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제너레이션의 리더, 아방가르드 소설의 대표 주자
윌리엄 버로스의 후기 대표작 국내 초역!
비트 제너레이션의 리더이자 노먼 메일러로부터 “신들린 천재성을 지닌 유일한 미국 작가”라는 찬사를 받은 윌리엄 버로스의 『붉은 밤의 도시들』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5번으로 출간되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붉은 밤의 도시들』은 버로스의 거칠 것 없는 삶과 문학적 성찰의 정점에서 끌어낸 최고의 걸작으로, 무정부주의와 히피 문화의 모태인 비트 제너레이션의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후기 대표작이다. 전통적인 서술 방식으로 쓰인 『정키』와 『퀴어』, 실험적인 ‘컷-업’ 기법을 처음 선보인 『네이키드 런치』에 이은 『붉은 밤의 도시들』은 그의 후기 작품을 기다려왔던 한국 독자들에게 뜻깊게 다가갈 것이다.
일탈적인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결합
기이하고 신비로운 전대미문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붉은 밤의 도시들』은 동성애, 약물, 폭력에 매료된 소년들이 해적선에 승선해 자유와 욕망이 영원히 살아 있는 유토피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서사시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스케일에 다양한 장르가 혼재해 있는 ‘하이브리드 환상소설’로, 17세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해적 미션 선장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서사 형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교란시키고 해체시켜버린다. 이는 자유롭고 솔직한 행동으로 기성세대의 보수성에 저항했던 비트 제너레이션의 경향과 직결되는, 즉 인간을 이성과 질서의 틀에 가두는 서구 문명의 족쇄로부터 독자의 의식을 해방시키기 위한 작가의 시도이다. 버로스는 반복되는 마약중독과 재활, 동성애, 멕시코 등지에서의 망명생활, 사고로 인한 아내 살해, 아들의 죽음 등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도 40년간 쉼 없이 창작에 전념했다. 그의 마지막 연작 ‘붉은 밤’ 3부작의 첫번째 작품인 『붉은 밤의 도시들』에는 작가의 온 생애에 걸친 투쟁의 빛과 어둠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자본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차별과 박해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탄핵인 동시에 자유를 향한 통쾌한 질주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여섯 개의 ‘붉은 밤의 도시들’
섬세하고 세심하게 조각내어 이어붙인 퍼즐 같은 『붉은 밤의 도시들』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첫번째 이야기는 사설탐정 클렘 스나이드가 제리 그린 살인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과정을 좇는다. 18세기가 배경인 두번째 이야기는 보스턴의 십대 총기 제작자 노아 블레이크가 우연히 동성애자들이 승선한 해적선의 일원이 되어, 남아메리카에서 유토피아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스페인 정복자들과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그리고 수십만 년 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가상 미래의 느낌을 주는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발생한 고비사막 일대의 여섯 도시, 즉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붉은 밤의 도시들’이 죽음에 이르는 향락에 중독되어 혼란에 빠져드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세 플롯은 각각 별개인 듯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서로 뒤얽혀 스치고 또 마주친다.
초현실적 분위기와 복잡한 이야기를 통해 버로스가 탐구한 주제는 ‘자유’다. 작품에서 그는 젠더, 인종, 정치, 군사, 종교 등 개인을 구속하는 모든 억압과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소설의 토대가 된 미션 선장의 유토피아 혁명은 이러한 추구의 선례이자, 작품 속 표현대로 오직 기적에 의해서만 되돌릴 수 있는 “잃어버린 기회”이다. 작가의 정치적 입장이자, 상상력의 원천인 ‘미션 선장의 법령’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조: 어느 누구도 빚 때문에 감옥에 가서는 안 된다.
제2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제3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교적 믿음이나 관습에 어떤 식으로든 간섭해서는 안 된다.
제4조: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고문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제5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성적 취향에 간섭하거나 그 혹은 그녀의 뜻에 반하여 성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제6조: 어느 누구도 법령을 어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형에 처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종교재판관들은 이 조항에 따라 유죄가 되며 즉시 사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인 법령에는 비극이 뒤따르는 법. 버로스는 유토피아 건설에 동반되는 폭력과 죽음, 약물 등의 대가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묘사했다. 묘한 해방감에 휩싸여 있던 독자는 난잡하고 환각적인 장면들에서 이것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를 자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통해 체제와 규범에 순응하는 인간을 되돌아보게 되며, 마침내 자유와 폭력을 상징하는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자유를 향한 작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죽음의 향락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미션 선장의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 안의 유토피아를 향한 강렬한 욕망을 직시하고,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 음울한 미래를 체험한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과거와, 과거 없이는 오지 않을 미래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대하는 버로스의 태도에는 기대와 좌절, 희망과 슬픔이 교차한다. 『붉은 밤의 도시들』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나 어느 작가보다도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충실히 답했던 윌리엄 버로스의 묵시록적 비전이다.
■ 본문 발췌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모래주머니가 아니라 콜레라 환자 시체와 그가 주고 간 아편에 취해 눈이 축 처진 세 명의 친척뿐이었다. 하지만 분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집에 도착할 때쯤 점점 약기운이 떨어지는 걸 느껴 가속페달을 좀더 세게 밟았다. 방갈로에 도착해서 아편 알을 삼키고 생수를 마신 다음 차를 끓이기 위해 등유난로를 켰다. 찻주전자를 가지고 현관으로 나와 두 잔째 마시자 아편이 목 뒤를 통해 마른 허벅지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20쪽)
소년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남자의 허벅지와 엉덩이, 성기를 바라보았다. 아랫도리가 딱딱해지고 젖으면서, 바지의 지퍼 부분이 솟아올랐다. 그 형상을 향해 자위를 하자 가랑이 사이로 황홀한 팽만감이 솟구쳤고, 계속해서 용두질을 하는 동안 이제까지 맡아본 적은 없지만 익숙하면서도 야릇한 냄새가 났다. 벌거벗은 남자가 넓고 맑은 강가에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은빛 반점들이 눈앞에서 끓어올랐고, 그는 사정을 했다. (26쪽)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내가 태어난 하버 포인트 마을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누구였던가? 여름 새벽에 비둘기가 숲에서 구슬프게 울던 것을 기억한다. 집에 갇혀 지내던 길고 추운 겨울에도. 나는 누구였던가? 그 이방인은 오래전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었다. (87쪽)
“타마기스…… 바단…… 야스와다…… 와그다스…… 나우파나…… 가디스.”
여행자들은 타마기스에서 시작하여 앞에 호명된 순서대로 나머지 도시들을 다녀야 한다. 이 순례에는 여러 생이 걸릴 수 있다. (206~207쪽)
두 재판관을 즉결처분했다. 사실 이것은 종교재판의 전통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규율에 따른 결정이다. 사실 이 규율은 반항과 증오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재판관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방법이다. 소수자에 대한 잔혹한 처벌은 그러한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만족감을 주기 마련이다. (244쪽)
그 남자는 푸른 액체가 담긴 작은 주사기를 들었다.
“자유를 위한 주사일세.”
이방인은 떨리는 팔을 들었다.
“소매를 걷게. 주사를 놓을 테니.”
개울가 옆에서 맞는 선선한 푸른 아침, 멀리서 들리는 부드러운 플루트 소리, 꺼져가는 별의 달콤한 슬픔. 인광을 내는 그루터기가 정오의 거리에 아지랑이처럼 퍼져 있는 푸른 땅거미 속에서 빛난다. (356~357쪽)
그의 말에 따르면 오래전에 어떤 신이 야스와다를 꿈꾸었다. 노인은 손바닥을 모으고 머리를 두 손에 대고서 눈을 감는다. 그는 눈을 뜨고 손바닥을 편다. “하지만 꿈은 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소. 그래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야스와다는 사라졌소.” (420쪽)
■ 추천사
『붉은 밤의 도시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마법사 윌리엄 버로스의 걸작이다. 굉음과 함께 세상이 종말을 고하면, 마법사의 짓궂은 웃음 뒤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들려온다.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버로스는 조너선 스위프트 이후 최고의 풍자 작가다. _잭 케루악(소설가)
기발함, 수수께끼, 외설로 와글와글한 버로스의 비전은 독창적이고, 충격적이고, 기가 막히게 매혹적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도덕 따위는 잊어라! 이 작품은 버로스의 유별난 이드가 날뛰고 인상 찌푸리며 자신의 기괴한 성향을 고백해 보이는 한판 소동극이다. 장면마다 굼뜨게 배경이 바뀌지만, 작가의 이드는 다른 배경 앞에서 매번 동일한 공연을 펼친다. 단언컨대, 이 소설은 진짜다! _뉴욕 타임스
이 작품은 작가의 무의식 세계로 향하는 검은 티켓과도 같다. 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면서 환각적인 광경과 감정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_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 발행일: 2014년 12월 9일
◈ 판 형: 140*210(무선)
◈ 쪽 수: 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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