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담즙’의 수수께끼 ― 서양의 멜랑콜리 담론사
“서양문화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2,500년 동안 ‘멜랑콜리 정조’에 물들어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멜랑콜리 담론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 김동규는 전작 『멜랑콜리 미학—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문학동네, 2010)에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안내자 삼아, 사랑과 죽음이라는 보편적 멜랑콜리의 지평에서 예술과 철학을 조망한 바 있다. 이번 책 『멜랑콜리아―서양문화의 근원적 파토스』는 『멜랑콜리 미학』의 후속편으로서, 멜랑콜리 담론을 학문적으로 집대성한 저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멜랑콜리를 서양문화의 특이성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한계 및 한국적 변용 과정을 고찰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첫째, 지금까지 진행된 서양의 ‘멜랑콜리’ 담론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고, 둘째, 멜랑콜리라는 코드로 읽힌 서양문화의 기본 얼개와 그 한계를 보여주며, 셋째, 멜랑콜리한 서양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고 변용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서양 멜랑콜리의 한계와 그 한국적 변용에 대한 논의에서는 박동환, 김상환, 김상봉 같은 우리 철학자와 한용운, 이성복, 기형도, 진은영 같은 우리 시인들이 주요한 텍스트로 다루어진다.
멜랑콜리란 무엇인가?
처음에 멜랑콜리는 고대 서양의학 용어였다. 어원적으로는 그리스어 멜랑콜리아μελαγχολία에서 유래하는데, ‘검다’는 뜻의 멜라스μέλα????와 ‘담즙’이란 뜻의 콜레χολή가 합쳐진 말이다. 즉 멜랑콜리는 ‘검은 담즙’을 뜻한다. 고대 의학에서는 인간의 몸 안에 네 가지 체액(혈액, 노란 담즙, 검은 담즙, 점액)이 존재하며, 이 체액에 따라 사람의 체질과 기질이 정해진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검은 담즙은 ‘우울과 슬픔에 젖는 기질’에 해당한다.
서양에서는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현대의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멜랑콜리를 예술과 철학을 해명하는 핵심어로 파악해왔다. 멜랑콜리 담론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필두로 아퀴나스, 피치노, 칸트, 헤겔,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프로이트, 벤야민, 크리스테바, 데리다, 버틀러, 지젝 등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한 철학자들인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니체, 하이데거는 멜랑콜리를 철학적 용어로 사용하며, 프로이트는 멜랑콜리의 근저에 나르시시즘이 자리하고 있음을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사유하며 이를 이어받은 크리스테바, 데리다, 버틀러, 지젝은 다양한 문맥(예술, 정치, 문화, 성 담론)에 멜랑콜리를 접속시킨다. 또한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도상학의 관점에서 탁월한 멜랑콜리론을 내놓았다. 이 책 앞에 수록한 화보를 보면, 얀스, 뒤러, 라그르네, 고흐, 로댕, 뭉크 등 서양 예술작품에서 ‘멜랑콜리 포즈’가 얼마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도상들은 멜랑콜리한 서양적 정체성을 반영한다.
서양의 인문학 담론사에 출현한 멜랑콜리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표출된 비극적 영웅의 멜랑콜리, 중세인들이 ‘아케디아(나태)’와 결부지어 죄악시하던 종교적 멜랑콜리, 근대적 주체의 강박적 멜랑콜리, 그리고 현대에 익명화되고 파편화된 개인의 고독한 멜랑콜리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예술의 비밀을 해명하는 데 멜랑콜리가 자주 애용되었다. 플라톤이 말한 시인의 신적 광기를 멜랑콜리로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에서는 예술가를 멜랑콜리커로 이해했다. 즉 멜랑콜리는 신적인 광기, 영감, 천재로 이어지는 자유로운 창작자의 정조로 파악되었다.
배타적 자기애의 세계가 빚어낸 검은 정조
그동안 서영 문화와 철학을 지배해온 태도는 자기중심적 존재론과 철저한 동일성의 논리다. 이런 “배타排他로 직조된 자기애의 세계”(447쪽)가 서양철학의 몸체를 이룬다. 서양인들은 타자성을 모르지 않았으나 이를 무시했다. 지독한 나르시시즘 때문이다. 서양인들에게 타자는 기껏해야 이국적 취향이나 인식의 ‘대상’에 불과했다. 아니면 의식과 인식의 배후에서 인식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프로이트의 ‘이드’, 칸트의 ‘물자체’) 그것도 아니면 불멸의 신이나 절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멜랑콜리는 이러한 자기 내부의 타자성이 뿜어내는 서양문화의 근본 정조다. 멜랑콜리는 몸으로 상징되는 타자성을 고착된 자기 안에 가두려는 욕망에서 유래한 고통이다. 하지만 이 멜랑콜리는 (예술과 문화) 창조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서양적 멜랑콜리는 빛나는 문화유산과 과학기술을 인류에게 남겨주었지만, 그 서양적 세계에는 타자, 이방인, 주변자를 위한 공간이 없다. 그곳에는 중심으로의 철저한 편입과 동화만이 허용된다. 서양의 문화와 철학뿐 아니라 현실 역사도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멜랑콜리는 서양 엘리트의 특권적 정조다. 즉 자유로운 지성인과 지배층의 정조다. 서양의 주류문화 또는 지배문화에서 멀어질수록, 주변부나 하위문화로 접근할수록, 멜랑콜리는 점점 색이 바랜다.
멜랑콜리 4체론
저자 김동규는 고대의학의 4체액설에 빗대 서양철학사를 ‘멜랑콜리 4체론’으로 새롭게 규정한다. 여기서 단일한 체질의 네 가지 양상을 뜻하는 4체란 곧 “실체實體, 일체一體, 주체主體, 매체媒體”다. 서양철학은 단일한 멜랑콜리 체질을 가지고 있으며, 4체란 그 체질의 네 가지 역사적 양상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위와 같은 서양철학의 4체는 서로 딴 몸이 아니다. 한 몸이 성장하면서 차례로 발현되는 네 가지 변태變態 양상이다. 그런데 이 4체에서 변하지 않고 흐르는 정조는 멜랑콜리다. 실체가 일체가 되고 주체와 매체로 변신하면서도 멜랑콜리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서양인들은 자기중심적 존재론과 동일성의 논리에 입각한 삶의 형식에서, 즉 나르시시즘의 세계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멜랑콜리한 서양문화는 실체, 일체, 주체, 매체의 개념틀로 타자를 대상화시켜 인식해서 사용하고 조작하고 지배할 줄만 알았지, 타자를 진정 받아들여 또다른 타자를 낳는 ‘진정한 사랑’에는 이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