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그런 다음 네가 인간임을, 인류의 일원임을 알라.
그리하여 무엇보다 네가 아무것도 모름을,
그리고 네가 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언제나 네가 정말로 아는 것으로부터
네 주의를 돌리기 위한 수단임을 알라.”
전 세계 33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신화총서> 열번째 작품 출간!
정신분석가이자 작가인 샐리 비커스가 고대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와 현대 과학자 프로이트를 통해 오이디푸스 신화를 재해석한 『세 길이 만나는 곳』이 출간됐다. 영국 캐논게이트 출판사가 기획하고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33개국의 저명한 출판사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신화총서>에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집필한 작품이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 가려져 있던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시 들추어보다
‘빛나는 존재감을 가진 영국 작가’로 평가받는 샐리 비커스는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첫 소설 『미스 가닛의 천사』를출간했다. 그전에는 청소부, 댄서, 모델, 대학의 문학 강사로 일했고, 정신분석가로도 활동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호기심이 많고 소위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의문을 갖는 성격 때문이었는데 이 성격은 그녀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바가 크다. 샐리 비커스의 부모는 모두 영국의 공산당 당원으로 아버지는 노조의 지도부에서, 어머니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샐리 비커스는 학창 시절 내내 부조리한 공교육에 반대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녔다고 회고한다.
권위와 상식에 도전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닮은 그녀는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의식을 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 알리고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창안한 프로이트가 실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습니다. 오이디푸스가 왕비 요카스테와 사랑에 빠진 시기는 그가 ‘아이’가 아닌 ‘성인’이었을 때였습니다. 또한 프로이트는 라이오스 왕과 요카스테의 입장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잠을 자게 되는 것도 특이한 소재이긴 하지만 부모가 자신들의 아이를 직접 죽인다는 설정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프로이트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인디펜던트> 인터뷰
이렇게 샐리 비커스는 프로이트가 ‘친부 살인’과 ‘근친상간’이라는 소재에만 주목한 까닭에 오이디푸스 신화가 담고 있는 다층적인 의미들을 놓쳤다고 보았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장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불러내 말년의 병든 프로이트를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은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된다. 샐리 비커스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문학 강사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소포클레스의 희곡『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소설가 키플링의 작품에 등장했던 소재를 끌어와 프로이트와 테이레시아스의 대화를 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게 직조한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프로이트에게 낯선 방문객이 찾아온다.
1923년 오스트리아의 빈. 67세의 프로이트는 구강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다. 평소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죽음을 열망하는 동시에 공포를 가지고 있던 프로이트에게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일련의 수술은 커다란 두려움이다. 수술 부위의 출혈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강력한 약물 치료가 진행되던 어느 날 프로이트의 앞에 낯선 방문객이 찾아온다. 이 방문객은 프로이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치료를 거듭하며 심신이 쇠약해진 프로이트는 그럴 여유가 없다며 그를 병실 밖으로 쫓아낸다.
이후 십오 년이 흐른 뒤인 1938년, 나치 정권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프로이트에게 이 방문객이 다시 찾아온다. 방문객은 ‘세 길이 만나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 프로이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 길이 만나는 곳’이란 바로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장소였다. 평생에 걸쳐 자신이 연구했던 이야기였기에 프로이트는 방문객의 말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둘 사이의 대화가 시작된다.
끊임없이 변주되고 각색되는 비극의 고전, 오이디푸스 신화
고대 그리스의 테베.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신탁을 받지만, 왕비 요카스테가 자식을 간절히 바란 탓에 결국 아들이 태어나고, 이 아이는 버려진다. 그러나 아이는 운좋게 목숨을 구해 이웃나라 코린토스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왕자로 자라난다. 이후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어느 술주정꾼의 말실수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고 결국 신탁을 구하러 간다. 하지만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운명이라는 불길한 대답만 듣는다.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부모가 있는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다,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떤 늙은 남자를 만나고 자신의 길을 막는 그 남자와 일행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죽인 이 늙은 남자가 바로 라이오스 왕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친아버지를 죽이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오이디푸스는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테베의 길목에서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를 만난다. 이즈음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젊은이들을 죽이는 바람에 테베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오이디푸스는 단번에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영웅이 되고 왕비 요카스테와 결혼까지 한다.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평화로이 통치하며, 요카스테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테베에 역병이 닥치고,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찾아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진다. 그러나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결국 오이디푸스의 출생과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왕비 요카스테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오이디푸스는 요카스테의 브로치로 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테베에서 추방되어 딸 안티고네와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된다.
‘신의 선물’ 같은 테이레시아스의 오이디푸스 이야기
― 알겠지만 친구, 그 이야기는 내 연구의 중요한 부분이었소, 내 일생의 연구 말이오. 그것을 당신에게서, 관계자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마치……
― ……신들의 선물 같다는 말이오, 프로이트 박사?
(본문 128쪽)
『세 길이 만나는 곳』은 테이레시아스가 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직접 들려주는 형식이다. 테이레시아스는 프로이트에게 소년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아폴론의 사제가 되었고, 어떤 방법으로 예언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부터,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 왕을 죽이기 전에 자신이 어떻게 두 사람을 만났었는지 그 일화들도 들려준다.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 왕은 각각 다른 이유로 신탁을 구하러 왔다가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우연히 마주쳐 그 비극이 벌어졌었다. 이때문에 테이레시아스는 자신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그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프로이트에게 인간적인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 내가 한 시간 더 일찍, 아니면 늦게 떠났더라면,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무엇이 변하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결국 벌어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벌어질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 이제 나는 생각하오. 그날 라이오스 왕과 다른 한 남자는 어떤 운명의 끈으로 델포이와 테베를 잇는 움푹 파인 길의 좁은 골짜기 위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을까?
(본문 110쪽)
그러나 테이레시아스가 프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이야기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는 곧 작가인 샐리 비커스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시 쓴 이유이기도 하다.
― 나는 굉장히 자주 그녀를 생각하면서, 당신이 이 이야기를 설명할 때 왜 그토록 그녀를 경시했는지 궁금해했다오. 그녀는 정말 남편의 목숨을 염려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린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아들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 그래서 그녀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별을 미연에 방지했다? 말이 되는군.
― 당신은 전문가잖소, 프로이트 박사. 난 그저 하찮은 목격자일 뿐이오.
(본문 168~169쪽)
― 왕은 허공에 매달린 그의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여인의 가슴에서 두 개의 청동 브로치를 떼내어 그 핀으로, 자신의 두 눈알을 반복해서 찔렀소. 삼십육 년 전 그 브로치를 하고 있었던 여인이 갓 태어난 그의 발목을 찌르는, 유례없는 행동을 했던 것처럼 말이오. 그의 두 눈에 거무스름한 피가 가득 차오르더니 이내 붉은 피가 눈물처럼 그의 애처로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오. 그때 그의 마음속에 어떤 보이지 않는 황폐함이 있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오.
― 그 행동은 거세를 의미하오. 눈과 남근, 이 두 가지가 동의어라는 것은 꿈에 대해 연구하며 정립된 학설이라오.
― 아니오, 프로이트 박사. 오이디푸스가 스스로를 거세할 생각이었다면, 그는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오. 그것은 수치심이었소.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으로 숨었다고 생각하는 아이처럼 그는 자신이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세상도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요.
(본문 197쪽)
이렇게 프로이트에게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테이레시아스는 그 의문에 대한 절대적인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오이디푸스가 고통스러운 진실을 어떤 식으로 감내했는지 역설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또다른 의문을 제시할 뿐이다.
― 그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기를 거부하고,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 수 있는지를 스스로 찾아냈소. (...) 그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혹은 하기를 두려워하거나 하더라도 부인하게 될 일들을 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모조리 자백했으며 살아남아 그것을 이야기했다오. (...) 오이디푸스는 죽고 싶다는 소망을 단념했소.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서도 말이오.
― 결국, 그는 누구였소?
― ‘결국’ 우리 모두는 과연 누구요, 프로이트 박사?
(본문 206~207쪽)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직접 듣는 프로이트. 작가의 이러한 접근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강렬하고, 날카로우며, 유쾌한 작품!가디언
곱씹어보게 하고, 깊이 생각해보게 하며, 즐기게 하기까지 만드는 책이다. 스코츠맨
소설가로서 샐리 비커스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것들을 건드린다.인디펜던트
샐리 비커스는 빛나는 존재감을 가진 작가다. 필립 풀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