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이야기를 품어서 서로 닮은 사람들,
창문 너머 당신의 초대를 기다린다
우리는 일이 바빠서, 사느라 바빠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기 어렵다. 가만히 앉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곱씹기에 세상은 너무 어지럽고 바삐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속도에 발맞추어 걷다보니 머리와 마음의 속도와는 다르게 발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꼴이다.
저자 양양은 남들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그래서 더 바지런한 사람이다. 그녀의 눈길은 삶과 사람과 세상을 세심히 살피고, 그녀의 손길은 시선들을 문장으로 적고 멜로디로 만든다. 그렇게 완성된 그녀의 글을 통해 우리는 바쁜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자신의 감정을 살필 수 있다.
이 책은 그녀 혼자서 고민하고 쓴 글들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채워진 장면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어느 강가에서, 허름한 순댓국밥집 테이블 위에서, 서른일곱 시간을 횡단하는 열차의 비좁은 삼층 침대에서 쓴 글에는 그래서 삶의 면면이 묻어 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 책장 끝을 만지다보면 어디선가 본 풍경들이 저릿하게 눈앞에 떠오를 것이다. 밤길을 걷다가 불 켜진 빌라의 어느 창문을 올려다본 순간, 시골 마을 버스에 줄줄이 오르는 등이 굽은 할머니를 보는 순간, 엄마에게 전화해 ‘사랑해’ 말하는 순간들이 그렇다. 어떤 날은 무심하여 몰랐던 가족들의 옆얼굴을 오래 바라보게도 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감정은 이혜승 작가가 그린 열세 장의 삽화들로 인해 더욱 짙어진다. 언덕에 올라가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나무 뒤를 지나가는 사람 등 스쳐가는 익명의 사람들 모습이나, 무심히 식탁 위에 놓인 과일들, 책상 위에 놓인 찻잔 등 쓸쓸한 정물의 이미지들은 페이지 곳곳에서 푸르고 바랜 듯한 색채로 마음 한켠을 눅진하게 만든다.
저자가 자신의 속도를 늦추어 발견한 순간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우리는 나의 사람들, 나의 가족들, 나의 연인들 그리고 나의 시간들과 공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저자 개인의 시선이 독자들의 시선으로 탈바꿈하면서 우리는 저자와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서 별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쓸쓸하고 외로운 우리의 삶이 결국 남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게 사랑스럽다는 것을.
읽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어떤 말들은 글이 되고 어떤 말들은 노래가 되었다
책을 쓰기에 앞서 저자는 묻는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만 말하고 시 쓰는 사람은 시로만 말해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노래해야 할까.”
뮤지션으로서 두 장의 앨범을 낸 저자에게 어떤 날은 노래로도 풀 수 없었던 멜로디가 있었다. 그 멜로디를 글에 담았다. 이 책의 다섯 챕터는 동명의 제목으로 나온 앨범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속 다섯 곡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글이 노래의 부연설명이 되었거나 노래가 글의 부록이 된 것은 아니다. 그저 글과 노래가 어떤 방식으로든 읽히고 불려 또다른 언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놓였다.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방식보다 다가왔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둘이지만 동시에 하나인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의 어울림을 위해, 책은 앨범을 함께 작업한 뮤지션 이상순, 하림이 추천사를 썼고, 앨범은 이병률 시인과 김경주 시인이 추천사를 써 뮤지션이 글을 보는 시선과 시인이 음악을 보는 시선을 동시에 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다가가 손내밀어주고 싶은 사람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글 속의 이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당신의 표정이 궁금하다.
당신은 미소짓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 울상을 짓고 있을까.
책장 너머의 당신은 아마 저자가 궁금해하는, 굳게 닫힌 창문 속 당신과 같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면면들이 당신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볼 계기가 될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여지는 있다. 그러니 이 책 앞에서는 마음껏 당신의 감정을 내보여도 좋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닮아 있어 비슷한 사람이므로.
★ 추천사
글을 읽기 전에 나는 그녀의 노래를 먼저 들었다. 양양은 언제나 조곤조곤하게, 하지만 가슴 깊이 남는 이야기들을 노래하고 있었고, 이번에 함께 작업하게 된 다섯 곡의 노래 역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다음, 글을 읽었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고,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일상의 순간들이 그녀의 노래에서처럼, 글 속에도 잘 녹아 있었다. 마치 작은 실타래를 잘 풀어헤쳐 커다란 이야기를 뜨개질한 듯이.
글을 읽는 동안 그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글만 읽어도, 노래만 들어도, 그녀를 느낄 수 있고 또 그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 그녀의 노래가, 또 노래 속에 그녀의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_ 이상순(뮤지션)
사람들이 높게 지르는 가수들에게 점수를 많이 줄 때 낮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사랑받으며 잘 살아간다. 세상이 빠른 스마트폰에 환호할 때 천천히 노트에 손으로 적으며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는 그녀를 쓸데없는 고집쟁이라 놀리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때야말로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을 많은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가속도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일까. 우리 삶에 더덕더덕 붙은 가속도를 떨어내려는 노력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덜어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편해진 어깨를 기분좋게 흔들며 문득 소리내어 읽어보면 노래가 되기보다는 글이 되는 쪽을 택했던 그녀의 글들은 당신으로 인해 마침내 노래가 된다. _ 하림(뮤지션)
★ 노래에 붙인 글(앨범 추천사)
양양,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웃음이 번집니다. 그만큼 행복해서랍니다. 그 웃음, 그 얼굴에 환히 번지는 행복감만큼 우리를 지켜주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맑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곧 사랑에 빠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녀의 노래가 사랑스러워서 오늘은 가을 하늘에 대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녀를 닮고 싶습니다. _ 이병률 (시인, 여행작가)
오랫동안 근척에서 지켜본 양양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렬히 시집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열렬한 여행중독자이다. 그리하여 내게 양양이라는 뮤지션의 이미지는 항상 어디서나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거나 어딘가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보헤미아에 가깝다. 책갈피를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자가 어디있으리 생각이 들지만 사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집을 별로 읽지 않고 여행을 두려워하거나 미루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양양은 자연스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을 누구도 해보지 않는 방식으로 노래하는 법을 익힌 것 같다. 이 음원들을 나는 점자를 만지듯이 만져본다. 소리에 담긴 공기를 냄새를 맡듯이 킁킁거려본다. 그녀가 선율을 올려놓은 풍경의 페이지들이 바람개비처럼 펄럭거린다. 노래하는 자는 자신의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여행을 떠나보낼 수 있다. 가끔 그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어도 좋다. _ 김경주 (시인, 극작가)
★ 본문 속으로
일기장 속에 빼곡히 들어찬 글, 녹음기에 하나둘 앉아 있는 멜로디. 그 파아란 글과 빠알간 노래를 여기에 함께 놓아두면 저 하늘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이것이 글이기도 하고 노래이기도 한, 글과 노래 사이의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둘이 다른 길을 걷다가 언젠가 만나게 되면 서로 반갑게 껴안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맞닿은 심장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당신은 아시는지. : 본문 6쪽, [시작하며] 중에서
그러니 나랑은 허름한 곳으로 가자. 반질반질 닳은 탁자에 앉아서 찌그러진 냄비에 팔팔 끓고 있는 찌개 한 숟가락 떠먹으면서, 짝 안 맞는 젓가락으로 김치 꽁다리 찢어먹으면서 허름한 것들의 노래를 좀 듣자. 웅숭깊은 그 노래 들으면서 나도 좀 걸쭉하게 울어보자, 한번. 우리는 본래 허름한 사람이었다. : 본문 37쪽, [허름한 것들] 중에서
1번에 적혀 있는 것 때문에 항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4번을 데리고 와서 4번에게 자리를 내주는 거지. 내 1번에 언제나 ‘기타 연습’ ‘피아노 배우기’ 같은 게 놓여 있었다면 4번에는 ‘도자기 공예’ ‘서예’ 같은 것들이 조금 서운해하는 모습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4번에게 1번 자리를 주자 인생은 또 조금 즐겁게 흘러가더라. : 본문 232쪽,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중에서
거기, 창문 속의 당신. 당신도 어느 날은 위태로운 한숨을 삼키며 잠드나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마른 고함을 질렀나요? 그래도 잘 가고 있어, 고맙고 행복하기도 한가요? 달이 쨍한 날, 혼자 실실 웃나요? 그런가요, 당신도? 창문의 속내가 늘 궁금합니다. 나는, 당신이 궁금해죽겠습니다. : 본문 247쪽, [창문의 속내] 중에서
그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사랑해’ 하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할지 알면서도 눈 딱 감고 걸었습니다. 엄마, 자? 으응, 이렇게 늦게 웬일이고. 응,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놀고 있어. 엄마, 요즘은 잘 자고? 그래, 못 잘 때도 있고 그렇지 뭐. 엄마. 응. ……사랑해. 아아, 목구멍을 타고 힘겹게 새어나온 그 말은 참 뜨거웠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돌아왔어요. “그래, 나도 사랑해.” : _ 본문 275쪽, [지켜주세요] 중에서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나는 다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요, 할머니, 할머니가 항상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도, 그 덕분으로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것도 사실 다 알고 있어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 본문 277쪽, [지켜주세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