 등으로 인한 교육의 양극화 심화, 멈출 줄 모르는 사교육열풍이 그렇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학력은 가치나 철학이 배제된 채,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점수 위주의 학력이지 삶을 위한 학력이 아닌 것이다. 더 높은 점수를 위해 무조건 외우고 문제를 푸는 공부가 학생들에게 건강과 여가를 주고 있는지, 입시경쟁 위주의 공부가 학생 개인의 개성을 살리고 존중과 배려, 우정을 가르쳐 주는지, 입시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의 정신적 건강과 안전은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 모든 자연이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훼손, 파괴되는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참된 학력이 되어야 한다.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의 혁신학교가 이러한 문제를 성찰하고 있다.”
김성근 _ 강남패러다임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상임전문위원과 대통령비서실 교육행정관으로 일했고, 평교사로 강남 8학군부터 지방의 작은 시골학교까지 전혀 다른 교육 환경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온 김성근은 지역까지 퍼져나가 있는 강남패러다임에 대해 분석하고 그로 인한 문제들, 극복방법, 무엇보다 지역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접근을 한다. 시골 선생의 경험 속에서 얻어진 시각으로 시골학교의 의미, 지역성을 살린 지역의 교육, 마을이라는 교육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강남 패러다임의 극복 방법으로 제시했다.
“강남 패러다임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상류층 진입이다. 똑똑한 10%의 인재 양성을 위한 수월성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월성 교육의 기조는 ‘똑똑한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신자유주의 철학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그간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글로벌화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시스템을 선택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지역에서 자라난 우수한 아이들이 성장 후 다시 고향에 돌아가게 하는 일, 창의적인 열정으로 고향을 채우겠다는 꿈을 갖게 하는 일을 학교가 시작해야 한다. 학교에서 지역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인프라와 학교가 관계를 맺고,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학교가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학교교육과정에 지역사회의 내용을 반영해 나가야 한다.”
이광호 _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교육생태계를 꿈꾸다
(사)함께여는교육연구소의 이광호 소장은 이우학교 설립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새로운 교육 모델을 학교 밖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광호 소장은 현재의 붕괴된 교육생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의 움직임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학교와 지역이 더욱 강하게 연계하고 마을에서 아이와 어른이 서로 돌봄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한다. 세대와 계층을 연결하는 청년 멘토링, 전북 진안의 교육협동조합, 광주시와 광주교육청의 ‘방과후학교 공익재단’, 일본 모치즈키와 오스트리아 도른비른 등 구체적 사례로 들며 마을을 돌봄의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학교를 둘러싼 교육생태계는 붕괴, 혹은 해체 상태나 다름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 전반의 교육생태계를 복원, 혹은 재구성하지 않고서는 학교교육은 물론 우리 사회의 미래도 암담해진다. 교육생태계의 복원, 혹은 재구성은 단지 ‘교실붕괴’로 상징되는 현실의 교육문제 해결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사회적 변화를 보면, 교육계에서 시작된 새로운 담론과 실천이 사회전반의 변화를 추동해 왔다.”
“혁신학교가 새로운 교육과정,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못지않게, 새로운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에서 상류층의 구별 짓기 전략에서 벗어난 중산층과 서민의 연대가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대할 뿐 아니라,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구축하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개혁을 위한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민호 _ 마을과 학교의 만남
2011년부터 4년 동안 금천구청에서 교육정책보좌관으로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학교 교육의 문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교육사업을 기획, 추진한 한민호는 교육자치와 지방자치가 어떻게 서로 협력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직접 경험을 들려준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교육문제를 파악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이 직접 교사가 되고, 휴일에는 온 마을이 학교가 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고 스카이대학 진학률이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금천구에서 일어난 4년의 변화 보고서의 내용은, 교육사업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주민의 삶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최근 기초자치단체에서 시행되는 다양한 교육사업들에 하나의 모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혁신교육지구사업에 대한 일시적 좌절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물었다. 만약 학교가 변화를 거부하고 교육청이 자꾸 뒷걸음질을 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들이 답을 주었다. 직접 주민들이 나서겠다는 것이다. 마을교사사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의 좌절들이 이제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우리 주민들은 그 어느 자치구 주민들보다 마을의 일에 앞장서고 서로 나서려고 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이 많다. 그래서 마을교사사업을 해도, 마을학교사업을 해도, 혁신교육지구사업을 해도 주민들이 서로 나서며 함께 일을 추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금천구에서 우리 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본다. 금천구의 새로운 교육실험은 모두 주민들의 노력과 참여 그리고 그들의 열정과 끈끈한 동료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금천구의 변화가 자꾸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