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새로운 대안
착취와 경쟁이 아닌 공존의 자유를 찾아서
“자유란 우익 부자의 것 아닌가요?”
어느 중학생의 질문이었다. 중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자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자유란 우익 부자의 것이 아니냐’고 질문했다. ‘자유총연맹’ ‘자유연합’ ‘자유청년연합’ 등 많은 보수 성향 단체의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새 우익의 논리를 대변하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선(先)성장 후(後)분배, 정부의 규제 완화, 신자유주의…… 익히 들어온 우익의 논리에는 ‘자유’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자유는 우파의 것, 평등은 좌파의 것이란 기묘한 이분법이 팽배해 있는 이 사회에서 저런 질문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유가 소수 우익 부자만의 것이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며 박홍규 교수(영남대 교양학부)가 신간 『자유란 무엇인가』(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007)를 내놓았다. 이 책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자유’는 진정 우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인가? 자유의 기원은 무엇이며, 정의(定義)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자유란 무엇이었는가? 서양의 철학자들은 ‘자유’를 어떻게 보았는가? 왜 자유는 불의에서 벗어나려는 숭고한 정신에서 이기적 소유와 사유의 욕망으로 타락했는가? 자유의 기나긴 역사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으며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자 했기에 『자유란 무엇인가』는 ‘자유’의 사상사를 되짚는 철학서인 동시에, 양극화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하는 사회학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1~3부)에서는 자유의 기원과 정의, 자유론의 사상사를 꼼꼼히 다루고 후반부(4~5부)에서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상관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여 양극화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서구 제국주의식 자유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라는 개념이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근대 동아시아인들이 배우고 자국에 도입하고자 노력했던 ‘자유’라는 개념이 사실 서양의 이원론 속 우월 논리에 기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에서 자유란, 노예 혹은 노예의 속박된 상태와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즉 자유는 노예라는 피착취 계급의 존재를 당연히 상정하고 있었다. 저자는 서양의 철학이 우월의 논리에 입각하고 있음에 주의한다. 인간은 동물보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년은 미성년보다, 백인은 타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논리 속에서 신분제 사회 속 노예, 가부장 사회의 여성,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자유와 평등을 박탈당하는 현실이 정당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세계는 보편의 법에 의해 지배된다는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더해져 제국주의의 침탈을 낳았다. 서구는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비서구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자유관’을 성립해갔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세계의 자유는 백인의 자유, 즉 타 인종의 부자유를 전제한 자유였다. 이는 비서구에 대한 약탈과 침략을 정당화하고 문명의 전파라는 명목하에 비서구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식민지 착취에 기반한 서구 제국주의식 자유를 우리가 추종하며 살아왔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인류가 참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런 제국주의적 질곡을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자유주의를 비롯한 서양 사상의 무분별한 수입을 경계한다. 그러나 그 해답을 동양의 전통사상에서 찾지도 않는다. 동양 특유의 집단주의에는 농경사회의 잔재가 남아 있고 그 속에서는 개인의 개성이나 자유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의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자유도 아니고, 동양 고유의 사상도 아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이다.
자유의 현주소― ① 사유로 왜곡된 자유
전반부에서 서양식 자유의 문제점을 살핀 저자는 후반부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오인되고 있는지 살핀다. 우리 사회는 ‘마음껏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자유로 오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기업 정신에 지배당한 사람들은 소유의 자유만을 자유로 인식하고, 기업은 독재나 독점이 자유인 양 사람들의 인식을 호도한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자유의 관념은 너무나도 극심하게 조작되어 결국 강한 자와 부유한 자가 약한 자와 가난한 자의 모든 것을 빼앗는 권리로 타락했다”고 말했듯, 한국 사회에서도 ‘자유’란 결국 소수인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리로 타락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자유를 사유로 왜곡함은 자연의 파괴만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파괴를 가져온다. 이는 우리를 비열한 경제적 동물로 타락시키고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동물로 타락시키며 인민을 팔아먹는 짓까지 자행하게 한다. 지금도 일부 부자들은 사유에 대한 욕망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자유라는 미명의 사유라면 이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_308쪽
자유의 현주소― ② 우익 이데올로기로 오용된 자유
또한 저자는 국내에서 자유란 말이 우익 이데올로기의 공격적 단어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인민이나 평등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사회주의자로 찍히고, 반공이나 자유, 애국을 말하면 보수주의자가 되는 이 사회에서 사실 ‘자유’란 그 어떤 권력과도 무관한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적어도 자유란 말이 보수가 아니라 진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가 흔히 자유주의라고 번역하는 ‘liberalism’은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와는 도리어 반대되는 단어이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것은 미국의 보수주의이나 우리의 자유주의는 획일적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보수주의와도 맥을 달리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유가 우익의 이데올로기로 타락한 것만을 문제 삼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좌익과 우익 모두 이상한 순수주의나 원리주의에 빠져 다양성을 배제하고 획일주의를 강요하려는 한국 사회 공통의 습성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정치는 물론, 학문이나 사상에서도 다양성을 거부하고 한 가지만을 정답으로 생각하며 추종하여 서로 타협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단절과 분리가 생겨났고 욕망의 이기적인 추구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바로 선택의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하는 ‘상관 자유’이다.
양극화 사회에 던지는 새로운 대안, ‘상관 자유’
저자는 서양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찌든 자유, 보수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되는 자유의 대안으로 ‘상관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평등과 여러 권리 및 의무와 상관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파의 평등 없는 자유가 가짜 자유이듯, 좌파의 자유 없는 평등도 가짜다. 자유와 평등 중 무엇을 더 강조하는가에 의해 좌우파가 구분되는 것은 세계 보편의 현상이나 그 어느 하나만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며 대립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황당한 사상의 분단 현상이다. 이런 분단이나 독단, 단절과 분리가 아니라 서로의 관련됨, ‘상관’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상관 자유론이다. _249쪽
저자는 자유를 ‘타자의 강제 없이 타자의 자유와 상관하며 자신이 희망하는 삶을 창조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상관 자유’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평등한 조건하에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하여 창조하는 자유를 뜻하므로 ‘공존 자유’ ‘공생 자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자유를 정의할 때 자유는 개인 차원의 욕망이나 경쟁을 넘어서게 된다.
세속적 성공이나 대중적 소비, 물질적 과시를 거부하고, 부당한 권위와 불합리한 질서에 대항하며 정신과 지성의 해방을 갈구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임을 환기하며 서로 관심을 갖고 관계를 맺는 사회를 지향하자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진정 자유란 무엇인가?
끝으로 저자는 자유란 우익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모든 국가의 인민들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외쳤던 처절하고 당당한 구호였음을 강조한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할 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그 자유, 프랑스혁명에서, 톈안먼 광장 시위에서도 절규했던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우익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되는 자유, 소유만을 강조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인민의 자유는 고귀하고 간절한 것이다. 생명을 바칠 만한 고귀한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자유였다. 역사는 자유를 일궈내려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민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자유는 영원한 미완성의 창조이며 끝나지 않는 싸움, 끝없는 투쟁, 쉬지 않는 창조임을 강조한다. 영구 혁명이자 영원한 변화를 뜻하는 자유가 우익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되는 것은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 확대의 역사였다. 자유는 인류의 오랜 꿈이자 역사였고, 언제나 인류와 함께했다. 자유는 언제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온 것이며 이기적 욕망이나 자의적 방종은 결코 자유가 될 수 없다. 소유나 사유의 자유만을 자유라 하는 재벌이나 독재정권의 거짓 선전에 속지 않고 영원한 변화와 영구한 혁명에 동참하기를 이 책은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