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지젝 정치적, 신학적, 문화적 독법
- 저자
- 김석 외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4-08-15
- 사양
- 288 | 138*210 | 무선
- ISBN
- 9788967351267
- 분야
- 철학/심리/종교, 정치/사회
- 정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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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라캉과 지젝"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이 책은 한국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뜨거운 문화 현상의 하나이자 무시하기 힘든 지식권력이 되어버린 슬라보예 지젝 현상에 대해 한국의 소장 연구자들이 전문가적 안목으로 진지한 탐문과 논쟁을 시도하는 첫 작업이다.
여기 글을 쓴 필자들은 모두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에 소속되어 현재 활발하게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고 강의나 특강을 통해 대중과 만나면서 정신분석적 이론에 근거해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는 오래전부터 슬라보예 지젝을 둘러싼 대중의 소문과 학문적 숭배(?) 현상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하면서 냉정한 평가를 내려 보려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지젝이 우리 연구자들의 주된 논거점인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자기 사상의 주된 자양분이자 원천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라캉 연구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다양한 맥락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변용하고 활용하면서 헤겔, 칸트, 마르크스를 접목해 현란한 개념 유희를 펼치며 대중을 끌어들이는 지젝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젝을 통해 라캉 이론이 지닌 난점이나 이론사적 의미에 대해 새로운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든, 혹은 지젝이 라캉을 비틀거나 왜곡시키는 지점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을 더 정교하고 고집스럽게 다듬는 데 집착하는 연구자들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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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석_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강응섭_예일신학대학원대학 조직신학-정신분석학 교수.
김소연_연세대 강사.
김정한_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
남인숙_대학 및 대학원에서 미학 및 예술론, 비평론 강의.
신명아_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성민_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도서출판b 기획위원.
정혁현_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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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지식 권력이 된 "지젝 현상"에 대한 탐구
1장 라캉과 지젝: 주체화 윤리와 공동선을 향한 정치혁명
뫼비우스의 띠: 연속성과 불연속성│부정성에 대한 입장│주체화│보편성을 향한 혁명과 자기 정립의 윤리│라캉을 넘어서
2장 정신분석의 정치: 라캉과 지젝
정신분석과 정치│라캉의 정치적 회의주의│지젝의 공산주의│정신분석에 적합한 정치는 무엇인가?
3장 한 라캉주의적 헤겔주의자의 충동적 자유
매듭을 풀 단서들│충동의 문제│헤겔로의 회귀│배움
4장 라캉과 지젝의 신 개념
"신"이라는 기표에 관한 문제제기│신에 관한 담화의 짧은 역사│라캉의 신 개념│지젝의 신 개념│정신분석은 종교가 될 것인가?
5장 정신분석의 신학적 해석: "기의 없는 기표"와 성서 읽기
"기의 없는 기표"에 대한 신학적 사유│"라캉과 함께 지젝"은 "기의 없는 기표"를 도입한다│라캉식 표현에서 지젝을 돌아본다│"기의 없는 기표"는 중세 스콜라 신학을 떠돌아다녔다│바울식 "직유의 길"은 "기의 없는 기표"로 통한다한국 신학을 치유하는 길
6장 지젝의 정치신학 연구: 사도 바울 읽기를 중심으로
정치적 담론과 신학의 만남│지젝의 "약한 정치"와 "신의 약함"│지젝과 바디우의 사도 바울 읽기│"고통 중인 신"과 "그리스도의 괴물성"│죽음충동의 해체적 전략에 의한 새 정치신학의 가능성
7장 라캉의 이미지론에서 지젝의 영화론으로: 미혹의 스크린 혹은 베일과 가면의 은유에 관한 고찰
근대적 시각성의 문제: 추상적 주체와 사로잡히는 주체│스크린의 기능: 창문과 거울의 은유에서 베일과 가면의 은유로│인터페이스-스크린 효과: 봉합의 실패와 응시의 가시화│지젝은 왜 인지주의적 포스트-이론에 반대하는가?
8장 여성, 사랑의 주체와 내면의 발견: 시린 네샤트의 비디오 삼부작을 중심으로
내면과 사랑의 의미│시린 네샤트, 작업 배경│환희, 격동, 열정│존재하지 않는 여성과 시 그리고 사랑│시로 말하는 주체, 여성
주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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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지젝과 바디우에 대한 열광과 지적 호기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2013년 9월 24일에서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멈춰라, 생각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금 낯선 철학 축제(?)가 열렸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 신자유주의의 득세 때문에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 컨퍼런스는 런던, 베를린, 뉴욕에 이어 네 번째로는 서울에서 열린 일대 학문적 사건이었다. 이 자리는 이 시대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이자 유명 스타(?)라 할 수 있는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일종의 철학 콘서트 혹은 철학 극장이었다. 이들의 초청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컨퍼런스와 다양한 형태의 강연회 및 모임에는 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참여와 문의가 쇄도했고 바디우와 지젝의 일거수일투족에 대중의 시선이 쏠렸으며, 두 철학자의 발언은 마치 한반도를 울리는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대중에게 공명을 남겼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여전히 종북좌파라는 단 하나의 낙인만으로 반대파를 가차 없이 제압할 수 있는 나라 한복판에서 비록 철학적 탐구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공산주의 이념의 유효성과 그 실천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정말 생경한 광경 아닌가? 1980년대 마르크시즘,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거친 후 그 동안 뚜렷한 논점과 주류 이론이 없이 다양한 사상에 대한 천착과 학문적 시도가 게릴라전처럼 모색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이들이 제시하는 정신분석, 주체철학, 공산주의, 공동선이라는 거대 담론의 주제들이 갑자기 화두가 되는 현상은 정말 바디우의 말처럼 하나의 사건이었다. 1998년 IMF 이후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고, 순수 학문과 인문학적 가치가 실종되면서 이윤 추구를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모범적인 국가 중 하나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듯했으나 다시 권위주의적 보수 정권이 등장하면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위축되고 국가가 무차별로 시민을 감시하는 신공안 시대가 열렸다. 이런 판국에 해방과 투쟁, 게다가 공산주의라니! 이런 까닭에서인지 바디우와 지젝의 강의에는 대중이 넘쳐나고 질문이 쏟아졌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디우와 지젝에 대한 이런 열광과 지적 호기심을 단순히 그들의 유명세나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이벤트에 목말라 하는 문화적 갈증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모순된 분단 상황과 이것보다 더 적대적인 남한 내 이념 갈등,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삶의 피폐화, 모두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실종과 비인간화, OECD 최고의 자살률과 점점 더 늘어나는 범죄와 정신질환 비중, 세월호 사건 같은 일련의 사회적 위협과 트라우마, 정치의 실종과 행정력의 비대화 같은 한국 사회의 제반 악조건들이 대중으로 하여금 이런 콘퍼런스에서 길을 찾도록 내몰지 않았을까? 여전히 이런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사회 상황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현실의 문제를 철학적 지평으로 소환하는 한 ‘지젝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바디우와 지젝은 이 땅을 떠났지만 이들이 남긴 철학적 과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 진지한 답을 내려볼 때이다. 이들이 던진 문제와 화두는 여전히 이 땅에 있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오롯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지젝 현상을 그대로 두고보는 것 지식인의 임무 방기
‘라캉과 지젝’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이 책은 한국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뜨거운 문화 현상의 하나이자 무시하기 힘든 지식권력이 되어버린 슬라보예 지젝 현상에 대해 한국의 소장 연구자들이 전문가적 안목으로 진지한 탐문과 논쟁을 시도하는 첫 집단 작업이다. 여기 글을 쓴 필자들은 모두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에 소속되어 현재 활발하게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고 강의나 특강을 통해 대중과 만나면서 정신분석적 이론에 근거해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는 오래전부터 슬라보예 지젝을 둘러싼 대중의 소문과 학문적 숭배(?) 현상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하면서 냉정한 평가를 내려 보려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지젝이 우리 연구자들의 주된 논거점인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자기 사상의 주된 자양분이자 원천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라캉 연구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다양한 맥락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변용하고 활용하면서 헤겔, 칸트, 마르크스를 접목해 현란한 개념 유희를 펼치며 대중을 끌어들이는 지젝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젝을 통해 라캉 이론이 지닌 난점이나 이론사적 의미에 대해 새로운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든, 혹은 지젝이 라캉을 비틀거나 왜곡시키는 지점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을 더 정교하고 고집스럽게 다듬는 데 집착하는 연구자들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에서 지젝은 라캉의 또 다른 그림자이자 유령이면서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증상이고, 우리에게 정신분석학이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을 새롭게 환기시키며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게 만드는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3년에 개최된 철학 콘퍼런스 이후 지젝이 한국 대중과 더 친숙해지고, 일반 독자들도 지젝을 통해 정신분석 이론에 입문하면서 프로이트와 라캉 사상을 이해하려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지젝을 아무것도 아닌 양 외면하거나 각 연구자의 개별 평가에만 맡기는 것은 정신분석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일종의 의무 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우리 한국 연구자들이 지젝에 대해 대중이 품고 있는 막연한 기대나 신비화를 깨뜨리면서 정신분석학의 본질에 대해 뭔가를 가르쳐주겠다는 학문적 우월의식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지젝이 라캉과 프로이트의 이론을 대중문화의 맥락에서 활용하는 것을 넘어 공동의 선을 향한 문제제기로서 공산주의 이념을 제시하고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정치이론화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상황에서 지젝과 라캉의 관계에 대해 엄밀하게 진단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전공에서 정신분석학에 기대는 연구자마다 정신분석학의 의미나 실천 방향은 물론 지젝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에 미묘한 차이들이 있는 터에 지젝의 사상에 대해 비판적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이론적 좌표를 점검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단순히 지젝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혹은 비판하고 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적 상황에서 정신분석의 이론적·실천적 유용성을 새롭게 발굴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유의미성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와도 맞물려 있다. 위에서 지젝이 아니라 지젝 현상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고민의 반영이다.
즉 지젝 자체가 아니라 지젝을 통한 정신분석의 확장 및 대중화 현상을 짚어보려는 것이 우리 의도다.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는 이런 비판적 문제의식 아래 2012년 12월 1일 정기 학술대회 주제를 ‘라깡과 지젝: 정신분석의 현재’로 정해 심도 있는 토론을 펼쳤다. 비록 학술대회가 갖는 여러 형식적 한계와 참여자의 제한들로 어떤 새로운 합의점을 찾거나 심층적 분석에 만족스럽게 이르지는 못했지만, ‘라캉과 지젝’을 주제로 삼은 학술대회는 그 자체로 우리 연구자들에게 이후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이 책은 그때 논의된 주제를 발표에 참가했거나 그 후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이 보완하고 다듬어 새롭게 내놓은 집단 노력의 성과물이다.
지젝과 라캉의 다양한 접점을 총점검
초기 지젝이 라캉의 이론을 독창적으로 활용하면서 그것의 숨은 실천적 의미를 주로 문화 현상과 관련해 보여주는 데 조심스럽게 주력했다면 최근의 지젝은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재해석, 역사유물론과 신학의 결합, 공동선을 위한 정치 투쟁의 필요성, 윤리의 정치화,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의미 등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라캉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독보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지젝은 라캉의 전도자라기보다 독창적인 사상가로 스스로의 입지를 굳혀가는 듯 보이며 대중 역시 이런 의견에 대개 동감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젝이 최소한 여전히 기대고 활용하는 라캉 정신분석 이론에 대해 그것을 전공한 학자들이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은 정신분석학의 주체적 수용과 관련해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라캉과 지젝을 비교·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 신학, 철학, 영화, 미학, 페미니즘 등 정신분석이 관여하는 다양한 접점에서 지젝과 라캉의 학문적 관계를 살펴보려고 했다.
라캉과 지젝은 둘 다 주체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모순과 정체성 구성의 근원적 불가능성을 주체의 필연적인 구성 조건으로 전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은 물질적 기표와 상상적 이미지가 함께 구성하는 현실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지만 이 현실은 이미 비일관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언어는 상징화를 벗어나고 저항하는 실재를 완전히 구조화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와 무능력을 드러내기 때문에 말하는 존재인 인간은 근본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소외와 배제, 결여와 부정성이 주체의 구조와 현실에 내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불가능한 욕망의 환유적 반복과 정치적 전복을 향한 몸부림을 반복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것은 인간 운명의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들이다. 하지만 이것을 분석하는 데서 라캉과 지젝은 미묘하지만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지젝은 특히 상징계와 실재계의 모순 및 충돌이 네 가지 사회적 적대로 나타난다고 강조하면서 배제를 체화하는 프롤레타리아 주체의 위상과 정치적 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이 네 가지 적대란 첫째 다가오는 생태적 파국의 위협, 둘째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사유재산 개념의 부적절함, 셋째 유전공학에서 새로운 기술과 과학 발전이 갖는 윤리적 함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네 번째는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를 분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의 생성이다. 지젝은 단순히 언어의 한계와 상징계의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배제의 형태로 체험되는 실재의 힘에 근거해 적극적인 정치적 투쟁과 자유를 주장한다. 한마디로 욕망의 윤리에 대한 충실성을 넘어 실재를 향한 정치적 이론화를 지향하는 것이 지젝의 특징이다. 우리는 이하에서 지젝과 라캉이 만나고 때로 협력하는 논쟁적 지점을 여러 소재와 분석을 통해 조명하면서 필자들 각자의 전공에 따라 라캉과 지젝의 이론사적 관계를 점검해보려고 한다.
"라캉과 지젝"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이 책은 한국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뜨거운 문화 현상의 하나이자 무시하기 힘든 지식권력이 되어버린 슬라보예 지젝 현상에 대해 한국의 소장 연구자들이 전문가적 안목으로 진지한 탐문과 논쟁을 시도하는 첫 작업이다.
여기 글을 쓴 필자들은 모두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에 소속되어 현재 활발하게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고 강의나 특강을 통해 대중과 만나면서 정신분석적 이론에 근거해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는 오래전부터 슬라보예 지젝을 둘러싼 대중의 소문과 학문적 숭배(?) 현상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하면서 냉정한 평가를 내려 보려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지젝이 우리 연구자들의 주된 논거점인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자기 사상의 주된 자양분이자 원천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라캉 연구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다양한 맥락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변용하고 활용하면서 헤겔, 칸트, 마르크스를 접목해 현란한 개념 유희를 펼치며 대중을 끌어들이는 지젝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젝을 통해 라캉 이론이 지닌 난점이나 이론사적 의미에 대해 새로운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든, 혹은 지젝이 라캉을 비틀거나 왜곡시키는 지점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을 더 정교하고 고집스럽게 다듬는 데 집착하는 연구자들이든 모두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