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린의 이야기
십이국기 세계의 한가운데 위치한 봉산은 기린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다. 인간이나 동식물, 마물들이 태어나는 이목이 곳곳에 있는 것과 달리 기린이 태어나는 사신목은 봉산에만 있기 때문이다. 네 다리와 뿔, 멋진 갈기가 있는 기린의 모습으로 태어나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사람의 모습과 기린의 모습을 오가는 전변(轉變)을 하게 된다. 기린은 태어나면 여선들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성장해 왕을 선택한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십이국기 세계와 현실 세계가 만나는 ‘식’으로 인해 봉래(일본)로 흘러들어간 대국의 기린이 십이국기 세계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부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가 평범한 소녀였던 요코의 성장 이야기를 그리며 십이국기의 세계관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기린’이라는 존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십이국기의 존재가 봉래로 흘러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줄거리만 보면 왕 대신 기린이라는 인물 차이뿐으로 보이지만, 단면은 전혀 다르다. 기린이 태어나고 자라는 봉산의 봉려궁, 기린을 모시는 여선들, 기린의 사령, 왕의 선택과 천칙, 재보로서의 기린의 업무 등, 이야기의 대부분이 열두 나라의 왕이나 기린, 신선 등의 생활이나 입장 등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절실하게 바라는 마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가 인간관계를 하나의 테마로 다룬 것처럼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자신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본래라면 활발하고 재기 넘치는 존재여야 할 대국의 기린 다이키는 봉래에서도 봉산에서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매우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 탓에 자신의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것처럼 리사이와 교소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상징적 존재의 등장은 그런 다이키의 모습을 더욱더 부각시킨다.
다이키가 ‘기린’으로 태어난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기린으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은 잠재적이다. 그래서 그는 전변도 할 수 없었고, 기린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사령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교소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사령을 굴복시키고 전변을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절실하게 바라는 마음’뿐이라는 증거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듯 느껴졌던 문제는 의외로 간단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에 대한 동경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자괴감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의외로 이처럼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마성의 아이』와의 연결점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0번째 에피소드인 『마성의 아이』의 옛이야기다. 다카사토가 그토록 기억하고 싶어 했던 잃어버린 1년을 그리고 있다. 다이키가 십이국기 세계에 오기 전부터 어우러지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에 이질감을 느껴왔다는 것은 『마성의 아이』와 비교해 흥미로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다카사토는 줄곧 가미카쿠시를 당해 기억이 없던 1년의 시간 때문에 자신이 주위에 동화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에서 다이키는 처음부터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느꼈고, 십이국기 세계에 와 본무를 다하고(왕을 선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어린 다카사토(다이키)와 성장한 다카사토가 안고 있는 고민의 근원은 같은 지점이었던 것이다.
태왕의 곁에서 재보로서의 역할을 다하던 다이키가 어떤 연유로 다시 봉래로 흘러가 10년 동안이나 기억을 잃고 살아갔는지는 앞으로 나올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을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