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 저자
- 이상운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14-12-11
- 사양
- 256쪽 | 145*210 | 신국판 변형 | 무선
- ISBN
- 978-89-546-2662-0
- 분야
- 산문집/비소설
- 정가
- 13,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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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죽어가는 초고령 노인을 "관리"하고 길들이려는 의료환경에 좌절하고,
현실감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묵묵히 갈며,
언젠가 내게도 무심히 닥칠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며 보낸 3년 반의 기록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급격히 허물어진 아버지로 인해 죽어가는 인간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겪어보았다.
나는 삼 년 반 동안 고령의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사그라져가는 육체의 추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내 속에 생생하게 자국을 남기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자국들은 아버지가 흙에 묻힌 뒤에도 아무런 신호도 없이 불쑥 재현돼 나를 괴롭히곤 했다. 밥을 먹을 때 우연히 내 입에서 나는 후루룩 소리가 또렷이 의식되면서 아버지가 식사하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른다거나, 혹은 늦은 밤 불면으로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당기고 모로 누울 때, 아버지 역시 이런 동작으로 힘겹게 돌아누웠었는데 하는 기억과 그 감각이 내 몸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식이었다.
삶의 긴 여로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죽음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직접적인 고통의 현장이었다. 어떤 웅장한 사상으로도, 어떤 창의적인 관념으로도, 어떤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 으로도 그 슬프고 추한 몰락의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가는 한 인간과 밀착해 보살피고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객관적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었다. 이것은 도통 말이 없는 분이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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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10여 년 동안 강의를 했다. 1997년 장편소설 『픽션 클럽』으로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06년 장편소설 『내 머릿속의 개들』로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소설집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중학생 여러분』, 장편소설 『탱고』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그 기러기의 경우』 『내 마음의 태풍』 『바람이 불어, 내가 원치 않아도』 『불』, 미니픽션집 『달마의 앞치마』 『제발 좀 조용히 해줘』 『책도둑』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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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가의 말
낯선 우리집
바람 속의 티끌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여로에 들어
집에 가고 싶다
한밤중의 춤
그리운 집으로
위로가 필요하다
긴급 상황
모두가 죽는다
관심과 존엄
간병, 그 만남과 헤어짐
다시 한밤중의 춤
개인적 체험
인생의 종착역
이 년이 지난 뒤
생사의 아이러니
고도를 버리다
아버지가 내민 손
최고의 선물
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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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어느 날, 고령의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고령의 부모님이 갑작스레 발병해 입원한다면, 치료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받아야 할까? 가족이나 보호자는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할까?
저자와 그 가족은 고열이 나면서 아프기 시작한 고령의 아버지를 치료하고 돌보기 위해 으레 그러듯 종합병원을 찾는다. 병원의 전문가들이 잘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상황이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노쇠한 몸 곳곳에 주삿바늘이 꽂히고 이런저런 약물이 공급되는 와중에, 잔뜩 겁먹은 아버지는 주삿바늘을 잡아빼며 퇴원을 요구하고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해 모두를 가슴 졸이게 한다. 게다가 “아야! 아야!”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병원 생활중에 팔다리는 급격히 무력해졌다. 쇠약한 노인에게 온갖 검사를 지시하던 의료진은 명쾌하게 발병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저자는 퇴원을 결심한다. 두 발로 걸어 병원에 간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아버지의 몸과 정신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섬망’이라는 정신과적 증세 때문에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냈고, 고령 노인이 입원하면 물리치료사를 붙여 팔다리 근육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진료 과목을 갖췄다는 이유로 ‘종합병원’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는 정작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무너져가는 노인을 종합적으로 진단하지 못하는 실상에 저자는 허탈함과 좌절감을 느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이미 죽음의 길에 들어선 고령의 아버지에게 괴로운 연명치료 대신, 인간적이고 안정적인 마지막 여정을 준비해드리기로 한다.
노화와 죽음마저 위생적으로 포장되는 시대
필요한 건 상조 광고가 아니라 죽어가는 자를 ‘제대로 돌보는’ 일
저자는 늙고 병든 사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적 미흡함을 상업자본이 맹렬히 이용하는 세태에 다시 한번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요양병원이다. 깨끗하고 편리해 보이기 때문에 그곳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저자는 요양병원이 결코 만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역시 한동안 집에서 아버지를 간병해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요양병원을 찾지만, 그의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은 “입원 후 일주일간 면회 금지”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이었다. 낯선 곳에서 강압적으로 길들여져 좁은 침대 위에 식물처럼 누워 지낼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가 누리는 편리함은 적은 대가와 고된 노동을 감내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간병인들 덕분이라는 사실도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렇게 저자가 경험하는 일련의 일들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것은 5일이면 끝나는 장례가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늙음과 죽음의 과정이며, 그 곁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더불어 저자는 빈집을 가정집으로 개조한 공간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본의 간병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인간적으로 늙고 죽는 일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제도적 뒷받침을 거듭 강조한다. 죽어가는 자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현실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면 늙어가는 인간은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자의 곁을 지키며
곧 내게도 닥칠 죽음을 생각하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무너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인간이 존엄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빠진다.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애잔함을 불러일으키지만, 추하게 망가져가는 육체와 정신 역시 그 여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구급차, 자주 갈아줘야 하는 대소변 기저귀, 늘어지고 물러지는 피부, 점점 사라지는 현실감각… 이 모든 일들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것이 바로 죽음의 과정이다. 따라서 저자는 죽음이 결코 순간의 일이 아님을 일깨우며 늙고 죽어갈 자신의 모습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둘 것을 권한다. 우리나라 노인이 병석에 들어 죽기까지 평균 병치레 기간이 7년에서 10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만큼 더 많이 그리고 더 유별나게 노화와 죽음의 시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늙고 죽어가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시기가 왔음은 자명하다.
긴 생애를 살아내고 이제 그 마지막 길에 들어선 아버지의 육체와 정신은 저자에게 많은 질문을 내놓았다. 그는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질문들에 응답하고자 애썼고, 인간의 늙음과 죽음에 대해 객관적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었다. 이것은 도통 말이 없던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었다.
죽어가는 초고령 노인을 "관리"하고 길들이려는 의료환경에 좌절하고,
현실감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묵묵히 갈며,
언젠가 내게도 무심히 닥칠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며 보낸 3년 반의 기록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급격히 허물어진 아버지로 인해 죽어가는 인간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겪어보았다.
나는 삼 년 반 동안 고령의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사그라져가는 육체의 추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내 속에 생생하게 자국을 남기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자국들은 아버지가 흙에 묻힌 뒤에도 아무런 신호도 없이 불쑥 재현돼 나를 괴롭히곤 했다. 밥을 먹을 때 우연히 내 입에서 나는 후루룩 소리가 또렷이 의식되면서 아버지가 식사하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른다거나, 혹은 늦은 밤 불면으로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당기고 모로 누울 때, 아버지 역시 이런 동작으로 힘겹게 돌아누웠었는데 하는 기억과 그 감각이 내 몸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식이었다.
삶의 긴 여로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죽음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직접적인 고통의 현장이었다. 어떤 웅장한 사상으로도, 어떤 창의적인 관념으로도, 어떤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 으로도 그 슬프고 추한 몰락의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가는 한 인간과 밀착해 보살피고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객관적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었다. 이것은 도통 말이 없는 분이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